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난로 불꽃이 뺨을 살며시 물들이고, 아이들의 숨결이 따뜻하게 번져 오른다. 작은 손들이 양말 속에 들어간 선물을 쥐고, 바닥에 엎드린 강아지와 아이 곁으로 겨울 저녁의 시간이 살포시 내려앉는다. 미국을 대표하는 동화작가 겸 삽화가 타샤 튜더(1915∼2008)의 ‘타샤의 크리스마스 양말’(1995·사진)은 소란스럽고 화려한 축제 대신, 마음속 가장 깊은 곳에 남아 있는 크리스마스의 순간을 조용히 불러낸다. 잊혀 가던 어린 시절의 온기와 소박한 기쁨이 은은하게 채워진 튜더의 그림 앞에서 숨을 고르게 되는 이유다.
지난 11일 롯데문화재단이 운영하는 롯데뮤지엄에서 개막한 기획전 ‘스틸, 타샤 튜더: 행복의 아이콘, 타샤 튜더의 삶’은 그런 작가의 세계를 입체적으로 조명하는 자리다. 튜더 탄생 110주년을 기념해 마련된 이번 전시는 삽화 원화와 수채화, 드로잉, 수제 인형, 영상 자료 등 190여점을 한자리에 모아, 한 세기를 관통한 ‘행복의 미학’을 어떻게 구축해왔는지 보여준다.
미국적 정서와 전통적 가족 문화를 정교하게 담아낸 튜더의 작품은 향수의 산물이 아니라 ‘어떤 삶을 선택할 것인가’에 대한 하나의 선언처럼 읽힌다. 빠르게 소비되고 잊히는 이미지의 시대, 손으로 일상을 빚어 올리며 ‘행복의 얼굴’을 묵묵히 그려온 작가의 삶을 다시 돌아보게 하는 이유다.
그는 50대에 버몬트주 산골로 들어가 자급자족을 실천했다. 전기 없이 생활하며 염소젖으로 버터를 만들고, 제철 식재료로 식탁을 차리는 일이 그의 일상이었다. 직접 돌본 정원과 동물들은 작품 속에서 가장 중요한 이미지로 되살아난다. 그에게 행복은 특별한 사건이 아닌, 가족이 둘러앉은 저녁 식사처럼 평범한 순간에서 비롯됐다. 거창한 메시지 대신 사소한 순간의 기쁨에 초점을 맞추는 태도는 그의 전 작업을 관통하는 가치관이다.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면 마음이 설레고 벅차요. 행복할 가족과 친구들을 상상하며 정성을 다해 준비하면 어김없이 환상적인 크리스마스가 찾아오지요.” 튜더에게 크리스마스는 정성과 기다림을 담아 준비하는 ‘마음의 의식’으로 여겨졌고, 이러한 태도는 그의 크리스마스 연작을 관통한다.
전시는 부엌·온실·정원·작업실 등을 재현한 공간 구성으로 관람객을 그의 삶의 동선 속에 초대한다. 마지막에는 튜더가 가꾸던 정원의 분위기를 옮겨온 공간이 마련돼, 작품 속 자연과 실제 경험이 맞닿는 감각을 전한다. 전시는 내년 3월15일까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