원·달러 환율이 1480원대를 위협하는 가운데 내년 경상수지 흑자 규모가 올해보다 축소될 것으로 전망된다. 향후 환율 안정에 불안요소가 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이달 들어 소비자들의 집값 상승 기대가 4개월 만에 하락세로 전환한 가운데 소비심리는 한·미 관세 협상 타결과 3분기 경제성장률 상향 조정 등으로 개선되며 8년 만에 최고 수준으로 올랐다.
◆경상수지 흑자 축소 전망…환율 내년이 더 문제
25일 한국개발연구원(KDI)에 따르면 내년 경상수지는 1037억달러 흑자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는 올해 전망치(1159억달러)보다 120억달러 이상 줄어드는 것이다. 국회예산정책처도 내년 경상수지를 900억달러로 내다봐 올해 전망치(1100억달러)보다 200억달러 정도 감소할 것으로 예측했다.
경상수지 흑자 규모가 줄어드는 건 내년 수출 여건이 올해보다 나빠질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산업연구원은 전날 경제전망에서 올해 통관 수출이 2.5% 늘겠지만 내년에는 0.5% 감소할 것으로 전망했다. 인공지능(AI) 관련 반도체 수요 증가세 등은 긍정적이지만, 글로벌 경기 부진과 교역 둔화 등이 수출 전선에서 발목을 잡을 수 있다는 것이다.
통상 경상수지 흑자가 늘면 국내 외환 시장에 달러가 늘어 원화 가치가 상승(환율 하락)하게 된다. 다만 이런 공식은 최근 옅어지고 있다. 서학개미(해외주식에 투자하는 국내 개인) 등 해외 투자가 늘면서다. 실제 올해 해외 투자 등 금융계정을 통한 달러 유출은 9월까지 809억9000만달러로 나타나 같은 기간 경상수지(827억7000만달러)에 육박했다. 개인·기업의 해외 투자가 지속하는 상황에서 경상수지 흑자 규모마저 줄면 원화 가치는 하방 압력을 더 크게 받을 수밖에 없다.
현재 한국(연 2.50%)과 미국(연 3.75~4.00%)의 기준금리가 역전돼 있는데, 이런 상황이 당분간 지속할 가능성이 높은 점도 원·달러 환율을 불안케 하는 요인이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내년 원·달러 환율 향방에 있어 미국의 통화정책이 가장 중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미 관세 협상에 따라 3500억달러 대미 투자가 순차적으로 이뤄져 기업들의 달러 수요가 이어지는 것도 부담이다.
외환당국은 국민연금을 끌어들여 전날 4자 협의체를 가동해 환율 안정에 나섰다. 협의체는 원화 가치가 미리 정해둔 기준보다 더 낮아질 경우 보유한 해외 자산의 최대 10%만큼 시장에 내놓는 ‘전략적 환헤지’ 운용을 검토할 것으로 전망된다. 올해 말 종료되는 한국은행과 국민연금 간 650억달러 규모의 스와프 연장 계약도 논의될 것으로 보인다.
이날은 외환당국이 미래에셋증권과 한국투자증권 등 외환시장협의회 소속 9개 증권사까지 불러 비공개회의를 진행했다. 이날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종가 기준 1472.4원을 기록했다.
◆ 집값 상승 기대감 소폭 꺾여…소비심리 8년 만에 최고
한국은행이 발표한 ‘소비자동향조사’ 결과에 따르면 11월 주택가격전망지수는 지난달(122)보다 3포인트 하락한 119로 나타났다. 지수가 100보다 큰 경우 1년 뒤 주택가격이 지금보다 오를 것이라고 응답한 가구가 과반이라는 뜻이다. 장기평균은 107이다.
