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의 부처 업무보고에서 정은경 보건복지부 장관이 “한의 난임치료는 과학적으로 입증하기 힘들다”고 말한 데 대해 한의사들이 반발하고 나섰다. 이들은 “한의약의 과학적 효과를 폄훼했다”며 공식 사과를 촉구했다. 의사들은 “정부가 사실상 한방 난임치료의 부족함을 인정한 셈”이라며 지원 중단을 요구, 양한방 갈등으로 번지는 모양새다.
18일 의료계에 따르면 대한한의사협회(한의협) 대의원총회, 전국 시도지부장협의회, 대한여한의사회, 부산·경기도한의사회 및 대한한방부인과학회 등은 이날 성명서를 내고 정 장관의 공식적인 사과와 함께 국가적 차원의 한의약 난임치료 지원 등을 요구했다.
한의협 대의원총회는 이날 성명서를 통해 “정 장관의 발언은 한의약의 과학적 효과를 폄훼하는 것이며, 복지부가 주도한 연구를 스스로 부정하는 것”이라며 “한의약 난임치료사업이 국제적 기준에 맞춘 표준임상진료지침(CPG)에 의해 과학적으로 입증됐다”고 강조했다.
대한여한의사회 역시 “한의 난임치료는 이미 임상에서 많은 성과를 거둔 치료법”이라며 “한의약 난임치료의 효과성을 확인하기 위한 국가 주도의 연구를 즉각 시행하고, 효과가 입증되면 건강보험 등 공공 지원체계 내로 편입해야 한다”고 말했다.
부산광역시한의사회와 경기도한의사회도 지난 9월 복지부와 한국한의약진흥원 주도로 개최된 ‘2025 한의난임사업 성과대회’에서 전국 지자체별 한의 난임사업에 대한 성과 공유와 우수 사례 및 유공자에 대한 표창이 이뤄졌다며 “이는 복지부 차원에서 한의약 난임치료의 성과와 확산 필요성을 인정해 온 명백한 증거”라고 짚었다.
이들은 △정 장관의 한의약 난임치료에 대한 부적절한 발언 철회와 공식 사과 △국가 예산 활용한 복지부의 한의약 난임치료 효과성 연구 시행 △중앙정부 차원의 한의약 난임치료 지원사업 제도화 및 건강보험 적용을 포함한 공공 지원체계 마련 등을 적극 추진해 줄 것을 요청했다.
지난 16일 이 대통령은 복지부 업무보고에서 난임 부부 시술비 지원과 관련해 한의학 적용 여부를 언급했다. 이 대통령은 “(난임치료 중) 어떤 것을 하고 싶을지 선호도가 있을 것 같은데, 한의학 처방도 있지 않냐. 보험처리가 되냐”고 이중규 복지부 건강보험정책국장은 “(건강보험) 적용이 되지 않는다”고 답했다. 이에 이 대통령이 “허용은 된 것 아니냐”고 재차 질문하자, 정 장관은 “객관적으로, 과학적으로 입증하기는 힘들어서 (적용이 되지 않았다). 누구에게나 입증된 효과를 보여주는 게 필요하다. 보험 급여 대상이 아니다”라고 답했다.
한의사들의 난임치료는 의사들과 한의사들 간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갈리는 분야 중 하나다. ‘환자의 선택권 보장’과 ‘과학적 근거’를 두고 지속적으로 맞붙고 있다. 의사 출신인 정 장관이 말을 아낀 이유도 이 같은 갈등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한의계는 이미 현장에서 활용되고 있는 치료를 정책적으로 배제하면 안 된다는 입장인 반면, 의사들은 과학적 검증이 필요하다고 반발하고 있다.
앞서 지난 5월에도 대한의사협회(의협)는 한방 난임 지원 사업의 효과성과 과학적 근거, 한의약 처방에서 납·수은 등 중금속 약재 사용의 안전성 등과 관련 대국민 공개 토론회를 공동 개최하자고 한의협에 제안한 바 있다. 당시 박상호 의협 한방대책특별위원회 위원장은 “말로는 치료의 보조행위이며 선택권 보장이라고 주장하지만 의료법 위반일 뿐 아니라 국민을 기만하는 것”이라며 “의과 진단을 하고 검사기기를 사용하고 싶다면 의사면허를 따라”고 지적했다. 이에 한의협은 “한방 난임치료가 의학적으로 문제가 있다면 복지부와 논의할 내용”이라며 거절 의사를 밝혔다.
이번 논란을 두고 한의협은 전날 성명을 통해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복지부 자료를 무시하고 개인적 의견을 피력한 정 장관의 망언을 규탄한다”며 “한의치료로 난임을 극복하거나 이겨내고 있는 대한민국 난임부부들과 한의계에 진솔한 사죄를 요구한다”고 밝혔다.
한의협은 앞서 복지부가 발표한 ‘여성 난임의 한의표준임상진료지침’을 근거로 정 장관의 발언이 잘못됐다고 주장했다. 이 지침에 따르면 난소예비력 저하 여성에 대한 한약 치료는 근거 수준이 B등급, 근거가 충분한 중등도 이상의 수준으로 평가받았다. 또 보조생식술을 받은 여성에 대해서도 침은 ‘A/High’, 전침·뜸·한약은 모두 ‘B/moderate’ 등급을 받았다.
이들은 “이는 모두 충분한 근거를 가진 수준”이라며 "현재 진행 중인 첩약건강보험시범사업 대상 질환을 선정한 기준에 해당하는, 충분한 근거가 있는 치료법임을 복지부가 인정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객관적, 과학적 입증이 어렵다’고 폄훼한 것은 양의사 특유의 무지성적 한의학 폄훼 발언으로, 한의계는 깊은 분노와 강한 유감을 표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이와 같은 훌륭한 근거를 기반으로 현재 전국 14개 광역자치단체와 72개 기초자치단체에서 조례를 통해 한의약 난임 지원 사업을 진행 중에 있다”며 “3만 한의사 일동은 양의사 특유의 양방 편향적 사고로 이를 국민과 대통령 앞에서 부정하고 개인 의견을 피력한 정 장관의 망언을 통렬히 규탄한다”고 했다.
한의협은 “정부는 더 이상 한의약을 왜곡하고 폄훼하며 난임부부들의 절박한 요구를 외면해서는 안 된다”며 “중앙정부 차원에서 한의약 난임치료 제도화에 나서는 것이 초저출산 위기 앞에서 국가가 져야 할 최소한의 ‘근거 있는’ 책임임을 명심하고 이를 즉각 실행에 옮길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고 덧붙였다.
반면 의협 한방대책특별위원회는 정 장관 답변에 대해 “정부 스스로 한방 난임치료가 과학적 근거와 효과, 안전성 측면에서 충분히 검증되지 않았음을 사실상 인정한 것”이라며 “정부와 지자체는 한방 난임 지원 사업을 즉각 중단하고, 해당 지원 사업 전반에 대한 철저한 검증과 객관적 연구, 투명한 자료 공개를 우선하여 실시하라”고 요구했다.
의협은 “한방 난임치료는 치료 효과와 안전성에 대해 국제적으로 인정받을 만한 객관적·과학적 근거가 마련돼 있지 않으며, 신뢰 가능한 임상 근거도 부족하다”며 “국민건강보험 재정을 투입하거나 국가가 치료 효과를 보장하는 듯한 정책을 추진하는 것은 국민에게 잘못된 기대를 심어주고, 오히려 난임 부부에게 적절한 시기에 검증된 의학적 치료를 받을 기회를 놓치게 할 위험이 있다”고 주장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