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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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년 전 ‘창원 택시기사 살인 사건’, 그날의 진실은? [사건수첩]

입력 : 2025-12-13 10:00:00
수정 : 2025-12-13 14:3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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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국 땅에 와서 보호자도 없는 바람에 누명을 써서 살고 있는 저를 도와주세요.”

 

이는 우즈베키스탄 국적의 보조로브 아크말(36)씨가 2021년 10월 재심 전문 박준영 변호사에게 보낸 첫 편지의 내용 중 일부이다.

박준영 변호사. 연합

아크말씨는 2009년 경남 창원에서 택시기사를 살해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뒤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지금은 교도소에 복역 중이다.

 

이 사건은 이른바 ‘창원 택시기사 살인 사건’으로 알려져 있다.

 

아크말씨는 “당시 강압수사에 못 이겨 거짓 자백으로 억울한 옥살이를 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13일 법조계 등에 따르면 지난 9일 창원지법 형사2부(부장판사 김성환)는 아크말씨 측이 제기한 재심 청구사건 첫 심문을 진행했다.

 

이는 형이 확정된 사건의 재심 여부를 가리는 과정의 재판인데, 이 사건의 실체적 진실을 다툴 재심 여부가 큰 관심을 모으고 있다.

 

이 사건은 2009년 3월 창원시내 한 주택가 골목길에 주차된 택시에서 택시기사 50대 A씨가 숨진 채 발견되면서 시작됐다.

 

당시 A씨에게서 끈으로 목이 졸린 흔적과 여러 차례 흉기에 찔린 흔적이 발견됐다.

 

경찰은 범인이 손님인 척하고 택시에 탔다가 A씨를 살해하고 돈을 훔쳐 달아났을 것으로 보고 수사에 착수했다.

 

그러나 택시에서는 범인을 특정할만한 흔적이 발견되지 않았고, 전날 밤 A씨를 봤다는 목격자도 없어 사건은 미궁에 빠졌다.

 

그러다 같은 해 7월 인근 지역에서 택시 강도 사건이 발생했는데, 아크말씨 등 우즈베키스탄 국적 외국인 3명이 이 사건 용의자로 지목되면서 택시기사 살인 사건은 반전을 맞았다.

아크말씨가 썼다는 진술서. 박준영 변호사 제공

아크말씨가 앞서 발생한 택시기사 살인 사건의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되면서다.

 

경찰은 당시 아크말씨의 ‘자백’을 받아 택시기사 살인 사건을 검찰에 송치했고, 아크말씨는 1심 재판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그는 항소했지만 2010년 4월 대법원에서 형이 확정됐다.

 

아크말씨는 2015년 7월 이 사건에 대한 재심을 청구했지만 법원은 재심 청구를 기각했다.

 

줄곧 “억울하다”고 주장하는 아크말씨의 이번 재심 청구사건은 재심 전문 변호사로 알려진 박준영 변호사가 맡고 있다.

 

박 변호사는 이번 재심 청구 변론에서 “자백이 사실상 유일한 증거인 사건에서 미성년 외국인이라는 취약한 지위의 피고인이 위법한 수사와 형식적인 국선변호, 부실한 재판 심리 속에 유죄 판결을 받았다”며 재심 청구 이유를 설명했다.

 

그는 또 아크말씨가 사건 당시 미성년자로서 절차적 권리를 제대로 보장받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박 변호사는 “아크말씨는 긴급체포 당시 기준 19세 미성년자였지만, 수사 과정 전반에서 미성년자로서 보장받았어야 할 절차적 권리를 제대로 고려되지도, 보장되지도 않았다”며 “경찰이 아크말씨를 체포·구속하면서 영사기관에 통보하지 않고, 영사 접견권을 고지하지도 않았다”고 밝혔다.

 

이어 “강도살인죄의 법정형은 사형 또는 무기징역으로, 아크말씨는 당시 검사로부터 사형을 구형 받았지만 이 형량이 자신의 생명을 박탈하는 것인지 제대로 인지하지 못했다”며 “검사 역시 당시 구형 의견에서 ‘피고인 자백 외에 이 사건 범행이 피고인의 소행이라는 사실을 입증할 수 있는 명백하고 확실한 직접증거는 없다’고 명시했다”고 설명했다.

 

박 변호사는 전북대 의과대학 법의학 이호 교수의 의견서를 토대로 재심 사유인 무죄를 입증할 명백한 새로운 증거를 발견했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그는 “1·2·3심 재판이 8개월 만에 마무리됐는데, 재심 대상 판결이 확정되기까지 누구도 수사 과정의 위법을 문제 삼지 않았고, 경찰과 검사는 피고인 자백과 모순되는 피해 택시 이동 경로 관련 폐쇄회로(CC)TV 기록, 국과수 감정결과 등 피고인에 유리한 증거들을 송치 과정에서 의도적으로 누락하거나 법원에 제출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 사건 피해자 A씨 유족들도 피고인의 재심과 재수사를 간절히 바란다”며 “내국인과 마찬가지로 모든 법적 권리와 방어권을 온전히 보장한 상태에서 공정하고 의심 없는 판단을 내려달라고 호소했다”고 전했다.

 

박 변호사는 “피해자의 가족이 살인범으로 잡힌 사람의 재심을 도와야 한다는 현실은 상식적으로 받아들이기 힘든 일이지만, 유가족은 그럼에도 재심을 돕기 위해 나섰다”고 덧붙였다.

 

검찰은 이 사건과 관련한 의견은 재판장에서 구술로 따로 말하지 않고, 이미 제출한 의견서로 갈음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앞으로 재판에 필요한 자료와 증인 신청 관련 의견서 등을 제출 또는 검토해달라고 아크말씨 측과 검찰에 요청했다.

 

내년 2월12일 오전 11시에 아크말씨의 재심 여부를 가릴 2차 심리가 진행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