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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훈 포스텍 반도체공학과 교수 “압도적 저전력 AI 반도체칩 개발에 韓미래 달려있어” [세상을 보는 창]

입력 : 2025-12-17 06:00:00
수정 : 2025-12-16 20:5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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高비용 엔비디아 GPU 시장 일부 대체
‘한국형 NPU 생태계’ 정부도 팔 걷어
최적화된 SW·시스템 개발 등 수반돼야

알고리즘 설계 등 전 단계 절전 초점
챗GPT 18분의1 비용 쓴 ‘딥시크’처럼
전기 덜 쓰는 반도체 공급 국가경쟁력

‘제2 오픈AI’보다 칩제조사 육성 현실적
MS·구글도 맞춤 AI칩 개발 사활 걸어
국가 R&D전략 최소 10년 보고 세워야

엔비디아는 전 세계의 그래픽처리장치(GPU) 기반 인공지능(AI) 칩 시장에서 점유율 90%에 이르는 독점 구조를 구축했다. 수많은 데이터를 동시 처리할 수 있는 GPU는 AI 학습에 필수로 자리 잡았는데, 최신 제품 가격이 개당 3만∼4만달러에 달할 정도로 비싸고 구하기도 어렵다. GPU는 전력 효율이 상대적으로 낮아 마이크로소프트(MS), 구글, 메타 등 빅테크(거대기술기업)를 중심으로 이를 대체하는 맞춤형 AI 칩(ASIC) 개발로 눈을 돌려 성과를 내고 있다. 우리나라에선 리벨리온과 퓨리오사AI 등이 자체 개발한 신경망처리장치(NPU)가 경쟁력을 입증한 바 있다. NPU는 쉽게 설명하면 특정 AI를 위해 특별히 설계된 반도체 칩으로, AI 개발의 패러다임이 대용량 처리를 필요로 하는 ‘학습’ 기반에서 상대적으로 적게 드는 ‘추론’(학습 데이터 바탕 결과물 도출) 중심으로 바뀌면서 더욱 주목받고 있다.

이병훈 포스텍 반도체공학과 주임교수가 16일 교수실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 교수는 “대만은 국가 차원의 연구기관인 대만반도체연구센터(TSRI)를 통해 기업과 정부 출연연구소, 대학이 하나의 연구시설처럼 일을 한다”며 “대만 대학이 그렇게 2년 동안 연구해 수준이 엄청 올라갔다”고 말했다. 이어 “삼성전자가 보유한 연구시설 일부를 대학에 개방하기만 해도 경쟁력이 크게 오를 것”이라고 했다. 이병훈 교수 제공

이병훈(57) 포스텍 반도체공학과 주임교수는 지난 5일 화상 인터뷰에서 “이들 스타트업이 특정 분야에서 GPU를 대체할 새로운 아이디어를 낸 셈인데, 이게 계속해서 경쟁력을 가지기는 자금력이 풍부한 구글조차 정말 힘들다”며 “우리 중소기업이 효율적으로 차세대 NPU를 계속 개발하려면 공통 플랫폼이 있어야 하고, 이에 더해 자금이나 인력 수급을 지원하는 ‘한국형(K) NPU 생태계’ 전략에 대한 업계의 기대가 크다”고 말했다.

지난 12일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새해 업무계획에 국산 NPU를 공공분야 등에 도입하고, 특히 국내 독자 AI 모델 개발에 활용하는 데 3251억원을 투입한다고 밝혔다. 나아가 국민성장펀드와 AI정책펀드 등과 연계해 NPU 기업에 대한 맞춤형 지분 투자 등에 나설 예정인데, 국민성장펀드 내 ‘K-엔비디아 메가프로젝트’(가칭)를 통한 투·융자 지원이 검토되고 있다. 산업통상부도 지난 10일 NPU와 지능형메모리(PIM) 등 AI 특화 반도체 기술 연구개발(R&D)에 2030년까지 1조2676억원을 투입한다고 밝힌 바 있다.

