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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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일호의미술여행] 획일화된 기능주의를 깬 건축

입력 : 2025-12-11 22:57:44
수정 : 2025-12-11 22:5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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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상회화나 추상조각이 유행한 20세기 초 건축에서는 모더니즘 건축이란 이름의 유사한 경향이 나타났다. 모더니즘 건축은 건물 자체의 기능과 형식을 강조했다. 건물의 장식이나 부속물의 아름다움보다 ‘기능이 곧 미’라는 순수기능주의를 내세웠다. 철골 구조와 유리 등을 사용해서 수직선이 압도하는 고층 건물을 만들어 단순한 구조와 건축 고유의 형식이 두드러지게 했다.

20세기 후반 들어 이런 모더니즘 건축에 대한 반발로 포스트모더니즘 건축이 등장했다. 포스트모더니즘 건축가들은 모더니즘 건축의 획일화된 양식이 전 세계로 퍼져나가 국제적인 양식이 된 것에 반발했다. 그중 한 경향은 직선적 구조와 형식에 치우친 모더니즘 건축에 반대해서 곡선이나 변형된 형태들을 사용하기도 했다. 대표적인 건축가가 지난 4일 별세한 프랭크 게리였다.

프랭크 게리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

게리가 독특한 모습으로 설계한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이다. 철강 산업이 쇠퇴하면서 몰락해가던 스페인의 빌바오에 건축했는데, 기둥을 쓰지 않고 변형된 곡선 형태의 티타늄판들을 결합해서 50m 높이의 기괴한 미술관 건물을 만들었다. 모더니즘 건축의 상징인 직선적 구조나 정형화된 형식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내부 중앙에는 나선형 형태로 올라가는 아트리움이 있고, 아트리움을 따라 배치된 작은 전시 공간들이 서로 연결되는 개방형 구조로 되어 있다. 각 전시장의 모양과 용도도 일부를 제외하고는 서로 다르게 해서 기능 중심의 공간형식을 파괴했다. 기능이 곧 아름다움이라는 모더니즘 건축 원리를 비판한 해체주의 건축으로 불린다. 그 후, 미술관의 독특한 모습 때문에 관광객들이 몰려들면서 예술을 통해 도시 경제를 살려낸 대표적인 사례로 여겨지기도 한다.

이런 시도로 게리는 예술과 공학 사이에 놓인 건축을 명실상부한 미술작품으로 자리 잡게 했다. 경직된 사회 분위기에 신선한 충격을 주고 건축계에 새바람도 일으켰다.

박일호 이화여대 명예교수·미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