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은 19일 외교부·통일부 등 부처 업무보고에서 “남북 간에 적대가 완화할 수 있도록, 신뢰가 조금이라도 싹틀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그 역할은 역시 통일부가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최근 대북정책을 둘러싼 외교부·통일부의 주도권 논란에 대해 사실상 통일부 손을 들어줬다는 평가가 나온다. 통일부는 이날 ‘서울·베이징 고속철 건설’과 ‘남·북·중 환승 관광’, ‘평화경제특구’ 구상 등을 추진하겠다고 보고했다. 이재명정부의 대북 화해 정책이 본격화될 것임을 예고하는 대목이다. 냉전 상태인 남북이 신뢰를 쌓고 한반도 평화체제를 구축하자는 이 대통령의 구상에 반대할 국민은 없다.
하지만 2023년 ‘적대적 두 국가’ 선포 이후 북한은 군사분계선 국경화 및 요새화 작업을 진행하면서 우리 정부의 대화 요구에 응하지 않고 있다. 이 대통령은 북한의 요새화 작업에 대해 “(남한이) 북침을 하고, 탱크라도 넘어오지 않을까 걱정”한다고 해석했다. 남북관계 악화에 대해서도 윤석열 전임 정부를 비롯한 보수 정부의 대북 강경책 탓이라고 했다. 그런 측면도 있겠지만, 본질은 체제 경쟁에 실패한 북한의 분단 고착화 시도로 보는 게 더 타당하다. 남북 관계를 이념이나 정파의 관점으로만 보면 현실과 동떨어진 정책으로 이어지기 십상이다. 취지가 아무리 좋아도 실행되지 않으면 장밋빛 청사진에 그칠 뿐이다.
현시점에서 북한을 움직일 수 있는 현실적 방안은 북·미 정상회담을 통한 돌파구 마련 정도일 것이다. 이 대통령이 한·미 정상회담 계기에 ‘피스 메이커’ 역할을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에게 맡기고, ‘페이스 메이커’로 나서겠다고 했던 이유 아닌가. 그런데 북·미 정상회담 전망이 불투명해지자 여권 내에서는 우리가 돌파구를 열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통일부가 앞장서고 이 대통령이 추인하는 양상이다.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옛말이 있듯이 조급증은 금물이다.
여권의 조급증은 불필요한 논란을 만들어 내고 있다. 통일부는 최근 한·미 외교당국 정례 협의에 불참하고 비무장지대(DMZ) 출입 문제로 유엔군사령부와 갈등을 빚고 있다. 여당은 통일부 편을 들고 있다. 정동영 통일부 장관은 한 행사에서 “미국의 승인과 결재를 기다리는 관료적 사고로는 해결할 수 없다”고 했다. 통일부는 이날 업무보고에서도 “현실적으로 대북제재의 실효성이 상실됐다”며 “목에 칼을 들이대면서 대화하자는 것은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는 북한의 입장을 역지사지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정 장관의 말에도 일리가 없지는 않다. 미·중 패권 경쟁 와중에 북·중·러가 밀착하면서 대북 제재망에 구멍이 뚫린 것도 사실이다. 대북제재가 북한 비핵화와 개방을 끌어낼 만능열쇠도 아니다. 하지만 미국 등 국제사회의 동의 없이 우리 힘만으로 북한 문제를 풀어내기도 어렵다. 이재명정부의 ‘한반도 평화 보따리’가 결실을 얻기 위해서도 국제사회의 협조가 필요하다. 북·미 대화 국면이 열리더라도 한·미 공조가 같이 가야 국익을 지킬 수 있다. 이 대통령의 균형 잡힌 조율 노력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다.
일방적인 대북 러브콜도 속도 조절이 필요하다. 현 정부는 출범 6개월 동안 대북 확성기 방송과 대북 방송을 중단한 데 이어 남북 9·19군사합의 단계적 복원과 한·미 훈련 조정 카드까지 꺼내 들 태세다. 이 대통령은 이날 “북한 노동신문을 못 보게 막는 이유는 국민이 그 선전전에 넘어가서 빨갱이가 될까 봐 그러는 것 아니냐”며 북한 매체 접근 규제를 풀 것도 지시했다. 북한 매체 접근 제한 해제는 국가 안보 차원뿐 아니라 허위 왜곡 정보 차단 등 여러 변수를 고려해야 한다. 청소년 유해 콘텐츠도 금지 대상 아닌가. 대북 접근이든 북한 관련 정책 수정이든 좀 더 신중히 다뤄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