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지역에서 일하는 라오스 출신 계절근로자 A씨는 5개월간 일해 받은 실수령 임금 900만원 가운데 절반가량을 브로커 비용으로 지출했다. A씨를 도운 브로커는 입국 전 송출 과정에서 서류 준비와 선발·출국 절차 등에 관여하며 법정 비용을 웃도는 수수료를 챙긴 것으로 전해졌다. 또 다른 외국인 근로자 B씨는 월급 180만원 중 비닐하우스 숙소비로 46만원을 지불한다고 밝혔다.
11일 경기도에 따르면 도내 외국인 계절근로자들은 여전히 인권 사각지대에 놓인 것으로 드러났다. 아직 상당수가 컨테이너나 비닐하우스 등 가건물에 살면서 불법 브로커에 농락당할 위험에 노출됐다. 계절근로자는 국내 지방자치단체나 공공기관, 비영리 민간단체 등이 해외 지자체와 협약을 맺고 근로자를 선발해 일정 기간 국내에 머물며 일하도록 하는 제도다.
도가 올 7∼11월 외국인 계절근로자 419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 인권침해를 경험한 계절근로자 가운데 절반 이상은 위급 상황에서 어디에 도움을 청할지 모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체 응답자 403명의 78.2%인 315명은 ‘근로계약서를 썼다’고 답했으나, ‘아주 잘 이해하고 있다’는 답변은 162명(54.4%)에 그쳤다.
인권침해 경험은 근로 계약서상 근무지와 실제 근무지가 다름(14.3%), 초과 임금 미지급(13.3%), 언어폭력(11.1%) 등의 순이었다. 특히 공공형 계절근로자의 경우 초과 임금 미지급(35.4%), 언어폭력(29.1%), 숙소비 추가 지불(22.0%), 근무지 다름(21.0%), 외출 금지(15.7%), 신체 폭력(7.3%) 등 다양한 인권침해에 노출됐다.
인권침해를 겪은 응답자에게 대응 여부를 물어본 결과, 87.5%가 ‘참는다’고 답했다. 또 ‘위급 상황 발생 시 도움을 요청할 기관을 알고 있다’고 답한 비율도 41.9%에 그쳤다.
고용주 126명을 대상으로 한 계절근로자 근무 조건 설문에서도 3명 중 1명 이상은 임시 가건물(22.8%)이나 고용주 거주지의 부속 숙소(15.8%)에 근로자들을 머무르도록 한 것으로 나타났다. 일반주택은 36.8%에 그쳤다. 계절근로자의 월 평균 임금은 198만원이었는데, 이 중 숙박·식비 등 공제비용이 19만4000원에 달했다. 임금명세서를 발급하는 고용주도 절반가량(58.4%)에 그쳤다.
계절근로자 업무를 담당하는 시·군 공무원 34명에게 질문한 결과, 4명 가운데 1명(24.2%)은 브로커 등 중개인으로부터 도움을 받은 경험이 있다고 말했다.
이번 조사는 경기도 인권담당관과 농업정책과, 경기도농수산진흥원, 한양대학교 에리카산학협력단이 공동으로 진행했다. 도 관계자는 “계절근로자들이 안전하고 존중받는 환경에서 일할 수 있게 제도적 기반을 강화하기 위해 실태조사를 했다”며 “조사 결과를 토대로 근로계약, 언어 접근성, 일터에서의 안전, 중개인 등 종합적인 제도 개선안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