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에 ‘퓌러’, 이탈리아에 ‘두체’가 있다면 스페인에는 ‘카우디요’가 있다. ‘퓌러’ 히틀러와 ‘두체’ 무솔리니는 제2차 세계대전 패배의 책임을 지고 자살하거나 죽임을 당한 반면 스페인의 ‘카우디요’는 82세까지 천수(天數)를 누렸다. 더욱이 인생의 절반 가까운 약 40년 동안 한 나라의 최고 지도자로서 철권을 휘둘렀다. 죽기 전에 자신의 후계자를 직접 지정했고 유언대로 그가 새 국가원수에 올랐으니 이쯤 되면 절대 왕정 국가의 황제가 부럽지 않을 정도다. 스페인 역사상 처음이자 마지막 ‘카우디요’를 지낸 인물, 바로 독재자 프란시스코 프랑코(1892∼1975) 장군이다.
1936년 공화국 스페인에서 군부 쿠데타가 일어났다. 당시 아프리카의 스페인령 모로코에 주둔하고 있던 프랑코 장군이 내란 우두머리였다. 약 3년에 걸친 정부군과 반란군의 내전은 1939년 반란군 승리로 끝났다. 그때부터 스페인 전역이 프랑코의 군사 독재 치하에 들어갔다. 스페인 내전 종식 후 꼭 30년이 흐른 1969년 프랑코는 스페인 왕실의 후손인 31세 젊은이를 자신의 후임 국가원수로 지명한다. 1975년 프랑코가 사망하며 스페인은 1930년대 초 이후 40여년 만에 왕정 복고가 이뤄졌다. 새 국왕으로 즉위한 후안 카를로스 1세의 치세 아래 입헌군주제 그리고 의원내각제로의 개헌이 단행되며 스페인은 ‘독재 국가’의 오명을 벗고 민주주의 국가로 거듭났다.
민주화 이후 스페인에서 ‘프랑코’는 일종의 금기어가 됐다. 스페인 곳곳에 세워진 프랑코 동상은 거의 다 사라졌다. 스페인 내전 기간 죽은 전몰 장병 4만여명의 묘역 곁에 조성됐던 프랑코 무덤은 2019년 가족 묘지 예배당으로 이장(移葬)됐다. 그런데 요즘 스페인 청년들 사이에 프랑코 시대를 긍정적으로 재평가하는 움직임이 거세다고 하니 뜻밖이다. 프랑코 사망 50주기인 지난 11월 19일 온라인의 관련 게시물엔 “돌아와요 프랑코”, “최고의 지도자”, “스페인 만세” 등 댓글이 줄줄이 달렸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프랑코 계승을 내세운 극우 정당 지지율이 18~35세 젊은층에선 30%까지 치솟는다. 1960∼1970년대 스페인 경제의 고도 성장에 대한 향수 때문이란 분석이다.
프랑코 덕분에 왕좌에 오른 스페인 전 국왕 후안 카를로스 1세가 최근 ‘화해’(Reconciliation)라는 제목의 회고록을 펴냈다. 2014년 장남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지금은 스페인을 떠나 해외를 전전하는 그는 책에서 “나는 프랑코 장군을 엄청나게 존경했으며, 그의 지성과 정치적 감각을 높이 샀다”고 밝혔다.
실제로 후안 카를로스 1세는 요즘 스페인 청년층을 중심으로 옛 프랑코 시대에 대한 호의적 여론이 확산하고 있는 점이 회고록 출간의 결정적 이유가 됐다고 설명했다. 그가 책 제목으로 선택한 화해는 다름아닌 ‘프랑코로 대표되는 구 체제’와의 화해를 뜻하는 걸까. 자발적인 화해야 무슨 문제가 되겠느냐마는 자칫 화해의 강요, 심지어 독재의 미화로까지 변질하는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