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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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가만난세상] ‘강제 노역’ 서술 빠진 사도광산

입력 : 2025-12-18 22:49:24
수정 : 2025-12-18 22:4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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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조선을 두 차례 침략했다. 두 번 다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두었으나, 일본군은 중국 본토에 ‘결코’ 진입하지 못한 채 결국 철수했다.”

일본 도쿄 여행 중 방문한 한 민간 박물관에서 마주한 문구였다. 어렸을 때부터 드라마 ‘불멸의 이순신’을 보고, 고등학생 때는 영화 ‘명량’을 보며 자란 나로서는 사뭇 다른 서술에 얼른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렇다고 저 문구가 거짓이냐 하면 그것은 아니었다. 돌이켜 보면 접해 보지 못했던, 철저히 일본인들의 입장에서 쓰인 임진왜란에 대한 서술에 어색함을 느꼈던 것 같다.

임성균 국제부 기자

우리 모두에게는 입장이라는 게 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베트남전쟁 참전사를 두고 ‘경제성장을 위해 피땀 흘린 산업역군’을 먼저 떠올리는 것처럼, 침략자와 피침략자가 어느 한 사건에 대해 동일하게 인식할 수 없다. 더군다나 해당 문구를 제공한 민간 박물관은 사무라이와 닌자의 문화와 역사를 설명하는 곳이었다. 이순신 장군에게 사무라이들이 크게 패했다는 이야기는 주제에 ‘적절하지 않은’ 정보이기도 했을 것이다. 내가 그들 입장이더라도 달랐을까 싶었다.

그러나 입장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는 정당화될 수 없는 지점이 있다. 세계 문화유산으로 등재된, 한국인(당시 조선인)들이 강제노역하며 스러져간 사도광산이 그렇다. 앞서 일본은 이곳을 ‘사도 금광’이라며, 에도 시기에도 존재해 왔던 일본의 최대 금광이었다는 점을 들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하겠다고 밝혀 왔다. 그러나 인류에게 공통적·보편적 가치를 지녀 물려줄 만한 세계문화유산으로서 등재되기 위해서는 주변국의 입장도 반영되어야 한다. 한국을 비롯한 중국, 러시아가 ‘강제노역’ 서술이 빠진 것에 대해 등재 과정에서 반발한 이유다.

결국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는 지난해 사도광산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하면서, 현장에서 “‘전체 역사’를 다루는 해설·전시 전략과 시설”을 마련하라고 권고했다. 등재 당시 가노 다케히로 주유네스코 일본대사는 한국과 협의해 유산위원회의 권고를 충실히 이행하겠다며 “특히 한국인 노동자를 진심으로 추모한다”고 강조했다.

지난 1일 일본이 제출한 (권고사항) 이행보고서 내용은 그와는 딴판이다. 전쟁기 조선인 노동자 관련 서술은 “한반도를 비롯한 곳에서 온 노동자들의 심각한 근로조건”, “전쟁기 한반도에서 온 ‘민간노동자’”로 표현됐다. ‘강제노역·강제동원’이라는 단어 자체는 등장하지 않은 것이다. 보고서는 나아가 ‘전체 역사’가 무엇을 뜻하는지 문서에서 정확히 특정되지 않았다며, 일본이 “가장 효과적”이라고 판단한 방식으로 해설·전시했다고 설명했다.

세계유산이 보편적 가치를 지닌 인류 모두의 유산이라면 그에 대한 역사는 누가 보더라도 납득할 수 있게 제시돼야 한다. 특히 전쟁기 조선인 노동자 문제는 “근로조건이 심각했다”는 수준의 우회로는 충분한 설명이 되지 않는다. 누가 어떤 제도 아래 어떤 방식으로 동원됐고, 그 결과 어떤 피해가 발생했는지가 설명되어야 비로소 ‘전체 역사 서술’이라는 요구가 성립한다. ‘전체 역사’의 의미가 완전히 특정되지 않았다는 주장으로는 면책이 될 수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