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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토 무통 로칠드는 왜 100년전 아트 레이블을 만들었나 [최현태 기자의 와인홀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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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4년 보르도 최초 샤토에서 직접 와인 병입 선포/널리 홍보 위해 이벤트성 아트 레이블 제작/1945년 연합군 승전 기념 아트 레이블 다시 기획/이후 매년 당대 최고 작가들 참여한 아트 레이블 선보여

 

샤토 무통 로칠드 최근 빈티지 아트 레이블. 홈페이지
샤토 무통 로칠드 최근 빈티지 아트 레이블. 홈페이지

샤토 무통 로칠드(Chateau Mouton Rothschild)는 프랑스 보르도 그랑크뤼 클라세 1등급 5대 샤토중에서도 가장 널리 알려진 와인입니다. 이유가 있습니다. 프랑스 와인 역사에서 아주 중요한 업적을 두 가지 쌓았기 때문입니다. 보르도 샤토 중 와이너리에서 직접 와인을 병입한 최초의 와이너리가 바로 샤토 무통 로칠드입니다. 또 하나가 아트 레이블입니다. 매년 피카소, 샤갈, 달리 등 당대 유명 아티스트의 작품을 레이블에 담기 시작하면서 와인을 수집하는 이들이 생겨날 정도로 명성을 날리기 시작했습니다.

 

샤토 무통 로칠드 초기 아트 레이블. 홈페이지

◆샤토 무통 로칠드 1등급 승격

 

1855년 파리만국박람회에서 유명한 보르도 와인들이 전시되는데 나폴레옹 3세는 와인을 유통하는 네고시앙들에게 당시 팔리던 가격을 참고해 1∼5등급까지 순위를 정한 리스트를 작성하라고 지시합니다. 이렇게 해서 60여개 와인이 그랑크뤼 클라세에 오릅니다. 이는 당시 전시를 위한 것이어서 객관적인 평가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이때 정해진 순위는 200년 가까이 요지부동입니다. 아마도 당시 리스트가 향후 200년이 넘도록 그대로 쓰일 것이라고 예상했다면 그렇게 대충 만들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보르도 그랑크뤼 클라세 1등급 샤토. 최현태 기자
1등급으로 승격된 해인 1973 빈티지 파블로 피카소 작품. 홈페이지

완고한 그랑크뤼 클라세 등급 체계는 단 한차례 변동이 있었는데 2등급이던 샤토 무통 로칠드(Chateau Mouton Rothschild)가 1973년 1등급으로 승급되면서 현재의 5대 샤토가 완성됩니다. 샤토 무통 로칠드를 생산하는 로칠드 가문은 유럽에서 손꼽히는 재력가입니다. 이 때문에 샤토 무통 로칠드가 돈의 힘으로 와인을 1등급으로 밀어 올렸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반면 로칠드는 원래 1등급에 포함될 정도의 뛰어난 품질이었지만, 영국에 뿌리를 둔 가문이라 최초 그랑크뤼 선정때 불이익을 당했다는 얘기도 떠돕니다.

 

바롱 나타니엘 드 로칠드. 홈페이지

1855년 그랑크뤼 선정 당시에는 샤토 무통 로칠드의 품질이 그리 뛰어나지 못했기에 1등급에 선정되기 힘들었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샤토 무통 로칠드는 원래 5대 샤토인 샤토 라피트와 샤토 라투르를 낳은 세귀르(Ségur) 가문의 방대한 영지의 일부였습니다. 약 1720년대부터 1830년 전후까지는 브란(Brane) 가문이 샤토 브란-무통(Brane-Mouton)을 설립해 품질을 널리 인정받은 와인을 생산했습니다. 이후 독일계 가문에서 갈라져 나온 영국 로칠드 집안의 일원인 바롱 나타니엘 드 로칠드(Baron Nathaniel de Rothschild)가 “손님들에게 자신의 이름이 적힌 와인을 대접하고 싶다”며 보르도 메독 포이약(Pauillac)의 샤토 브란-무통을 1853년 경매에서 매입합니다. 하지만 당시 포도밭은 오랫동안 방치된 상황이었습니다. 그래서 1855년 등급 분류때 샤토 무통 로칠드는 2등급 보다 더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는 와인을 만들지 못하던 시기였다는 얘기가 전해집니다.

 

샤토 무통 로칠드 1924 빈티지 아트 레이블과 바롱 필리프. 홈페이지

◆보르도 최초 와이너리 직접 병입

 

와이너리는 1922년에 바롱 필리프 드 로칠드(Baron Philippe de Rothschild·1902–1988))가 상속 받으면서 본격적인 혁신에 박차를 가합니다. 그는 무통을 진취적이고 현대적인 와이너리로 재탄생시키는 데 힘을 쏟았는데 최대 업적이 와이너리에서 직접 병입한 것입니다. 그는 1924년 빈티지부터 ‘이 와인은 샤토에서 병입했다(Ce vin a été mis en bouteille au château)’는 문구를 레이블에 넣기 시작했습니다. 과거 보르도 와인들은 네고시앙들이 와인을 사서 병에 담아 팔았는데 가격이 비싼 와인일수록 다른 와인을 섞어 파는 일이 많았다고 합니다. 샤토 무통 로칠드는 와인의 품질을 지키기 위해 직접 병입을 시작한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와인 레이블에 ‘미 쟝 부티에(mis en bouteille+ 샤토 이름)’이 적혀 있는 것은 바로 샤토 무통 로칠드에서 시작된 전통입니다.