주택가격전망은 지난 6월 120까지 치솟았다가 수도권 주택 매입 시 6억원 이상 주택담보대출을 금지한 ‘6·27 대책’이 발표되며 7월 조사에서 109까지 11포인트 급락했다. 그러나 한은의 금리 인하 기대, 정부 주택 공급 대책에 대한 실망감 등에 8∼10월 상승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번 조사에서 넉 달 만에 하락 전환했지만, 낙폭은 6·27 대책 발표 직후와 비교하면 크지 않다. 이혜영 한은 경제심리조사팀장은 “주택가격 전망이 전월 대비 하락하긴 했지만, 6·27 대책 전보다 소폭 낮은 수준으로 기대 심리가 여전히 높다”고 설명했다. 이 팀장은 두 조사 결과만 두고 10·15 대책의 효과를 평가하긴 어려울 수 있다며 “7월 주택가격전망은 6·27 대책 발표 후 열흘 뒤에 조사했지만, 이번에는 10·15 대책 후 4주가량 지나서 다른 상황들이 반영됐을 수 있다”고 말했다.
한편 1년 전 비상계엄 사태로 곤두박질쳤던 소비심리는 호조를 보이고 있다. 11월 소비자심리지수(CCSI)는 지난달보다 2.6포인트 상승한 112.4로, 2017년 11월(113.9) 이후 8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CCSI가 100보다 높으면 장기평균(2003∼2024년)과 비교해 소비 심리가 낙관적이라는 뜻이다. 지난해 11월까지 100을 웃돌던 CCSI는 12월 비상계엄 사태로 88.2까지 급락했다.
한은 관계자는 “CCSI 조사 기간(지난 11∼18일) 한·미 관세 협상 타결, 3분기 경제성장률 전망 상회 이슈 등이 부각되며 이 같은 결과가 나왔다”고 설명했다.
◆“조정이 기회”…서학개미, 레버리지 상품 공격적 베팅
‘서학개미’들이 글로벌 증시 하락장을 기회로 삼아 레버리지 상품을 공격적으로 사들이고 있다.
한국예탁결제원 증권정보포털 등에 따르면 지난주(15~21일) 국내 투자자가 가장 많이 순매수한 해외 주식은 미국 필라델피아반도체지수를 3배로 추종하는 ‘디렉시온 데일리 세미컨덕터 불 3X ETF’였다. 이 기간 순매수 규모만 5억6614만달러(약 8355억원)에 달했다.
대표적인 빅테크 종목인 알파벳(2억2491만달러)과 엔비디아(9879만달러)가 매수 상위 2, 3위를 차지했고, 엔비디아 주가를 2배로 추종하는 ‘그래닛셰어즈 2.0X 롱 엔비디아 데일리 ETF’도 순매수 6위에 올랐다. 이달 들어 엔비디아뿐 아니라 마이크로소프트, 아마존 등 빅테크 기업 주가가 10% 안팎의 하락률을 보이며 약세를 보였지만, 서학개미는 이를 추세적 하락이 아닌 단기 조정으로 판단하고 과감한 매수세를 이어가는 양상이다.
국내 증시에서는 자금 성격에 따라 외국인의 행보가 갈렸다.
한국거래소가 집계한 외국인 국적별 순매수·순매도 동향 자료를 보면 이달 1~24일 국내 증시에서 가장 많은 주식을 판 외국인은 영국 투자자였다. 이 기간 영국계 자금은 총 4조9900억원을 순매도했다. 영국계 헤지펀드는 통상 단기 차익을 노리는 성향이 강해 인공지능(AI) 거품 논란과 증시 조정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매물을 쏟아낸 것으로 분석된다.
장기 투자 성향이 강한 미국계 자금은 같은 기간 1조1210억원을 순매수했다. 지난달 말 기준 국내 주식을 가장 많이 보유한 국적 역시 미국으로, 총 511조1000억원 상당을 보유해 전체 외국인 보유량의 40.9%를 차지하고 있다.
이날 코스피는 전장보다 11.72포인트(0.30%) 오른 3857.78에 장을 마쳤다. 지수는 전장보다 96.30포인트(2.50%) 오른 3942.36으로 출발해 3946.61까지 올랐으나 외국인이 ‘팔자’로 돌아서며 장중 상승 폭을 줄였다. 코스닥도 장중 등락을 거듭하다 전장보다 0.41포인트(0.05%) 내린 856.03을 나타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