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환(37)에겐 돈보다도, 데뷔 시즌부터 뛰어온 팀에서 계속 뛰는 ‘원클럽맨’이라는 명예로운 칭호보다도 ‘탈잠실’이 먼저였다보다. 4년 전 FA 계약 때 넣은 조항을 통해 두산에서 ‘셀프 방출’에 성공한 김재환이 타자 친화적인 홈 구장을 쓰는 SSG로 새 둥지를 옮겼다.
SSG는 2년 총액 22억원(계약금 6억원, 연봉 10억원, 옵션 6억원)에 계약을 했다고 5일 발표했다.
2021시즌을 마치고 생애 첫 FA 자격을 얻었던 김재환은 두산과 4년 총액 115억원의 계약을 맺었다. 4시즌을 보내고 올겨울 다시 한 번 FA 자격을 얻을 수 있었지만, FA 자격 신청을 하지 않았다. 처음엔 김재환의 이런 행보를 두고 두산 팬들은 ‘김재환이 FA 계약 후 4년 간 부진했던 자신의 성적에 대한 속죄로 FA 자격을 신청하지 않았나보다’ 혹은 ‘원 소속팀 두산에 남는 낭만’ 등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11월말 보류선수 명단 제출 마감을 앞두고 충격적인 소식이 전해졌다. 김재환이 두산의 보류선수 명단에서 제외되면서 방출된 것이다. 이는 4년 전 FA 계약 때 숨겨진 옵션 조항에 의한 것이었다. 당시 두산이 제시한 금액보다 더 큰 금액을 제시하는 구단이 나타나자 두산은 금액을 올려주는 대신 ‘4년 계약이 끝난 뒤 구단과 우선 협상을 진행하고 합의점을 찾지 못하면 조건 없이 보류권을 풀어준다’라는 김재환의 요구 사항을 옵션 조항에 넣어줬던 것이었다.
그때만 해도 두산은 김재환이 4년 뒤 이 옵션조항을 발동할 줄은 몰랐을 것이다. FA 권리를 행사하지 않은 김재환과 두산은 연장 계약 협상에 나섰으나 실패했다. 두산은 옵션 등을 포함해 3년 30억원 규모의 제안을 했지만, 김재환이 선택한 건 두산에서 스스로 걸어나오는 것이었다.
지난 4년간 부진했지만, 일발장타 능력을 갖춘 김재환을 아무런 보상 없이 영입할 수 있어 시장의 인기를 끌 줄 알았지만, 생각보다 시장의 반응은 냉담했다. 삼성은 KIA에서 FA로 풀린 최형우를 품었다. KIA는 최형우를 놓쳐놓고 김재환을 영입했다간 성난 팬심에 기름을 부을 수도 있었다.
입지가 좁아진 김재환을 품은 건 SSG였다. SSG와 김재환이 체결한 계약은 두산의 제시 조건보다 훨씬 낮다. 2년 최대 22억원. 보장금액은 16억원이다. 계약 기간은 1년 짧고, 금액도 10억원 이상 낮은 조건이다.
여기에서 김재환이 두산을 나온 진짜 이유를 짐작케 한다. 김재환은 무엇보다 드넓은 잠실벌을 벗어나고 싶었던 것 아닐까. 타자들에게 절대 불리한 잠실구장을 홈으로 쓰면서도 김재환은 전성기 시절, 다른 타자들과는 차원이 다른 타구질로 잠실 담장을 뻥뻥 넘겼다. 2018년엔 무려 44홈런을 때려내며 홈런왕과 MVP를 석권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제 30대 후반으로 접어들면서 김재환의 파워도 많이 줄었다. 다른 구장이었으면 넘어갔을 타구가 외야 깊숙한 곳에서 잡히는 일이 많았다. 결국 김재환은 자신의 떨어진 힘을 보완해줄 수 있는 타자 친화적 구장에서 뛰고 싶었을 것이다. 그게 목적이었다면 이번 SSG 이적은 완벽히 부합한다. 인천 SSG랜더스필드는 대구 삼성라이온즈파크와 더불어 KBO리그에서 가장 타자 친화적인 구장이다.
과연 김재환은 ‘탈잠실’ 효과를 누릴 수 있을까. 다시 한 번 30홈런 타자로 거듭날 수 있을까. 김재환은 내년 시즌 30홈런 이상을 ‘때려내야만’ 한다. 왜냐하면 탈잠실을 위해 잃은 게 많기 때문이다. 당장의 돈도 돈이지만, 두산을 나오는 과정에서 커리어 초반 ‘약물 논란’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감싸줬던 두산 팬들로부터 큰 비난을 감수해야 했다. 김재환은 “그동안 응원해 주신 두산 팬들께 감사하고 죄송하다”며 “이번 기회가 야구 인생의 마지막 도전이라고 생각했고, 도전이 헛되지 않도록 매 순간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