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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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평가보다 1등급 적어”… ‘불영어’가 당락 가른다 [2026 수능 성적 발표]

입력 : 2025-12-04 18:15:00
수정 : 2025-12-04 21:0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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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최고난도… 수험생 대혼란

1등급 1만5154명… 작년 반토막
절대평가 불구 난도 널뛰기 반복
평가원 “난도 조절 실패… 유감”

수시 최저학력 미충족 속출 전망
정시로 이월 인원 대폭 많아질 듯
어려워진 국어, 수학과 난도 격차
“수학 만점자, 국어 고득점 못 이겨”
“믿었던 영어에 발등 찍혔다.”


올해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치른 수험생들을 가장 큰 혼란에 빠뜨린 과목으로 영어가 꼽혔다. 역대 최고 난도에 많은 수험생은 평소보다 등급이 하락했고, 대입은 더욱 안갯속이 됐다.

입시 전쟁 시작 임성호 종로학원 대표이사(왼쪽 첫 번째)와 강사들이 4일 서울 양천구 목동종로학원에서 회의를 열고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발표한 2026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성적을 분석하고 있다. 올해 수능을 두고 영어 1등급 비율이 역대 최저를 기록하는 등 난이도 조절에 실패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최상수 기자

◆‘불영어’에 입시 혼란

4일 한국교육과정평가원에 따르면 2026학년도 수능에서 영어 1등급(90점 이상)을 받은 수험생은 지난해 2만8587명(6.22%)에서 올해 1만5154명(3.11%)으로 절반 가까이(47.0%) 줄었다. 1·2등급 누적 인원 감소폭은 상대적으로 적은 17.8%(10만3687명→8만5171명)란 점을 고려하면 1등급을 노리던 상위권 타격이 특히 큰 셈이다.

절대평가 취지를 살리려면 시험마다 등급 비율이 안정적으로 나와야 하지만, 최근 몇년간의 영어 시험은 난도가 들쑥날쑥했다. 절대평가 첫해였던 2018학년도는 10.03%로 비교적 적정 난도란 평가가 나왔으나 2019학년도는 5.30%로 떨어졌고, 2021학년도는 12.66%까지 올랐다. 2022·2023학년도에는 6∼7%대를 유지했으나 2024학년도에는 상대평가 1등급과 비슷한 4.71%로 떨어지며 비판을 받았다.

올해 수능은 상대평가보다도 오히려 1등급 비율이 적은 상황이다. 평가원은 올해 두 차례의 모의평가에서도 영어 1등급은 19.0%와 4.50%를 오가 ‘난도가 널을 뛴다’는 지적을 받았는데 수능에서도 적정 난이도 확보에 실패한 것이다. 영어만큼은 사교육 부담을 완화해 준다는 말을 믿었던 학부모와 수험생들은 허탈하다는 반응이다. 수험생 학부모 A씨는 “국어, 수학보다 영어 1등급 받는 것이 어렵다니 당황스럽다”며 “절대평가라서 부담을 덜 가졌는데 배신감이 든다”고 말했다.

출제 당국도 영어 난이도 조절 실패를 인정했다. 오승걸 평가원장은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브리핑에서 “출제를 마치고 검토했을 때 사설 모의고사, 시중 문항과 유사한 문항이 많아 교체한 문항이 많은데, 그 과정에서 난이도를 면밀하게 살피지 못한 면이 있었다”며 “추후 면밀히 분석해 내년에는 1등급 6∼10%를 목표로 출제하겠다”고 밝혔다.

수험생들의 혼란도 커졌다. 입시업계는 수시에서 수능 최저학력 기준을 충족하지 못한 수험생이 늘고, 정시 이월 인원이 증가하면서 경쟁률과 합격선도 출렁일 것으로 보고 있다. 영어가 당락을 결정하는 요소가 된 것이다. 임성호 종로학원 대표는 “영어가 수시·정시 모두에서 핵심 변수로 부상했다.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상황”이라며 “특히 정시 예측이 어려워졌다”고 밝혔다. 이만기 유웨이교육평가연구소장은 “영어 3등급을 받은 ‘인서울’ 목표 수험생의 셈법도 복잡해졌고, 영어 반영 비율이 낮은 대학으로 지원이 쏠릴 수 있다”며 “영어가 ‘상대평가 시절보다 더 무서운 킬러 과목’이 됐다”고 밝혔다.

◆국어·수학 격차 커져

국어도 표준점수 최고점이 147점까지 오르며 수학(139점)과 격차가 지난해 1점(국어 139점, 수학 140점)에서 8점으로 벌어졌다. 종로학원은 “수학 만점을 받아도 국어 고득점 수험생을 이길 수 없는 구조”라며 “수학을 잘 보고 국어를 못 본 수험생은 정시 지원에 상당한 어려움이 발생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다만 수학은 1등급 구간 내 점수 차가 지난해 9점에서 올해 11점으로 커지는 등 상위권 변별력은 올라갔다는 평가다. 김원중 대성학원 입시전략실장은 “표준점수 최고점수만 보면 작년과 비슷한 수준으로 보이지만, 최상위권 체감 난도는 높았던 시험”이라고 설명했다.

올해 정시는 결국 국어와 영어를 잘 본 학생이 유리하다는 것이 중론이다. 우연철 진학사 입시전략연구소장은 “올해 최상위권 변별력은 국어가 장악했다. 과거엔 ‘수학 실수를 국어가 얼마나 커버하느냐’가 당락이었다면, 올해에는 ‘국어 고득점 여부’가 당락”이라고 밝혔다. 이 소장도 “국어를 잘 본 학생이 의약학계열, 최상위권 대학 지원 시 절대적으로 유리한 구도”라며 “수학에서 1~2문제 실수를 했더라도, 국어 표준점수가 140점대라면 충분히 만회하고도 남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올해 일부 수능 시험장에서 논란이 됐던 컴퓨터 사인펜 번짐 문제와 관련, 평가원은 답안지 육안 확인 등을 거쳤다고 설명했다. 평가원에 따르면 수능 홈페이지 등을 통해 사인펜 번짐 이의신청이 258건 제기됐고, 교육청의 확징 요청이 91건 들어와 대조를 통해 중복 표기 답안지 426건을 점검했다. 오 원장은 “판독 과정에서 답안 중복으로 인식된 답안지 전체에 대해 육안 확인 과정을 거치는 등 수험생에게 불이익이 발생하지 않도록 조치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