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이 국민 개개인의 소득에 따라 범칙금을 차등적으로 부과하는 ‘차등 범칙금 제도’ 도입 방안을 검토하라고 법무부에 지시하면서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다. 고소득자가 소액의 범칙금을 가볍게 여기고 반복적으로 법을 어기는 것을 막겠다는 취지인데, 법조계에선 “동일한 위법행위에 대해 재력이 다르다는 이유로 범칙금을 달리 적용하는 건 헌법상 평등권을 침해할 소지가 있다”는 지적도 있다.
21일 법조계에 따르면 이 대통령은 19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법무부 업무 보고에서 “교통 범칙금을 5만원, 10만원을 내면 서민을 제재하는 효과는 있지만, 일정한 재력이 되는 사람은 (범칙금 통고서를) 10장 받아도 상관없어서 막 위반한다고 한다”며 “벌금은 쉽지 않을 것 같고, 범칙금이라도 재력에 따라 차등을 두자는 얘기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제재 효과가 누구한테는 있고 누구한테는 없으니까 이건 공정하지 못하다”면서 “이건 한번 점검을 해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싶다”고 지시했다. 정성호 법무장관은 이에 “검토해보겠다”고 답했다.
범칙금제는 행정청이 교통법규 등 법규위반자에 대해 일정액의 납부를 통고하고 그 통고를 받은 자가 기간 내에 이를 납부할 경우에는 해당 범칙행위에 대해 공소를 제기하지 않지만 납부하지 않으면 형사 절차가 진행되는 제도다. 과태료와 마찬가지로 행정법상의 제재다. 이 대통령은 2017년 더불어민주당 대선 경선, 2022년 대선 때 이를 형법상 벌금에도 확대해 적용하는 ‘재산비례 벌금제(공정 벌금제)’ 도입을 화두로 던졌다. 핀란드, 독일 등 일부 유럽 국가도 관련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는 것이다.
시민들 반응은 엇갈린다.
서울에서 자영업을 하는 40대 박모씨는 “같은 범칙금이라도 부담의 크기가 다르면 그게 오히려 불공평한 것”이라면서 “범칙금이 억제 효과를 잃었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는 만큼 법을 지킬 유인이 필요하다”고 했다. 반면 30대 정모씨는 “법을 적용할 때 모든 사람에게 동일하게 하는 ‘법 적용의 평등’을 지켜야 하는데 몇몇 사람 속 좀 시원하자고 중요한 원칙을 깨려는 것에 반대한다”며 “탈세도 잘 못 잡는 나라가 재력가인지 아닌지는 어떻게 확인할지 의문”이라고 했다. 수원에 사는 직장인 은모(29)씨도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소득을 잘 파악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며 “어떤 근거로 기준을 세울지도 문제인데, 괜히 긁어 부스럼을 만드는 건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법조계에서도 제도 도입 취지는 좋지만 현실 가능성과 실효성이 높지 않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창현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법전원) 교수는 “재산 파악을 어떻게 할 것이며, 재산에 따른 범칙금 등급을 어떻게 나눌 것인지 의견이 분분해 합의점을 찾기 어려울 것”이라면서 “소득이 분명하지 않고 은닉 재산이 많은 사람은 소득이 분명한 근로소득자들에 비해 경미한 처벌을 받을 수 있어 차별 문제도 불거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과거 이명박정부와 문재인정부 때에도 관련 논의가 있었지만, ‘정확한 재산 파악’이란 현실적 문제에 부닥쳐 검토 끝에 폐기됐다
헌법상 평등권 침해란 우려도 있다.
형벌의 강도는 범죄행위와 책임에 의해 정해져야 하며 재산 상태를 기준으로 형벌을 가중·경감하는 것은 평등권 보호 원칙 위반이란 취지다. 성중탁 경북대 법전원 교수는 “부자에게 더 많은 벌금을 부과하는 제도는 동일한 범죄행위에 대해 개인의 경제적 능력을 기준으로 형벌을 차등화함으로써, 범죄의 불법성과 책임에 비례해야 할 형벌의 본질을 훼손하고, 재산이라는 개인적·비본질적 요소를 이유로 불이익을 부과한다는 점에서 헌법 제11조의 평등원칙에 위배될 소지가 다분하다”고 지적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