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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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롱 “美가 우크라 배신할 수도” 통화록 유출…유럽의 불신 배경에는?

입력 : 2025-12-07 07:52:38
수정 : 2025-12-07 07:5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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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우크라이나를 배신할 수 있다”는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의 발언이 담긴 통화록이 공개되면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평화 구상을 둘러싼 유럽의 불신이 드러났다. 종전 협상 과정에서의 ‘유럽 패싱’과 러시아에 유리한 합의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배경으로 지목된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AFP연합뉴스

4일(현지시간) 독일 시사주간지 슈피겔이 입수했다고 보도한 유럽 정상들의 지난 1일 비공개 통화록에는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미국이 명확한 안전보장 없이 영토 문제에서 우크라이나를 배신할 가능성”을 언급했다는 내용이 담겼다. 프리드리히 메르츠 독일 총리는 젤렌스키 대통령에게 “앞으로 며칠 간 극도로 조심해야 한다”며 종전 협상에 나서는 미국 특사단이 “우리 모두를 상대로 장난을 치고 있다”고 경고한 것으로 전해진다. 핀란드의 알렉산데르 스투브 대통령과 마르크 뤼터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사무총장도 “우크라이나와 젤렌스키를 특사단과 단독으로 마주 앉게 해선 안 된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프랑스 엘리제궁은 “대통령이 그런 표현(배신)을 사용하지 않았다”고 부인했고, 독일 총리실도 개별 인용에 대한 답변을 거부했다. 우크라이나 대통령실 역시 “가짜뉴스에는 코멘트하지 않는다”며 거리를 뒀다. 그럼에도 영국 일간 가디언, 로이터통신 등 복수 매체가 “여러 참가자들이 통화 요약의 정확성은 인정하면서도 비공개 회의 관례상 직접 인용은 피하고 있다”고 전했다. 최소한 유럽 주요 정상들이 미국의 종전 협상 방식을 불신하고 있다는 정서 자체는 드러난 셈이다.

 

이번 통화의 직접적인 배경은 유럽이 사실상 배제된 채 진행된 트럼프 행정부의 ‘평화안 28개 조항’이었다. 트럼프 대통령 특사 스티브 위트코프와 재러드 쿠슈너는 최근 모스크바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5시간 넘게 회동했고, 이 채널을 통해 만들어진 28개 조항 초안은 도네츠크·루한스크 전면 양도, 러시아의 동결자산 해제·재투자, 제재 완화 가능성 등 러시아 요구에 과도하게 우호적인 내용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유럽 국가들과 우크라이나의 반발로 일부 조항이 삭제됐지만, 초안 작성과 수정 과정에서 유럽이 반복적으로 ‘패싱’을 당했다는 인식이 이번 통화에서 한꺼번에 폭발했다는 게 외신들의 공통된 분석이다.

 

이번 통화록 공개는 미국 주도로 속도를 내는 종전 협상에서 유럽이 배제되고 있다는 위기의식이 표면화한 사례로 풀이된다. 특히 프랑스는 우크라이나 전후 안보 질서에서 유럽의 발언권을 확보해야 한다는 입장을 지속적으로 강조해 온 만큼, 마크롱의 발언은 협상 과정에서 유럽을 배제한 미국 평화 구상에 대한 ‘경고’ 성격이라는 평가가 제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