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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400% 넘었다”…서민들만 피해 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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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불붙은 ‘간병인보험 전쟁’…손해율 400%에도 보험사들, 물러서지 못하는 이유

금융당국의 ‘출혈 경쟁 자제령’에 잠시 숨을 고르던 간병인보험 시장이 다시 요동치고 있다.

 

보험사들이 간병인 사용 시 지급하는 일당 보장 한도를 잇달아 상향하면서, 업계에서는 사실상 ‘2차 가격 전쟁’이 시작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초고령사회에 진입한 한국에서는 간병 수요가 앞으로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게티이미지

손해율 급등에도 보험사들이 공격적 영업을 지속하는 배경에는 ‘고령화’라는 구조적 성장 시장을 선점해야 한다는 절박함이 깔려 있다.

 

◆또다시 올라간 간병인 일당, 왜 지금인가

 

28일 업계에 따르면 최근 주요 손해보험사와 생명보험사는 건강보험 내 ‘간병인 사용일당 특약’의 최대 보장 한도를 성인 기준 일일 20만원까지 올렸다.

 

간병인 일당 특약은 입원 환자가 간병인을 고용할 경우 실제 지출액과 상관없이 정해진 금액을 지급하는 정액형 구조다.

 

하지만 이는 올해 초 금융당국이 출혈 경쟁을 경고하며 한도 축소를 요구했던 흐름과 정면으로 반대되는 조치다.

 

불과 몇 달 만에 업계 분위기가 재차 돌아선 것은 그만큼 보험사들의 ‘간병 시장 선점 욕구’가 강하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손해율 400%까지 치솟았는데도…

 

일부 보험사는 간병보험 손해율이 400%에 육박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고객에게 지급하는 보험금이 받은 보험료의 4배에 달한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험사들이 스스로 한도를 다시 올린 이유는 간병 시장의 폭발적 성장세 때문이다.

 

△2008년 3조6000억원 △2018년 8조원 △2024년 11조4000억원으로 추정된다.

 

고령화가 가속화되며 간병비 지출은 급증하고, 보험사 입장에선 미래 ‘확실한 성장 산업’을 선점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지금 물러서면 향후 10년의 시장을 통째로 놓칠 수 있다”며 “손해율이 나쁘더라도 점유율을 확보하는 것이 우선이라는 판단이 강하다”고 말했다.

 

◆간병인 플랫폼 확산, ‘우회 청구’라는 새로운 변수

 

최근 간병인 매칭 플랫폼들이 대중화되면서 보험금 청구 패턴도 바뀌고 있다.

 

가족이나 지인을 간병인으로 등록한 뒤 간병 서비스를 제공한 것으로 처리해 일당 보험금을 받는 사례가 늘고 있다는 지적이다.

 

정액형이기 때문에 실제 지출 여부를 따지기 어렵고, 보험사 입장에서는 예실차(보험료 예상 대비 실제 지출 차이)가 크게 벌어지며 손해율이 급등하는 구조가 고착되고 있다.

 

한 손해사정인은 “정액 구조는 편의성이 높지만 악용 여지도 크다”며 “청구 건수 증가와 우회적 등록이 맞물리면서 비용이 폭발적으로 늘고 있다”고 전했다.

 

◆다시 시작된 출혈 경쟁, 이번에는 더 ‘위험한’ 이유

 

보험업계 안팎에서는 이번 경쟁이 과거보다 훨씬 위험하다는 경고가 나온다.

 

정액형 특약 구조가 이미 한계에 도달했고, 플랫폼 간병 시장 확대로 청구 증가 속도 과거 대비 훨씬 빠르다.

 

금융당국의 이전 규제도 사실상 ‘임시 처방’에 불과하며, 보험료 인상 여력도 제한적이다.

 

전문가들은 “이번 경쟁이 길어질 경우 보험료 인상이나 보장 축소 등 소비자 피해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입을 모은다.

 

◆제도 개편 없이는 ‘악순환’ 지속

 

일각에서는 △실지급액 기반의 ‘실손형 간병보험’ 도입 △간병 서비스 인증체계 강화 △가족 간병에 대한 기준 정립 등 구조적 대책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현재의 단순 ‘한도 조정’ 중심 규제만으로는 반복적 경쟁을 막기 어렵다는 것이다.

 

한 보험정책 전문가는 “보험사들이 손해율 악화에도 불구하고 간병인 일당을 다시 상향한 것은 단기적 손실을 감수하고서라도 고령화 시대 핵심 시장을 선점하겠다는 전략적 판단으로 보인다”며 “다만 간병인 플랫폼을 활용한 우회 청구 증가로 예실차가 악화되는 만큼, 보장 구조를 정교하게 설계하지 않으면 손해율은 더 치솟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정액 지급 구조는 실제 지출 여부와 무관하게 보험금 수령이 가능해 악용 여지가 크다”며 “가족·지인을 간병인으로 신고해 보험금을 받는 사례가 급증하면서 손해율이 왜곡되고 있다. 결국 모든 가입자의 보험료 인상으로 이어질 위험이 있다”고 덧붙였다.

 

보험 상품이 이를 뒷받침해야 하지만 정액형 중심 구조는 시장이 성장할수록 손해율이 더 커질 수밖에 없다. 게티이미지

간병보험 손해율이 400%까지 올랐다는 것은 현 가격 구조가 이미 붕괴됐다는 의미다.

 

금융당국의 경고로 잠시 진정됐다가 다시 한도가 확대되는 현 상황은 지속 가능하지 않다. 시장 선점 경쟁이 가격 정상화를 더욱 어렵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간병 시장 성장 속도는 빠르지만 보험사 간 과도한 경쟁은 결국 소비자에게 불리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높은 손해율은 보험료 인상과 보장 축소로 돌아오게 된다. 당국과 업계 모두 소비자 보호 관점을 우선해야 한다.

 

헬스케어 산업 전문가는 “사적 간병비 시장이 2008년 3조6000억원에서 올해 11조원대로 커졌다는 것은 의료·돌봄 수요가 구조적으로 확대되고 있음을 의미한다”며 “보험사 입장에서는 놓칠 수 없는 시장이다. 그러나 단순 보장 경쟁만으로는 지속 가능한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그는 “지금의 간병인 일당 경쟁은 사실상 ‘가격 덤핑’ 형태”라며 “금융당국은 단순 한도 조정이 아닌 간병 서비스 인증 강화, 실지급 구조 도입 등 근본적 제도 개편을 검토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업계 재무건전성 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고 우려했다.

 

현장에서 간병인 플랫폼을 통한 청구가 눈에 띄게 늘었다. 정상 청구도 많지만 가족 간병 등록처럼 경계에 있는 사례도 적지 않다.

 

보험사들도 문제를 알지만 경쟁에서 뒤처지면 시장을 잃기 때문에 쉽게 물러설 수 없는 상황이다.

 

초고령사회에 진입한 한국에서는 간병 수요가 앞으로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보험 상품이 이를 뒷받침해야 하지만 정액형 중심 구조는 시장이 성장할수록 손해율이 더 커질 수밖에 없다. 장기적으로는 제도적 재설계가 필요하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