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저금리 시대에 대출을 최대한 늘려 집을 샀던 이른바 ‘영끌족’의 부동산이 속속 경매 시장으로 쏟아져 나오고 있다.
금리 급등으로 이자 부담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면서 상환 능력이 한계에 도달한 결과다.
내년부터는 2021년 저금리기에 대거 판매된 5년 혼합형 주담대가 일제히 변동금리로 전환되는 시기가 도래해 본격적인 신용 리스크 확산이 우려된다.
◆올해만 4만5000건…최근 5년 중 두번째로 많은 경매 ‘경고등’
12일 부동산업계에 따르면 올해 1~11월 전국에서 ‘임의경매개시결정’ 등기가 신청된 집합건물(아파트·오피스텔·상가)은 총 4만5324건에 달했다.
작년 동기(5만1853건)보다 소폭 감소했지만, 최근 5년으로 범위를 넓히면 두 번째로 높은 수준이다.
연도별 증가 추세는 더욱 뚜렷하다. 불과 3년 만에 2.4배 이상 폭증했다. 금리 상승기와 부동산 가격 조정기가 동시에 맞물린 결과로 분석된다.
지역별로는 올해 1~11월 기준 △경기 1만5072건 △부산 6297건 △서울 5210건 △인천 3132건이 경매 개시 등기를 기록했다.
서울은 지난달 593건으로 직전월 대비 두 배 이상 증가하며 수도권의 위험 신호가 가장 먼저 포착되고 있다.
◆‘5년 혼합형’의 함정…내년부터 진짜 충격 온다
현재의 경매 급증은 ‘전초전’에 불과하다는 분석도 나온다.
2021년 대거 판매된 5년 ‘혼합형(고정→변동)’ 주택담보대출이 내년부터 순차적으로 변동금리로 전환되기 때문이다.
금리 인상기 전환 시 이자가 크게 튀어 오를 가능성이 높다.
한 경제 전문가는 “금리 정상화 국면에서 레버리지를 과도하게 일으킨 차주들이 구조적으로 취약해졌다”며 “5년 혼합형이 변동금리로 전환되면 체감 이자 부담이 30~50% 증가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전세가격 회복 속도가 더딘 것도 문제다.
전세보증금 반환 압박이 커지는 가운데 거래 절벽까지 겹치면서 영끌족뿐 아니라 1주택 실수요자들까지 상환 여력이 흔들리고 있다.
◆오피스텔·상가까지 급류…“중소형 자산 유동성 위기 이미 시작”
영끌 후폭풍은 아파트에만 그치지 않는다. 오피스텔, 상가 등 수익형 부동산에서도 경매 물량이 빠르게 늘고 있다.
한 부동산 전문가는 “도시형 주거시설·상가로까지 디레버리징(부채 축소) 사이클이 확산되는 중”이라며 “중·소형 자산 보유층의 유동성 위기가 이미 본격화됐다고 보는 게 맞다”고 전했다.
상가의 경우 금리 부담과 경기 둔화로 임차 수요가 줄면서 ‘월세 수익 감소 → 이자 미납 → 경매’라는 악순환이 나타나는 구조다.
◆“지금의 경매 증가는 빙산의 일각”…가계 신용 리스크 분수령
전문가들은 내년 상반기를 가계부채 리스크의 정점 구간으로 본다.
금리 재산정 시점이 몰려 있는 올해는 한국 가계 신용의 분수령이다. 연체율은 내년 상반기 오히려 더 오를 가능성이 크다.
영끌족이 선호했던 5년 혼합형 대출이 변동금리로 전환되는 시점은 금융 리스크 확대의 ‘방아쇠’가 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왔다.
현재의 경매 급증은 겉으로 드러난 초기 현상일 뿐, 아직 현실화되지 않은 차주가 더 많다는 경고다.
◆부동산시장 충격 얼마나?…전문가들 “가격 조정 폭, 예상보다 클 수도”
경매 물량 급증은 공급 확대와 직결된다. 시장에 나오는 매물량이 증가하면 실거래가 하락 압력이 커지기 때문이다.
경매 공급이 5만건 수준에 이르면 본격적인 ‘공급 쇼크’로 이어질 수 있다. 수도권의 가격 조정 폭은 현재 예상보다 클 가능성이 높다.
전문가들은 “시장 전체가 패닉에 빠질 가능성은 낮다”면서도 “차주 간 양극화가 더 뚜렷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현금 흐름이 안정적인 가구와 그렇지 않은 가구의 격차가 크게 벌어질 것이란 의미다.
◆“무리한 매수 금물”…대응 전략은?
전문가들은 공통적으로 현금 보유 전략을 강조한다.
경매 물량이 가파르게 늘어날 때는 무리한 매수보다 현금 비중을 높이는 것이 유리하다.
금리 안정 이후 매물 조정이 마무리되는 시점에 우량 물건을 선별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내년 하반기 이후 금리가 완화될 경우 일부 반등 국면이 나타날 수 있지만, 그 전까지는 시장의 ‘체력 검증’ 구간이 지속될 전망이다.
◆“‘영끌’ 시대 끝났다”…본격적인 자산 재편의 시작
2021년~2022년 부동산 폭등기와 초저금리 환경에서 시작된 ‘영끌’ 열풍은 금리 정상화 국면에 접어들며 커다란 소용돌이를 맞고 있다.
경매 급증은 그 후폭풍의 단면일 뿐이다. 올해는 본격적인 부채 축소, 자산 재편의 해로 기록될 가능성이 높다.
전문가들은 “지금은 버티기가 아닌 리스크 관리와 구조조정의 시대”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