엔비디아의 GPU가 AI의 보편적인 수단이 된 배경에는 이에 최적화된 소프트웨어 프로그래밍 플랫폼인 ‘쿠다’(CUDA)가 자리 잡고 있다. 2006년 말 무료로 출시된 쿠다를 써야만 가장 빠르게 구동하는 AI를 내놓을 수 있었고, 이렇게 다수 개발사가 쉽게 이용하다 보니 엔비디아 GPU에 고객을 묶어두는 효과를 발휘했다.

이 교수는 “K-NPU 개발을 가속하려면 이에 최적화된 소프트웨어도 같이 가야 한다”며 “우리가 엔비디아에서 GPU 26만장을 들여오는 것으로 끝이 아니고, 이를 260만장, 2600만장 정도로 효율적으로 쓰려면 소프트웨어나 시스템 혁신을 위한 새로운 연구도 뒤따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AI 인프라 전반에서 전력 소모를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는 초저전력 반도체 기술 개발도 서둘러야 한다고 했다. 오픈AI가 엄청난 투자로 ‘챗GPT’를 내놓은 데 비해 중국의 딥시크가 18분의 1 수준에 불과한 비용으로 비슷한 성능의 AI 모델을 내놓을 수 있었던 것은 알고리즘 설계 등 소프트웨어부터 절전에 최적화한 덕이다.

이 교수는 “미국에선 2010년 전후로 기존 대비 1000분의 1로 에너지를 줄인 반도체 기술을 개발해야 한다는 구상이 제기됐는데, 지금은 100만분의 1을 얘기하고 있다”며 “소프트웨어나 반도체 설계나 소자 등 모든 단계에서 에너지 효율을 높이지 못하면 AI 인프라 확장 속도가 우리나라 전력망의 한계를 앞질러 버릴 수 있다”고 걱정했다. 초저전력 AI 반도체 제조기술의 개발은 차별화된 국가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는 전략이 될 것이라는 게 그의 평소 지론이다.

이 교수는 “AI 기반을 모두 가져가기 위한 글로벌 전쟁이 한창인데, 우리가 먹고살 길은 가장 유력한 전쟁 물자인 ‘전기를 덜 쓰는 반도체’를 공급하는 것”이라며 “경쟁국보다 압도적인 초격차급의 저전력 반도체 개발에 우리의 미래가 달려 있다고 본다”고 진단했다. 이어 “이를 위해 5년 안팎의 단기 위주인 국가 연구개발 타임라인 설정은 지양해야 한다”며 “적어도 10년 후에 쓰일 기술을 언제쯤 개발하기 위해 기반시설을 언제까지 구축해야 하고, 나중에 산업 면에서 이런 방향으로 활용하겠다는 전략을 갖고 있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다음은 일문일답.

―K-NPU 시장 전망은

“구글이 자체 개발한 칩인 텐서처리장치(TPU)가 최근 전 세계의 이목을 끌었는데, AI 특화 측면에서 보면 NPU와 같은 기술이다. GPU는 범용으로 쓰이는 데 비해 NPU 계열은 특정 분야에 조금 더 효율화돼 있다고 보면 된다. NPU는 이처럼 특화돼 있기에 GPU가 거의 장악 중인 시장의 일부를 대체하는 역할을 하게 될 거다. GPU를 전면 대체할 필요 없이 시장의 일부만 가져와도 성공할 수 있다. 가끔 누구누구의 NPU가 GPU보다 성능이 좋다는 기사가 나오는데, 사실 큰 의미는 없다고 본다. 우리는 새로운 엔비디아를 만들 게 아니라 그 20분의 1 정도 되는 회사만 키워내도 성공인 셈이다. 물론 NPU를 돌리는 데 필요한 플랫폼을 만드는 회사도 당연히 있어야 한다.”

