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은 한국 배드민턴에 이정표가 될 한 해로 기억될 전망이다. 올해 여자 단식과 남자 복식에서 새 역사를 쓰는 ‘황금기’를 활짝 열어젖혔기 때문이다. 그 주인공은 여자 단식 세계랭킹 1위 안세영과 남자 복식 1위 서승재-김원호 조(이상 삼성생명)다. 세 선수는 올 시즌 나란히 10승씩을 챙기며 절대강자의 입지를 공고히 했다.
이들이 이제 한 발 더 나가 나란히 11승에 도전해 한 시즌 역대 최다승 기록에 도전한다. 그 무대는 17일부터 중국 항저우에서 열리는 시즌 최종전인 세계배드민턴연맹(BWF) 월드투어 파이널스다. 남녀 단식과 복식, 혼합복식 등 5개 종목에서 올 한 해 동안 최고의 활약을 펼친 8명(조)의 선수들만 모여 기량을 겨루는 ‘왕중왕전’ 성격의 대회다. BWF가 대회를 전망하면서 ‘역사가 한국에 손짓하고 있다’(History Beckons Korea)라는 제목을 달아 한국 선수들의 새 기록 달성 가능성을 주목하고 있다.
우선 ‘셔틀콕 퀸’ 안세영은 지난달 23일 호주 시드니에서 막을 내린 BWF 월드투어 슈퍼 500 호주오픈에서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려 여자 단식 선수로는 사상 처음으로 시즌 10승 고지를 밟는 등 2025년 동안 압도적인 기량을 과시하며 14개 국제대회에 출전해 10번 정상을 밟았다. 이는 2023년 자신이 세운 여자 단식 최다 우승 기록 9회를 스스로 경신한 것이다.
안세영은 이제 월드투어 파이널스 우승으로 시즌 11승을 달성해 2019년 일본 남자 선수 모모타 겐토가 세운 단일 시즌 최다 우승 기록과 어깨를 나란히 하겠다는 각오다. 이미 여자 선수로는 최다승 기록 보유자지만 이것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다는 자세다.
다만 이번 대회는 바로 토너먼트를 시작하는 기존 대회와는 달리 4명씩 A조와 B조로 나뉘어 조별리그를 치르고, 각 조 상위 2명이 4강 토너먼트에 진출해 우승자를 가리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안세영은 야마구치 아카네, 미야자키 도모카(이상 일본), 푸트리 쿠수마 와르다니(인도네시아)와 같은 A조에 묶였다. B조에서는 왕즈이, 한웨(이상 중국), 포른파위 초추웡, 랏차녹 인타논(이상 태국)이 격돌해 2021년 대회 우승 이후 4년 만에 이 대회 정상 등극에 도전한다. 안세영은 2022년엔 1승2패로 조별리그 탈락, 2023년과 2024년엔 4강에서 탈락했다.
안세영 입장에서 이번 여자 단식에 출전하는 8명 가운데 안세영의 천적 중 하나인 천위페이(중국)가 1개국 2명 출전 제한에 걸려 출전명단에서 제외된 것은 다행이다. 천위페이의 월드투어 포인트는 8위 안에 들지만 같은 중국인 왕즈이와 한웨에는 밀린 탓이다. 그렇지만 안세영과 상대전적 15승15패로 팽팽한 강적 야마구치가 조별리그에서 한 조로 묶인 것은 긴장할 만한 요소다. 또한 4강에 오른 뒤에도 다시 대진 추첨을 하기 때문에 준결승에서 다시 야마구치와 연거푸 대결할 가능성도 있다는 점도 11승으로 가는 길의 변수다. 안세영과 야마구치 모두 끈질긴 수비와 긴 랠리를 기반으로 한 경기 스타일인 탓에 체력 소모는 결승까지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BWF 역시 “안세영의 기록 도전은 눈부시지만, 조별리그부터 쉽지 않은 출발이 예상된다”고 전망할 정도다.
남자 복식 서승재와 김원호도 이 대회에서 우승할 경우 안세영과 나란히 역대 한 시즌 최다승 타이기록을 세우게 된다. 지난 1월 처음 복식 조를 꾸린 둘은 올해 16개 국제대회에 출전해 세계선수권대회를 비롯한 10개 대회에서 정상에 올라 박주봉-김문수, 김동문-하태권, 이용대-정재성의 뒤를 이을 ‘황금 콤비’로 떠올랐다.
서승재-김원호 조는 이번 월드투어 파이널스에서 만 웨이 총-티 카이 운(말레이시아), 사바르 카랴만 구타마-모하마드 레자 팔레비 이스파하니(인도네시아), 주샹제-왕지린(대만)과 A조에서 대결한다.
BWF는 안세영과 더불어 서승재-김원호에 대해 “세 선수가 역사적인 기록 달성을 앞두고 있다”며 “한 대회 두 개 부문에서 동시에 역사적인 순간이 탄생할 가능성은 흔치 않지만, 이번에는 그 가능성이 현실이 될 수 있다”고 기대감을 드러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