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메뉴보기메뉴 보기 검색

YS 정치적 고향으로 옮기는 해수부 [김태훈의 의미 또는 재미]

입력 : 2025-12-11 06:00:00
수정 : 2025-12-11 08:11:32
폰트 크게 폰트 작게

경남 거제도 섬마을에서 태어나 항구 도시 부산을 정치적 고향으로 삼은 김영삼(YS) 전 대통령은 바다를 무척 사랑했다. 1993년 그가 대통령으로 취임했을 때 바다에 관한 행정 업무는 수산청, 해운항만청 등에 흩어져 있었다. 해상 치안은 경찰청 산하 해양경찰청이 맡았다. YS의 대선 후보 시절 공약에 따라 1996년 8월 해양수산부 신설이 이뤄졌다. 수산청 및 해운항만청이 통합돼 해수부 본부가 되었고, 해양경찰청은 경찰청에서 분리돼 독립 외청(外廳)으로 거듭난 뒤 해수부 산하로 옮겨갔다.

 

10일 부산의 해양수산부 신청사 인근 시장 입구에 ‘해수부 이전을 환영합니다’라고 적힌 현수막이 내걸려 있다. 뉴스1

YS의 후임자 김대중(DJ) 전 대통령은 당선인 시절 취임을 앞두고 정부조직 개편을 구상했다. 당시는 국제통화기금(IMF) 개입을 초래한 외환 위기로 나라 살림이 극도로 어려운 시기였다. 구조조정 차원에서 해수부 폐지를 검토한다는 소문이 나돌자 아직은 현직 대통령인 YS가 격분했다. 정권교체가 임박한 1998년 2월 3일 YS는 청와대에서 DJ와 만나 해수부 폐지 재고(再顧)를 강력히 요청했다. 그렇지 않아도 ‘해수부 폐지’ 얘기가 나오며 부산 민심이 심상치 않다는 보고를 받아 알고 있었던 DJ는 이를 흔쾌히 수용했다.

 

기업인 출신인 이명박(MB) 전 대통령은 임기 내내 ‘작은 정부’에 집착했다. MB 당선 이후 관가에는 ‘여성가족부, 통일부 등이 없어질 수 있다’는 위기감이 감돌았다. 여가부는 보건복지부와, 통일부는 외교부와 각각 통합한다는 것이다. 해수부 또한 폐지 대상 1순위로 거론됐다. 실제로 MB는 해수부를 기존의 건설교통부와 합쳐 국토해양부를 만들었다. 해수부가 담당했던 수산 관련 업무는 농림수산식품부로 넘어갔다. 2013년 박근혜정부 출범 후 해수부가 부활했으나 직원들의 트라우마는 컸다.

 

지난 9일 부산의 해양수산부 신청사에 이사 차량이 도착하고 있다. 해수부는 10일부터 부산 신청사에서 단계적으로 업무를 시작해 오는 21일까지 이사를 모두 완료할 계획이다. 연합뉴스

한국고용정보원은 2024년 6월 부산을 우리나라 6개 광역시 중 유일한 ‘소멸 위험’ 지역으로 분류했다. 2014년부터 2023년까지 10년간 20대 이하 청년 인구 비율이 가장 급속히 줄어든 곳이 부산이란 점을 근거로 들었다. 실제로 YS정부 시절인 1995년 400만명에 육박했던 부산 인구는 오늘날 320만명 선까지 내려앉았다. 이런 가운데 “해수부를 빠르게 부산으로 이전하라”는 이재명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해수부 청사의 부산 이사가 본격화했다. 미국 작가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소설 제목을 따 “부산에는 ‘노인과 바다’ 말고는 아무것도 없다”라는 자조 섞인 말까지 나오는 가운데 해수부가 부산 상권과 경제를 살리는 특급 도우미 역할을 톡톡히 하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