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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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현관 비번까지 샜나” 불안 확산… 피해자 집단소송 움직임 [쿠팡 '3400만' 고객정보 유출 파문]

입력 : 2025-11-30 18:01:00
수정 : 2025-11-30 22:4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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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 밀착형 정보 담겨… 소비자 분통

이용자 주소·주문정보 등 민감 정보
‘범죄 악용되면 어쩌나’ 우려 목소리

쿠팡, 공지 없이 피해자에 개별 안내
시민들 “책임감 있는 태도인지 실망”
박대준 대표 “국민 걱정 끼쳐 사과
합리적 피해 보상 성실히 임할 것”

참여연대 “사고 원인 명확히 밝혀야”
온라인 중심 피해자 모임 속속 결성

국내 전자상거래 시장 1위 업체인 쿠팡에서 약 3400만건의 대규모 정보 유출 사고가 발생하면서 시민들 불안이 커지고 있다. 최근 사기범죄가 범행 대상을 무작위로 물색하는 데서 나아가 미리 파악한 개인정보로 피해자에게 맞춤형 접근을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노출된 쿠팡 가입자의 인적 사항과 주문내역 등 생활 밀착형 개인정보가 범죄에 악용되지 않을까 우려하는 목소리도 크다.

 

서울 성북구에 사는 직장인 최모(33)씨는 30일 거주 중인 오피스텔 관리사무실에 공동현관 비밀번호를 바꿔달라고 요청했다. 그는 “이상동기 범죄나 여성을 상대로 한 범행이 많아지고 세상이 흉흉하다 보니 집을 구할 때 공동현관이 없는 곳은 선택지에 두지도 않았다”며 “주소가 유출됐다고 하는데 공동현관 비밀번호도 포함됐을 것 같아 관리소장에게 서둘러 조치해달라고 했다”고 설명했다. 최씨는 “주문정보도 노출됐다고 안내받았는데 어떤 식으로 악용될지 겁이 난다”고 말했다.

쿠팡이 보낸 문자메시지 고객 계정 3370만개가 무단으로 유출된 사실이 드러난 쿠팡이 고객들에게 보낸 개인정보 노출 통지 관련 문자메시지. 최상수 기자

쿠팡의 대처 방식이 문제라는 반응도 많다.

 

쿠팡은 정보 유출 피해를 본 이용자들에게 이메일과 문자로 개별적으로 안내했을 뿐 정작 이용량이 가장 많은 애플리케이션 첫 화면에는 공지나 사과문을 게시하지 않았다. 홈페이지의 경우 이날 오후 3시가 지나서야 박대준 대표이사 명의 사과문을 첫 화면에 배너 형태로 노출했을 뿐이다.

 

울산에 사는 남모(29)씨는 “최근에 개인정보 유출 사고가 하도 잦아 어차피 내 정보가 많이 떠돌아다닐 것이라 생각했다”면서 “하지만 거대 기업이 책임을 통감하지 않는 듯한 모습을 보여 화가 난다”고 전했다. 그는 “당장 피해가 보고된 바 없다고는 하는데 ‘이번 상황을 악용한 쿠팡 사칭 전화, 문자 메시지 및 기타 연락에 주의하라’는 말만 있을 뿐 이미 벌어진 정보 유출 피해를 어떻게 보상할 건지에 관한 이야기는 없는 게 책임감 있는 태도인지 모르겠다”고 했다.

 

쿠팡은 박 대표 명의 사과문에서 “향후 이러한 사건으로부터 고객 데이터를 더욱 안전하게 보호할 수 있도록 현재 기존 데이터 보안 장치와 시스템에 어떤 변화를 줄 수 있는지 검토하고 있다”며 ‘피해 예방 조치’에 대한 계획만 밝혔을 뿐 ‘보상’에 대한 언급은 하지 않았다. 정부 대책회의에 참석한 박 대표는 “피해 범위와 유출 내용을 명확히 확정한 다음에 재발 방지 대책 마련이 급하다”며 “이런 부분이 확정되고 나면 합리적인 (피해 보상) 방안을 성실하게 수행하겠다”고 말했다.

고개 숙인 쿠팡 대표 박대준 쿠팡 대표이사가 30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쿠팡 개인정보 유출 관련 긴급 관계부처 장관회의에 참석한 뒤 고개 숙여 사과하고 있다. 뉴스1

쿠팡이 지난 5개월간 대규모 정보 유출 사실을 몰랐던 데다 내부 직원의 소행 가능성까지 제기된 것도 도마에 올랐다. 박 대표는 ‘깜깜이 유출’ 이유를 묻는 취재진 질문에 “기술적으로 길게 설명해야 하는 사안이고 수사가 진행 중이라 상세히 말씀드리기 어렵다”며 “(회사가) 유출을 인지한 뒤 스스로 (당국에) 자진 신고했고 피해자(에게) 개별 통지도 했다”고 말했다. 그는 ‘중국 국적 직원 연루’ 의혹에 대해선 “수사 영역이고 (경찰에) 적극 협조 중이다. 해당 언급 자체가 수사에 영향을 줄 수 있어 말씀드리기 어렵다”며 “내부 조사 내용을 정부에 투명하게 제공하고 있다. 수사를 통해 결론을 내리는 게 최선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참여연대는 이날 논평을 내고 “쿠팡은 해당 직원이 어떤 역할을 담당했는지, 해당 직원의 역할과 보안등급이 전 국민의 3분의 2에 해당하는 개인정보를 유출할 수 있는 수준이었는지, 최소 5개월 동안 유출 사실을 파악하지 못한 이유가 무엇이었는지, 개인정보 보호체계를 어떻게 운용하고 있는지 철저히 밝혀야 한다”고 촉구했다. 참여연대는 또 대규모 정보 유출 사태를 막으려면 현재 국회 본회의 처리를 앞둔 ‘해킹방지법’ 외에 집단소송제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30일 서울 송파구 쿠팡 본사. 연합뉴스

개인정보 유출 통보를 받은 쿠팡 가입자들 사이에선 법적 대응 등 집단행동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소송 참여 인원 파악·변호사 선임을 위한 카카오톡 오픈채팅 ‘쿠팡 정보유출 피해자 모임’ 대화방이나 집단소송 추진을 위한 온라인 카페 등이 개설돼 인원을 모으는 중이다. 한 온라인 카페 운영자는 공지를 통해 피해 사례 수집, 법무법인 선정, 소송 참가인단 모집 등 단계적으로 대응할 계획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