 

아트 레이블이 본격 시작된 샤토 무통 로칠드 1945 빈티지. 홈페이지

◆아트 레이블의 탄생

 

바롱 필리프의 또 다른 업적은 아트 레이블입니다. 그는 특정 샤토의 독창적인 레이블이 허락되지 않던 시절인 1924년 포스터 아티스트 장 칼뤼(Jean Carlu)와 함께 시대를 앞선 최초의 아트 레이블을 세상에 처음 선보입니다. 당시는 샤토에서 와인을 직접 병입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널리 알리기 위한 일회성 이벤트였습니다. 하지만 1945년부터 샤토 무통 로칠드의 상징이 된 본격적인 아트 레이블이 시작됩니다. 바롱 필리프는 1945년 연합군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 레이블을 예술 작품으로 꾸미는 아이디어를 떠올렸고, 이를 당시 무명에 가까웠던 젊은 예술가 필리프 줄리앙(Philippe Jullian·1921–1977)에 디자인을 맡깁니다. 바로 ‘V for Victory’로 전쟁 내내 처칠이 자유 세력을 결집시키는데 사용한 유명한 “V for Victory”에 따왔습니다. 이후 샤토 무통 로칠드 아트 레이블은 한해도 거르지 않고 이어지면서 와이너리의 상징이 됐습니다.

 

살바도르 달리 작품 1958 빈티지. 홈페이지
호안 미로 작품 1969 빈티지. 홈페이지
마르크 샤갈 작품 1970 빈티지. 홈페이지

당대의 내로라하는 작가들이 총망라됐는데 후안 미로(Joan Miró), 마르크 샤갈(Marc Chagall), 조르주 브라크(Georges Braque), 파블로 피카소(Pablo Picasso), 안토니 타피에스(Antoni Tàpies), 프란시스 베이컨(Francis Bacon), 살바도르 달리(Salvador Dalí), 발튀스(Balthus), 제프 쿤스(Jeff Koons) 등입니다. 심지어 웨일스의 왕자 찰스(현 국왕 찰스 3세)도 아트 레이블 작업에 참여합니다.

 

앤디 워홀 작품 1975 빈티지. 홈페이지
이우환 작품 2013 빈티지.

한국의 이우환 작가도 2013 빈티지를 맡았습니다. 그의 작품은 오른쪽으로 갈수록 바이올렛 빛깔이 라이트한 퍼플에서 루비를 거쳐 가넷으로 점점 짙어지는 아주 간결한 그림입니다. 그럼에도 숙성될수록 색이 짙어지고 맛과 향이 깊어지는 와인의 정체성을 그라데이션 기법으로 잘 담았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아트 레이블. 홈페이지
아트 레이블. 홈페이지
아트 레이블. 홈페이지

바롱 필리프의 딸 바로네스 필리피느 드 로칠드(Baroness Philippine de Rothschild·1933–2014)는 1981년부터 레이블을 위한 그림 전시를 열기 시작했고, 2013년에는 와이너리에 상설 전시 공간도 마련해 전통을 이었습니다. 현재 와이너리는 세 자녀 필리프 세레이(Philippe Sereys), 카밀 세레이(Camille Sereys), 줄리앙 드 보마셰(Julien de Beaumarchais)가 이끌고 있습니다. 포도밭은 모두 82ha로 카베르네 소비뇽(79%), 메를로(17%), 카베르네 프랑(3%), 쁘띠 베르도(1%)을 재배합니다. 포도나무 수령은 50년입니다. 와인은 100% 프렌치 오크 새 배럴에서 숙성합니다.

 

바로네스 필리피느(왼쪽)와 바롱 필리프. 홈페이지
필피프, 카밀, 줄리앙 드 보마셰(왼쪽부터). 홈페이지

바롱 필리프는 다른 나라의 와이너리들과 합작해 명작을 탄생시킵니다. 1979년 미국 ‘나파밸리 와인의 아버지’ 로버트 몬다비사와 나파밸리에 오퍼스 원(Opus One)을 만들었고 1997년 칠레 콘차 이 토로와 함께 새로운 와이너리를 설립해 명품와인으로 유명한 알마비바(Almaviva)를 선보였습니다. 

 

최현태 기자는 국제공인와인전문가 과정 WSET(Wine & Spirit Education Trust) 레벨3 Advanced, 프랑스와인전문가 과정 FWS(French Wine Scholar), 부르고뉴와인 마스터 프로그램, 뉴질랜드와인전문가 과정, 캘리포니아와인전문가 과정 캡스톤(Capstone) 레벨1&2를 취득한 와인전문가입니다. 2018년부터 매년 유럽에서 열리는 세계최대와인경진대회 CMB(Concours Mondial De Bruxelles) 심사위원, 2017년부터 국제와인기구(OIV) 공인 아시아 유일 와인경진대회 아시아와인트로피 심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소펙사 코리아 한국소믈리에대회 심사위원도 역임했습니다. 독일 ProWein, 이탈리아 Vinitaly 등 다양한 와인 엑스포를 취재하며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 포르투갈, 미국, 호주, 독일, 체코, 스위스, 조지아, 중국 등 다양한 국가의 와이너리 투어 경험을 토대로 독자에게 알찬 와인 정보를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