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이 최근 수도권 집값 상승과 원·달러 환율 상승이 시중에 돈이 과도하게 풀렸기 때문이라는 지적에 대해 정면 반박에 나섰다.
한은은 16일 ‘10월 통화 및 유동성 동향’을 발표하면서 이례적으로 블로그에 최근 유동성 상황에 대한 부연 설명을 올리고 “유동성 증가에 대한 일각의 우려는 다소 과도한 해석이며 문제 해결의 본질을 흐릴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저자는 한은 금융시장국 박성진 시장총괄팀장, 이화연 정책분석팀장이다.
◆“시중 통화량, 늘었지만 과도한 수준 아냐”
한은에 따르면 지난 10월 광의통화(M2) 평균 잔액은 전월 대비 0.9%(41조1000억원) 증가한 4471조6000억원으로 집계됐다. 역대 최대치로 7개월 연속 증가세다. 상승 폭도 전월 0.7%에서 증가세가 더 커졌다.
상품별로 보면 수익증권(31조5000억원) 증가세가 가장 두드러졌다. 이 외에도 2년 미만 정기 예·적금이 9조4000억원 증가했다.
그러나 한은은 현재 유동성이 과도한 수준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평가했다. 이번 금리 인하기의 누적 M2 증가율은 8.7%로, 과거 인하기인 2012년(5.9%)보다는 큰 편이나 2014년(10.5%), 2019년(10.8%)에 비해서는 낮았다는 것이다.
아울러 최근 M2 증가세는 통화지표 범위 밖에 있던 자금들이 M2 상품인 수익증권으로 대폭 유입된 영향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M2는 현재 현금과 요구불예금 등 협의통화(M1)외에도 MMF(머니마켓펀드), 2년 미만 정기 예·적금, 수익증권 등을 포함해 집계하고 있다.
박 팀장은 “지난 5월 이후 주가가 상승하는 상황에서 개인들이 통화지표에 포함되지 않는 국내주식을 큰 폭 순매도했는데, 이 매도자금 일부가 ETF 등 수익증권으로 유입되면서 M2 증가세를 가속화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한은은 M2 통계에서 수익증권을 제외하는 작업을 진행 중이며 관련 계획을 이달 내로 발표할 예정이다. 개편 기준으로 지난 9월 M2 증가율은 8.5%에서 5%대 중반으로 상당 폭 낮아진다.
박 팀장은 “국제통화기금(IMF) 권고 등을 고려해 2019년부터 개편에 착수했다”며 최근 논란 때문에 갑자기 바뀌는 사항이 아니라고 해명했다.
◆韓 통화량 증가폭, 미국의 2배?
한은은 통화량 증가폭이 미국의 2배에 달한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시계를 넓혀서 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지난 9월 기준 우리나라의 M2 증가율(8.5%)은 미국(4.5%)에 비해 상당히 높았다. 그러나 미국은 코로나19 직후 양적완화와 제로금리 정책의 후폭풍으로 통화량이 급증하고 물가상승률이 크게 치솟았으며, 이를 상쇄하려 2022년 3월부터 기준금리 인상과 양적긴축에 나섰다.
한은은 “이러한 맥락을 고려해 2020년 3월 직전부터 한·미 M2 누적 증가율을 비교해 보면 각각 49.8%, 43.7%로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다”며 “미국은 M2에 수익증권을 제외하는 점 등을 감안해 조정하면 우리나라 M2 증가세는 미국과 대체로 유사한 수준”이라고 강조했다.
한은은 환율과 부동산 가격 상승에 대해서도 유동성에만 집중할 것이 아니라 복합적인 원인을 살펴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통화량과 주택가격은 장기적 흐름에서 선후관계보단 대체로 동행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공급부족 우려나 ‘똘똘한 한 채’ 선호 등으로 수요가 쏠리게 된 것이 더 큰 원인이라는 것이다.
환율의 경우에도 거주자의 해외증권투자 확대, 수출기업의 외화보유 성향 강화 등 수급 관련 요인이 유동성 상황보다 더 크게 작용하고 있다고 판단했다. 이와 관련해 김종화 한은 금융통화위원은 지난 10일 기자간담회에서 “최근 원·달러 환율 급등의 3분의 2는 국내 개인과 기관의 해외 투자 증가에 따른 수급 요인 때문”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다만 한은은 늘어난 유동성이 부동산 시장으로 집중될 가능성에 대해서는 여전히 경계했다. 한은은 “시중 유동성이 생산적인 부문으로 흘러갈 수 있도록 국내외 투자자의 신뢰 제고를 위한 자본시장 제도 개선 등 정책적 노력을 보다 강화해 나갈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