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말 휴가차 찾은 프랑스 파리에서 시내 BHV 마레 백화점에 들렀다. 파리시청 맞은편에 자리한 이 백화점의 최상층인 6층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명품도, 프랑스 디자이너 브랜드도 아닌 중국 전자상거래 업체 쉬인(SHEIN)의 오프라인 매장이었다.
이 매장은 지난달 초 반대 시위와 논란 속에 영업을 개시했지만 차별화된 가격 덕인지 손님이 꾸준히 오가는 모습이었다. 스웨터가 20유로(약 3만5000원)를 넘지 않았으며, 롱패딩 가격도 74유로(12만8000원) 선으로 저렴했다. 무엇보다 눈에 띈 것은 거의 모든 옷에 붙어 있는 QR코드였다. 휴대전화를 갖다 대면 쉬인의 온라인 매장으로 바로 연결됐다. 오프라인 매장이지만 온라인 플랫폼의 연장선에 있다는 점을 숨기지 않으며 가격에 있어서는 자신감이 있다는 뜻으로 읽혔다. 파리 한복판의 프랑스 전통 백화점에서 중국 초저가 플랫폼의 논리가 그대로 구현된 셈이다.
이뿐 아니다. 쉬인의 오프라인 매장보다 더 크고 조용한 변화가 스마트폰 화면 속에서 진행 중이다. 다른 중국 전자상거래 업체 테무와 알리익스프레스는 이미 유럽 주요 국가 대부분에서 일상적인 소비 채널로 자리 잡았다. 테무는 2023년 프랑스와 독일, 이탈리아, 스페인, 네덜란드, 영국 등에 동시 진출했고, 불과 2년도 채 되지 않아 유럽연합(EU) 내 월간 이용자 수 1억명을 넘어섰다. 알리익스프레스는 그보다 앞서 유럽 시장에 뿌리를 내렸다. 중국 중소 제조업체가 유럽 소비자에게 직접 물건을 파는 구조는 더 이상 낯설지 않다.
중국 플랫폼의 유럽 공세는 미국 시장에서의 어려움 속에서 더 뚜렷해졌다. 미국이 관세와 규제를 강화하자 중국 전자상거래 업체들은 유럽을 대체 시장으로 삼았다. 광고비 지출을 늘렸고, 현지 언어와 결제시스템을 빠르게 흡수했다.
이 과정에서 유럽으로 유입되는 저가 소포 물량은 급증했다. 지난해 유럽에 들어온 150유로 미만 소포는 46억개에 달했고, 이 가운데 90% 이상이 중국발이었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선택지가 늘었을 수 있지만 유럽 산업계는 이를 공정 경쟁의 붕괴로 받아들였다. 같은 시장에서 경쟁하지만 적용받는 규칙이 다르다는 문제 제기다.
유럽의 대응이 본격화된 것도 이때부터다. EU 재무장관들은 최근 회의를 열고 150유로 미만 해외 소포에 적용되던 관세 면세 혜택을 폐지하기로 합의했다. 당초 계획보다 시점을 앞당겨 이르면 내년부터 저가 소포에도 관세나 통관 수수료를 부과하겠다는 구상이다.
산업계 반응은 대체로 환영 쪽에 가깝다. 스웨덴과 독일의 소매·전자상거래 업계는 공정 경쟁의 출발점이 될 것이라고 평가했고 이탈리아 패션업계는 산업 생존에 필요한 조치라고 반겼다. 다만 기대만큼 회의도 따른다. 소포당 1~2유로 수준의 수수료로 중국 플랫폼의 가격 경쟁력을 꺾을 수 있느냐는 의문이다.
EU의 대응은 관세에만 머물지 않는다. 최근에는 아일랜드 더블린의 테무 유럽 본사를 압수수색하며 중국 정부의 보조금 수혜 여부를 조사했다. 2023년부터 시행 중인 역외보조금규정(FSR)에 따른 조치다. 중국 정부나 공공기관으로부터 과도한 지원을 받은 기업이 EU 시장에서 경쟁할 경우 이를 시장 왜곡으로 보고 제재할 수 있도록 한 제도다. 위반이 확인되면 연 매출의 최대 10%에 해당하는 벌금이 부과될 수 있다.
이런 흐름은 유럽만의 문제가 아니다. 한국 역시 비슷한 상황이다. 중국 전자상거래 플랫폼들은 국내에서도 ‘해외 직구’라는 외곽에 머물지 않는다. 국내에 물류 거점을 마련하고 배송시간을 줄이며, 한국 기업과의 협업을 통해 시장 안으로 들어오고 있다. 주문에서 배송까지 걸리는 시간이 짧아질수록 이들의 가격 경쟁력은 더 부각될 전망이다.
파리의 백화점 한 층을 차지한 쉬인 매장은 변화의 상징이지만 더 중요한 변화는 물류와 데이터의 흐름 속에서 이미 진행되고 있다. 결국 우리도 가격 경쟁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를 넘어 어떤 규칙 아래에서 경쟁할 것인지를 고민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