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대표 인공지능(AI) 반도체 기업과 플랫폼 기업들이 줄줄이 미국 나스닥 상장을 추진하고 있다. ‘대한민국 미래 먹거리’를 위해 정부가 육성해온 유망기업들이 해외로 떠나면서 정부가 발 벗고 나선 ‘오천피’(코스피5000)와 ‘천스닥’(코스닥 지수 1000)에 찬물을 끼얹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이에 한국거래소는 국내 증시 상장을 권유하기 위해 기업 관계자들을 직접 만나 설득에 나섰고, 금융당국도 조만간 발표할 코스닥 부양책의 일환으로 코스닥 진입 시 기업에 줄 인센티브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
16일 금융당국은 한국거래소를 중심으로 국내 유망기업의 국내 증시 상장을 위해 안간힘을 쏟고 있다. 거래소는 지난달 국내 대표 AI 반도체 팹리스(설계 전문) 기업인 ‘퓨리오사AI’ 관계자들을 만나 설득에 나섰다. 이 회사는 이재명 대통령이 후보 시절 AI 분야 100조원 투자를 공약하며 직접 방문한 곳이기도 하다. 지난 10월엔 한국계 미국 스타트업인 수소연료전지시스템 개발사 ‘아모지’를, 지난해 8월엔 나스닥과 코스닥 상장을 두고 고민 중이었던 전자책 온라인 플랫폼 ‘리디’와 골드만삭스가 투자에 나선다고 알려진 ‘직방’도 만났다. 거래소는 앞서 토스 운영사인 ‘비바리퍼블리카’와 ‘야놀자’와도 상장을 위한 미팅을 가졌다.
이처럼 거래소가 국내 기업들의 상장 유치에 적극적으로 나선 것은 최소 1조원에서 10조원 이상의 몸값이 예측되는 기업공개(IPO) 대어들이 미국증시에 상장될 경우 우리 증시의 성장동력이 유출되고, 상생금융을 통한 AI 및 디지털 산업 발전이라는 정부의 목표도 빛이 바랠 수 있기 때문이다. 비바리퍼블리카의 경우 10조원, 야놀자는 8조원, 무신사는 3조5000억원의 기업가치를 인정받으며 시리즈 투자를 유치한 전력이 있다. 증권업계에선 실제 무신사가 상장에 성공할 경우 최소 5조∼10조원의 기업가치를 인정받을 것으로 보고 있다.
거래소의 한 관계자는 “유망한 AI·플랫폼·디지털 기업이 상장돼야 국내외 투자자들의 국내 증시에 대한 관심과 투자를 끌어낼 수 있다”고 말했다.
이 같은 거래소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야놀자는 현재 나스닥 상장을 준비 중이고, 비바리퍼블리카도 국내 상장계획을 접고 미국증시 상장을 준비 중이다. 퓨리오사AI도 최근 나스닥 상장을 검토 중이다.
나스닥 상장을 노리는 기업들은 표면적으로 대규모 자금 조달과 기업가치 증대를 이야기하지만, 업계에선 미국에 도입된 ‘차등의결권’을 나스닥행의 첫번째 이유로 꼽는다. 차등의결권은 ‘1주 1의결’이라는 원칙을 벗어나 창업자 등 초기 투자자에게 더 많은 의결권을 부여하는 제도다.
뉴욕증권거래소에 상장된 쿠팡의 경우 김범석 의장이 보통주 대비 29배나 많은 의결권을 가진 클래스B보통주 1억5780만주를 보유하고 있고, 그 결과 지분율 8.8%(일반주 포함)에 불과한 김 의장이 73.7%의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다.
장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나스닥에 상장하려면 등록비로만 29만5000달러(약 4억원)을 내야 하고, 연 2억5000만원이 유지비용으로 매년 지출된다. 미국이 주주대표소송 제도가 활성화돼 있다는 점을 고려해 소송비용 및 로펌 상담비용까지 포함할 경우 유지비용은 천문학적 수준으로 늘어난다. 실제 하나로텔레콤과 웹젠 등 나스닥에 상장했던 국내 기업 중 일부는 상장유지비용 부담을 이유로 상장 폐지했다.
업계에선 금융당국이 상장사가 거래소에 매년 내는 수수료인 부과금을 깎아주는 방안부터 세제 혜택을 포함한 인센티브 제도를 조만간 발표할 코스닥 부양책에 포함할 것으로 보고 있다. 금융투자업계의 한 관계자는 “코스닥 활성화를 위해선 투자자를 위한 인센티브뿐만 아니라 기업을 유치하기 위한 파격적인 인센티브가 도입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