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이 그제 내란죄와 외환죄, 군형법상 반란죄를 집중 심리할 전담재판부를 설치한다는 예규를 신설하기로 했다. 사건 배당은 법원의 기존 방식대로 무작위로 하되, 배당을 받은 재판부를 전담재판부로 지정하고 다른 업무는 맡기지 않음으로써 신속한 재판을 지원하는 방식이다. 더불어민주당이 강행하는 내란전담재판부 설치법 수정안을 놓고도 위헌 우려가 제기되자, 사법부 스스로 내란 재판의 신속한 처리를 위한 전담재판부 설치 방안을 선제적으로 내놓은 것이다. 대법원은 “국민과 국회의 우려를 해소하기 위해 만든 예규”라고 밝혔다. 비록 여권의 압박에 밀린 측면이 있지만, 역사적 재판을 둘러싼 국민적 우려를 결자해지하려고 나선 건 바람직하다.
대법원은 대법관회의에서 ‘국가적 중요 사건’ 관련 전담재판부 설치를 규정하는 예규를 제정하기로 했다. 국가적 중요 사건이란 내란·외환·군형법상 반란 사건 중 사회적 파장이 크고, 국민적 관심 대상이며, 신속하게 처리할 사건을 가리킨다. 윤석열 전 대통령과 비상계엄 선포 당시 국무위원 및 군경 지휘부 재판이 여기에 해당한다. 무작위 배당으로 전담재판부를 지정해, 이 재판부에는 다른 사건을 주지 않고 내란·외환·군 반란 사건만 맡기는 것이다. 이럴 경우 서울고등법원에서 무작위 배당을 통해 전담재판부를 지정하게 된다. 이 예규를 통해 전담재판부를 운영하면 여당 법안에서 지적된 여러 위헌적 요소를 피할 수 있다. 여당이 강조해 온 법안 취지도 상당 부분 충족시켜준다. 민주당의 입법 동력이 거의 사라졌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그러나 민주당은 “대법원 예규 제정은 입법권 침해이고 내용도 미흡하다”며 강하게 반대했다. 정청래 대표는 어제 최고위원회의에서 “오히려 내란·외환 전담재판부 설치 특별법 제정이 왜 필요한지를 더욱 극명하게 증명하는 사법부의 현주소”라며 “조희대 사법부의 뒷북치는 꼼수 조치”라고 했다. 대법원의 합리적 대안 제시를 너무 호도하는 것 아닌가. 민주당은 “지속성과 안정성, 대표성이라는 측면에서 대법원 예규보다 입법으로 정리하는 게 타당하다”며 예정대로 법안을 23일 국회 본회의에 상정할 태세다. 김병기 원내대표는 한술 더 떠 “법왜곡죄·법원행정처 폐지도 내년 설 전에 처리하겠다”고 밝혔다. 이 같은 일방통행과 무리수는 국력을 낭비하고 사법 혼란을 키울 뿐이다. 당내에서도 “더는 실익이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오죽하면 친여 성향의 조국혁신당 마저 “법안 발의의 필요성이 상당히 낮아졌다”고 했겠나.
여당이 위헌 소지가 있는 법안을 밀어붙이고 윤 전 대통령 등 피고인 측이 위헌심판을 제청하면 재판은 헌법재판소 결정까지 중단되거나 지연될 수도 있다. 이렇게 되면 입법 강행의 실효성이 없지 않겠나. 여당 지도부가 이런 문제에도 불구하고 법안을 강행하는 건 ‘내란몰이’를 내년 지방선거까지 이어가려는 정치적 노림수라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민주주의 토대인 삼권분립을 훼손할 작정이 아니라면, 여기서 멈추는 것이 옳다. 게다가 민주당 법안과 대법원 예규의 차이점은 전담재판부 임명 방식 정도다. 여당이 한발만 양보하면 충분히 절충점을 찾을 수 있다. 여당이 강성 지지층에게 휘둘려 합리적 대안에 귀를 닫고 법안 처리를 강행한다면 민심의 거센 역풍을 맞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