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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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외교·통일 주도권 다툼할 게 아니라 지혜 모아야 할 때

입력 : 2025-12-15 23:44:45
수정 : 2025-12-15 23:4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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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부 주도로 대북정책을 조율하는 한·미 고위급 첫 정례협의가 오늘 개최된다. 내년 초 북·미 대화가 열릴 가능성에 대비해서다. 회의 결과에 따라 협의체가 구성되면, 남북관계 주무 부처인 통일부도 참여할 수 있다. 하지만 통일부는 어제 “외교부가 추진하는 대북정책 정례 협의체는 남북협력 사업에 ‘제동’을 걸었던 문재인정부 당시 한·미 워킹그룹이 될 수 있다”며 불참 입장을 밝혔다. 그리고는 “미국과 별도 협의”를 내걸었다. 대북정책 주도권을 둘러싼 부처 간 다툼으로 비친다. 다툼이 이미 적정선을 넘은 건 아닌지 걱정스럽다.

정동영 통일부 장관이 지난 10일 기자간담회에서 “한반도 정책, 남북관계는 주권의 영역으로 동맹국과 협의의 주체는 통일부”라고 하자, 박일 외교부 대변인은 다음날 “한·미는 그간 대북정책 조율을 위해서 긴밀하게 소통해 왔다. 양국 외교 당국 간에 이러한 소통을 보다 체계적이고, 정례적으로 발전시키고자 하는 공감대가 있다”고 했다. 정 장관 발언에 대한 우회적인 반박이 있고 나서 통일부는 어제 협의 불참을 결정했다. 노무현정부 시절 ‘자주파 대 동맹파’ 갈등이 재연된 듯하다는 얘기가 그냥 나오는 게 아니다.

대북정책을 둘러싼 정부 간 주도권 다툼은 진보 정부 역대 통일부 장관 6명이 어제 한·미 대북정책 협의에 공개 반대 입장을 표명하며 더욱 확산하는 조짐이다. 이들은 ‘제2의 한·미 워킹그룹을 반대합니다’라는 제목의 성명에서 “전문성이 없고, 남북관계를 이해하지 못하는 외교부에 대북정책을 맡길 수 없다”며 “대북정책은 통일부가 주무 부처로, 외교부 주도의 한·미 워킹그룹 가동 계획은 중단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미국 측 수석대표로 참여하는 케빈 김 주한 미국 대사대리까지 들먹이며 정례협의 자체를 불신했다. 과연 이런다고 실익이 있을까 싶다.

지난 6월 이재명정부가 출범한 뒤 남북관계 개선을 중시하는 정 통일부 장관 등 이른바 ‘자주파’와 미국과의 정책 협조에 무게를 두는 위성락 국가안보실장 등 이른바 ‘동맹파’ 사이의 의견 대립이 이어져 왔다. 한·미 연합훈련을 두고도 잦은 파열음을 냈다. 정부 부처 간 엇박자가 장기화하는 건 결코 바람직한 모습이 아니다. 북한을 대화의 장으로 끌어내면서도 비핵화의 실마리를 만들어내는 창조적 접근법이 필요한 시점이다. 대통령이 나서서라도 어떤 선택이 한반도 평화와 남북관계 진전에 도움이 되는지 신속하게 입장을 정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