 

―평소 초저전력 반도체 기술 개발을 강조해왔는데.

“AI가 말도 안 되게 많은 전력을 쓰고 있다. 최근 학교에서 데이터 AI 클러스터를 어디에 설치해야 하냐고 문의를 받아 조사해보니 전기를 끌어오는 데만 해도 150억원이 들더라. 전력원이 충분하다는 가정 아래에서도 이렇게 고비용이 든다. 그러니까 전력을 원천적으로 덜 써야 하는데, 앞서 딥시크가 그걸 증명하지 않았나. 앞으로 데이터센터에 필요한 반도체를 구매할 때 기존보다 전력 소모를 얼마나 줄이느냐가 중요해질 것이다. 삼성전자가 최근 돈을 많이 벌기 시작한 것은 메모리 반도체인 LP(저전력) DDR 덕분이기도 하다. 전체 시스템에서 D램 등 메모리 반도체가 쓰는 전력은 상대적으로 적은데도 그것조차 줄이고 싶어 안달이 난 거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입장에서 AI를 개발하는 오픈AI보단 삼성같이 초저전력 반도체 제조를 잘하는 회사를 키우는 게 낫다. 이런 최첨단 반도체를 개발할 수 있는 나라는 한국과 대만, 일본, 미국 등 몇 개 안 된다.”

―정부는 2020년부터 10년 목표로 차세대 지능형 반도체 개발사업을 지원해왔는데, 초저전력 반도체 관련 성과는 있나

“나는 2016년쯤부터 이 사업에 참여해 총괄기획을 한 바 있다. 그 전 반도체 지원사업 규모가 최대 컸던 게 10년간 2000억원 수준인데, 이 사업은 5년 전부터 1조96억원이 투자됐다. 지원을 받은 연구자 중 상당수가 생체신경모방(뉴로모픽) 반도체가 AI 반도체로 쓰일 것으로 내다보고 신기술 개발에 매진했지만, 올해까지 주목할 만한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나는 방향을 잘못 잡았다고 본다. 당초 기획 의도대로 ‘지능형 반도체’가 아니라 ‘차세대 반도체’라는 개념에 더 집중했어야 했다. 세계 1위 파운드리(위탁생산) 기업인 TSMC가 주도하는 이종접합 패키징(서로 다른 반도체 칩을 수직·수평으로 쌓아 올려 전력 소모를 줄이고 성능을 극대화하는 첨단기술)에는 뒤늦게 뛰어들어서 매우 아쉽다.”

―정부 주도의 반도체 R&D 전략에 개선할 점이 있다면.

“정부 과제를 받은 학계는 보통 5년 후 상용화될 기술에 초점을 맞추는데, 그 정도는 반도체 회사가 이미 자체적으로 대부분 개발하고 있다. 미국의 R&D 프로그램은 10년이 기본이다. 학교에서 5년 동안 연구해 넘겨주면 그다음 5년간 회사가 진행해 상용화한다. 그 덕에 학교에서 연구한 인력이 회사로 진출해서도 유용해진다. 일각에선 10년 후는 예측할 수 없다고 하는데, 우리는 예측 경험이 많은 기획 전문가를 키우지 않는 대신 젊은 연구자가 참신한 아이디어를 내주길 바라는 형편이다. 10년 이상 내다보는 기획 연구는 젊은이가 패기로 해낼 성질이 아니다. 그렇다고 반도체 분야의 연구를 기초과학처럼 지원만 하고 결과는 무작정 기다려야 한다는 주장엔 동의할 수 없다. 감나무를 보면서 감 떨어지길 기다리면 결코 내 입에 떨어지지 않는 게 이 분야다. 누가 중간에 채 간다. 그래서 감이 언제 떨어질지 예측하고, 따기 위한 사다리를 만드는 기술도 연구해야 한다. 그런 장기적인 조정작업을 하는 게 정부의 역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