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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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가방 속에서 발견된 두 남매… 뉴질랜드 법원, 한국인 엄마에 종신형

입력 : 2025-11-26 10:45:14
수정 : 2025-11-26 10:4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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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고 경매 여행가방에서 드러난 9·6세 남매의 죽음… 친모 유죄 확정
뉴질랜드 오클랜드 고등법원에 출석한 이모씨. AFP연합뉴스

 

뉴질랜드 오클랜드의 한 고등법정.

 

7년 전 어린 남매를 숨지게 하고 여행가방에 넣어 창고에 유기한 혐의로 기소된 한국인 엄마에게 종신형이 선고됐다. 최소 17년 동안은 가석방이 허용되지 않는 형량이다.

 

26일(현지시간) AFP통신 등에 따르면 오클랜드 고등법원은 전날 이모(44)씨에게 살인 혐의를 유죄로 인정하며 “돌봄이 필요한 아이들에게 가장 극단적인 폭력을 가했다”고 판시했다.

 

재판장은 “남편이 병으로 세상을 떠난 뒤 피고인은 삶 전체를 지탱해 주던 무언가가 무너졌고, 그 상실을 아이들 주변에서 계속 마주해야 했을 것”이라며 범행 배경을 설명했다. 그러나 그는 곧바로 “그 어떤 사정도 취약한 아이들의 생명을 빼앗은 행위를 정당화할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선고가 이어지는 동안 이씨는 통역사와 경호원 사이에서 거의 움직이지 않은 채 서 있었다고 AFP는 전했다.

 

이씨는 2018년 6~7월 사이 9살 딸과 6살 아들에게 항우울제를 섞은 주스를 먹여 숨지게 한 뒤, 시신을 여행가방 두 개에 나눠 담아 오클랜드의 한 창고에 유기한 혐의로 기소됐다. 범행 직후 한국으로 도주해 이름까지 바꿨지만, 2022년 울산에서 붙잡혀 뉴질랜드로 송환됐다.

 

비극의 실마리는 우연한 발견에서 시작됐다.

 

이씨가 경제적 어려움으로 창고 임대료를 내지 못하자, 보관 물품이 경매로 넘어갔다. 물건을 낙찰받은 뉴질랜드인이 가방을 열었고, 그 안에서 남매의 유해가 발견됐다. 경찰은 해외로 도주한 이씨를 추적했고, 결국 범행 4년 만에 실체가 드러났다.

 

재판 과정에서 이씨는 “남편의 사망 이후 우울증을 앓아 심신 미약 상태였다”고 주장했지만 법원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뉴질랜드로 이주해 시민권까지 얻었던 그는, 범행 이후 한국으로 되돌아와 조용히 숨어 지냈다. 남편을 잃은 뒤 흔들린 삶, 감당하기 어려웠던 양육의 무게 등 여러 사정이 재판에서 거론됐지만, 법원은 “아이들에게 가해진 고통과 죽음은 돌이킬 수 없다”며 종신형을 확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