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 5엔 동전의 원재료 가치가 액면가를 넘어서는 이례적인 현상이 나타나며 현금 화폐 체계의 지속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국제 원자재 시장에서 구리 가격이 급등하면서 동전의 ‘화폐 가치’보다 금속 자체의 ‘상품 가치’가 더 높아지는 역전 현상이 현실화한 탓이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16일 보도를 통해 일본 5엔 동전에 사용되는 구리와 아연의 시장 가격을 기준으로 계산한 결과 원재료 가치가 약 5.4엔 수준에 이르렀다고 전했다. 이는 액면가인 5엔을 웃도는 수치다. 10엔 동전 역시 원재료 가치가 약 8.7엔으로, 액면가의 90% 수준까지 근접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같은 변화의 배경에는 구리 가격의 급격한 상승이 있다. 런던금속거래소(LME)에서 거래되는 구리 3개월물 선물 가격은 최근 t당 1만1900달러를 넘어서며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지난해 말과 비교하면 30% 이상 오른 수준이다. 엔화 약세까지 겹치면서 일본 내 구리 가격 역시 t당 190만엔으로 최고가를 경신했다.
이론적으로는 동전을 녹여 금속으로 판매하는 편이 더 이득인 구조가 됐으나, 이를 실행하는 것은 불법이다. 일본에서는 법정 화폐를 고의로 훼손하거나 녹이면 ‘화폐손상등취체법’ 위반으로 최대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벌금형에 처해질 수 있다. 연구나 단순한 장신구 제작 목적이라도 처벌을 피할 수 없다.
전문가들은 이번 현상을 단순한 해프닝이 아니라, 현금 중심 화폐 시스템이 구조적으로 압박받으며 ‘동전 없는 사회’로의 전환 논의가 가속화하는 신호로 분석한다. 미국 역시 제조비용이 액면가를 크게 웃돈다는 이유로 1센트 동전 생산을 중단한 바 있다.
전자결제 확산으로 소액 현금 사용이 줄어든 것도 영향을 미쳤다. 일본은 1엔 동전은 2016년, 5엔 동전은 2021년 이후 신규 제조를 중단한 상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