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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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차 ‘100년 전쟁’… 누가 패권 쥘 것인가

입력 : 2025-12-20 03:30:44
수정 : 2025-12-20 05:3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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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英, 1900년대초 전기차가 38%
기술 한계·내연차 생산에 사라져
2003년 테슬라 등장하며 대세로
배터리 안정성·시설 부족에 캐즘

“결국 미래엔 차산업 주역 될 것”
배터리 기술 도약·자율주행 관건
“韓, 하이브리드·SDV 강화해야”

엔진 너머의 미래/ 안병기/ 흐름출판/ 2만원

 

가파르게 상승하던 전기자동차 판매와 시장 점유율이 정체를 보이기 시작하자 상황은 급격히 변화했다. 막대한 전동화 투자를 진행했던 GM과 포드를 비롯한 미국 빅3 자동차 업체는 적자 확대와 생산 차질로 인해 전기차 로드맵을 잇달아 연기하거나 축소하고 나섰다. 독일의 폴크스바겐 역시 전기차 확대 계획을 일부 후퇴시키며 다시 내연기관차 비중을 늘리고 있다. 무엇보다 전기차 시대를 선도해온 테슬라조차 성장 둔화와 가격 인하 압박을 받으며 수익성의 한계를 노정하기 시작했다.

이 같은 모습은 배터리 가격 문제와 화재를 비롯해 배터리 안전성 논란 등 기술적 요인과 함께 충전 인프라 부족과 소비자 불편, 보조금 축소와 가격 부담 등 비기술적 요인이 결합되면서 비롯된 현상들이다.

이 틈을 배터리 크기를 줄여 가격을 낮춘 반면 충전 불편을 최소화한 하이브리드 자동차가 파고들었다. 현대자동차그룹과 세계 자동차 판매 1위를 달리는 토요타는 하이브리드차를 기반으로 성장세를 이어갔다. BYD를 비롯한 중국 전기차 업체들 역시 배터리 기술과 수직 계열화된 공급망을 무기로 글로벌 시장 점유율을 폭발적으로 늘리고 있다.

안병기/흐름출판/2만원

2024년 하반기부터 장밋빛 일색이던 전기차 시장에 어두운 그림자가 돌연 드리우기 시작했다. 첨단기술 및 혁신 제품이 시장에 성공적으로 안착하는 과정에서 겪는 일시적인 침체 또는 수요정체 현상인 이른바 ‘캐즘’이 전동차 시장에 몰아닥친 것이다.

작금의 전기차 캐즘을 어떻게 봐야 하는 것일까. 자동차산업의 패권이 재편되는 거대한 전환점 앞에 선 것이라면 산업의 패권을 누가 가져가게 될 것인가. 전기차 전환은 과연 어디까지 가능하며, 전동화의 속도는 어떻게 재조정될 것인가. 자율주행으로 대변되는 AI(인공지능)와 자동차산업의 융합은 어떤 방식으로 발전할 것인가.

30년 가까이 모빌리티 엔지니어이자 자동차산업 글로벌 전략가로 활동해온 저자는 신간에서 작금의 전기차 캐즘은 단순한 전기차 판매 둔화나 시장의 냉각이 아니라 기술과 정책, 정치, 소비자 행동이 한꺼번에 재배열되는 구조적 변화라고 진단한다. 그러면서 전기차의 역사와 기술, 정책, 지정학적 관점에서 대전환기 앞에 선 전기차산업의 과거와 현재를 분석하고 패권의 향방과 그 변수를 조심스럽게 조망한다.

책에 따르면, 지금으로부터 100여년 전인 1890년대 후반부터 19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미국 뉴욕과 영국 런던 도로에서 운행되던 자동차의 약 38%가 놀랍게도 전기차였다. 소음과 배기가스가 없고 조작도 쉬워 내연기관차보다 세련된 기술로 주목받으며, 포드 자동차의 창업자 헨리 포드의 아내와 발명왕 에디슨, 석유 재벌 록펠러 등 상류층이 전기차를 선택한 것이다. 반면 내연기관 자동차의 점유율은 당시 22%에 불과했다.

하지만 시동 시간이 너무 길고 주행거리 역시 짧은 전기차 배터리 기술의 한계와, 휘발유 엔진 기술의 비약적 발전, 모델 T로 상징되는 포드 자동차의 내연기관차의 대량생산 체계 등장과 함께 1920년대 이후 전기차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전기자동차는 내연기관차가 주도하던 1920년대부터 1960년대 사이에 사라졌다가 1970년대 오일 쇼크에 따라 잠시 다시 주목받는 듯했지만, 일본 소형차 공세에 밀려 성장하지 못했다. 하지만 2003년 전기차 업체 테슬라가 등장하면서 전기차 시대는 이제 되돌릴 수 없는 대세가 됐다.

책은 지금은 비록 전기차 캐즘을 겪고 있지만 결국 전기차가 자동차산업을 선도할 것이라고 예견하면서, 향후 10년 자동차산업을 좌우할 핵심 분야로 배터리 기술 전환, 자율주행 알고리즘 경쟁, 데이터를 바탕으로 한 SDV(소프트웨어 중심 자동차)를 꼽고 이를 집중적으로 살핀다. 특히 자동차를 기계가 아니라 인공지능을 바탕으로 한 자율주행과 차량 내 서비스 확장 등 전혀 새 비즈니스 모델의 가능성을 제시하는 SDV를 주목한다.

“첨단기술을 선도하는 거대 기업조차 실패한 사례를 남기는 자율주행 분야에서 어느 기업이 생존하고 주도권을 지는가의 여부는 2035년 이후 자동차산업의 판도를 또 한 번 뒤집을 것이다.” 각국의 대응 역시 본격화하고 있다. 미국은 IRA(인플레이션 감축법)와 중국산 배터리 및 부품 규제를 통해 공급망 재편을 주도하고 있고, 유럽 또한 지역 생산 의무화를 강화하고 있다. 중국은 BYD와 CATL를 중심으로 가격과 규모, 기술을 결합한 압도적 공세를 펼치며 세계 시장으로 돌진 중이다.

저자는 결국 한국 기업과 정부가 취해야 할 전략으로 하이브리드 전략 강화와 배터리 플랫폼 혁신, SDV 전환 가속, 글로벌 공급망 재편 등을 조언한다.

자동차 판매량 3위의 자동차 기업을 보유하고 있고 자동차 생산량이 세계 5위를 차지하는 대한민국에게 결단과 결행의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다.

“우리보다 앞서 자동차산업을 일으킨 미국과 유럽 기업들로부터는 견제의 대상이, 후발주자인 중국 기업들에게는 도전이 대상이 되었다. 우리가 가진 강점을 살려서 지금의 위치에서 한층 더 도약하지 않으면 2030년 혹은 2035년에 재편되는 자동차 세계 지도에서 우리 영토는 줄어들어 있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