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들어 원·달러 환율이 평균 1470원을 돌파하며 물가를 자극하고 있다. 외환당국은 환율 안정을 위한 긴급 조치를 연이어 발표하며 이르면 이번 주 초부터 국민연금을 통한 대규모 환 헤지에 나설 전망이다.
올해 1월 도입한 금융권 ‘책무구조도’ 시행 결과 대표이사의 책임을 하위 임원에게 위임해 ‘셀프점검’하게 하거나 형식적으로 이사회를 운영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정부가 내년에도 강도 높은 가계부채 관리에 나설 예정인 가운데 ‘대출 빙하기’가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고환율에 수입물가도 치솟아…장바구니 ‘비명’
21일 한국은행 경제통계시스템에 따르면 이달 들어 미국 달러화 대비 원화 환율은 평균 1472.49원(지난 1∼19일 기준)으로 6개월 연속 상승 중이다. 월평균 환율은 지난 6월 1365.15원에서 7월 1376.92원으로 오른 뒤 줄곧 상승했다. 이달 들어서는 장중 1480원을 돌파하기도 했다.
치솟은 환율은 수입물가를 자극하고 있다. 특히 수입품에 크게 의존하는 외식 물가와 가공식품을 중심으로 고환율 직격탄을 맞았다.
한은이 집계한 수입물가지수(2020년=100)에 따르면 지난달 커피 수입물가는 달러 기준으로 307.12이지만 원화 기준으로는 379.71로 나타났다. 커피 국제시세가 급등하며 달러 수입 단가도 5년 새 3배로 올랐는데, 환율 영향을 반영하면 거의 4배가 된 것이다.
같은 기간 소고기 수입물가는 달러 기준(129.99) 약 30% 상승했지만, 환율을 반영한 원화 기준(160.57)으로는 상승 폭이 약 60%로 두 배에 달했다. 밀은 달러 기준 지난달 수입물가가 98.72로 2020년보다 오히려 가격이 하락했는데, 환율의 영향으로 원화 기준 수입물가는 이전보다 오른 122.11로 나타났다.
외환당국은 환율 안정을 위해 특단의 조치를 발표하고 있다. 특히 지난주부터 국민연금과 한은 간 외환스와프를 활용한 환 헤지 본격화를 공공연히 예고해왔다. 국민연금이 외환스와프를 통해 한은과 직접 달러를 바꾸게 되면 외환시장에서 달러 수요가 크게 줄어 환율을 안정시킬 수 있다.
한은이 지난 19일 임시 금융통화위원회를 열고 내년 1월부터 6월까지 한은에 예치한 외화예금 초과지급준비금에 대해 이자를 지급하기로 한 것도 환 헤지와 연계된 조치로 풀이된다. 금융기관이 한은에 외화를 예치할 유인을 제공함으로써 한은의 외환보유액이 급감하는 것도 막을 수 있다. 한은이 이런 방식의 이자 지급을 약속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한은은 같은 기간 외환건전성 부담금도 한시적으로 면제하기로 했다. 금융기관의 외화 차입 비용을 줄여 시장에 달러 공급이 늘어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시장에서는 이달 30일 결정되는 환율 ‘연말 종가’를 가급적 낮추기 위해 국민연금이 이르면 이번 주 초부터 대규모 환 헤지에 나설 것으로 보고 있다. 연말 종가는 기업과 금융기관의 내년 재무제표 작성 기준이 되기 때문에 특히 중요하다.
이런 가운데 ‘환율 구원투수’가 될 것으로 기대했던 일본의 기준금리 인상도 환율에 큰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원화는 엔화와 뚜렷한 동조화 경향을 보인다. 지난 19일 일본은행은 단기 정책금리를 0.5%에서 0.75%로 0.25%포인트 인상했지만, 금리 인상 속도가 느리다는 시장의 시각이 작용하며 엔화 약세 흐름이 꺾이지 않았다.
◆“CEO 관리의무, 임원에게 위임하고 셀프점검”
금융감독원은 이날 책무구조도를 도입해 운영 중인 금융지주와 은행 40개사의 실태 점검 결과를 발표했다.
책무구조도는 금융사 내부통제 책임을 하부에 떠넘기지 못하도록 주요 업무의 최종 책임자를 사전에 특정해두는 제도다. 대규모 횡령이나 불완전 판매 등 금융사고 발생 시 경영진이 책임을 회피하는 관행을 막기 위해 1월 금융지주와 은행에 도입됐다.
점검 결과 대다수 금융회사는 대표이사가 총괄 관리의무를 소관 임원에게 위임하고 그 이행 결과를 보고받고 있었다. 이 과정에서 해당 임원이 자신이 이행한 관리조치를 셀프점검하게 돼 이해상충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게 금감원 설명이다. 명확한 내규 없이 책무를 위임하거나 사고 발생 시 임원에게 책임이 전가될 수 있는 방식으로 책무를 기술한 경우도 있었다. 금감원은 총괄 관리조치를 전담해 보좌할 조직이나 준법감시 부서를 두는 방식으로 위임의 근거나 내용을 명확히 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내부통제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해야 할 이사회와 내부통제위원회가 형식적으로 운영되는 점도 개선 과제로 꼽혔다. 이사회 안건을 분석한 결과 구체적인 논의 없이 각 임원의 이행 실적을 단순 나열식으로 보고받고 있던 것이다. 임직원이 동일·유사 업무를 장기간 수행할 때 발생할 수 있는 위법행위를 방지하기 위한 조치가 실효성 검토 없이 기계적으로만 이뤄지고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금감원은 “제도 시행 후 대표의 역할이 명확해지는 등 긍정적 변화가 관찰됐다”면서도 “실효성 있는 책무구조도 기반의 내부통제 체계를 구축하기 위한 초기단계에 머무르는 것으로 평가된다”고 했다.
◆고강도 가계부채 관리 지속…내년 대출 ‘빙하기’ 이어지나
이억원 금융위원장은 이날 KBS일요진단에 출연해 “내년에도 가계부채 총량관리 측면에서 지금의 기조가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며 “내년에도 일관되게 가져갈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가계부채 총량 증가율을 경상성장률과 맞춰 관리하는데, 지금은 워낙 (가계부채) 절대 수준이 높기 때문에 총량 증가율을 경상성장률보다 낮게 설정해 연착륙해나갈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각 은행은 연말마다 금융당국에 다음 해 가계대출 총량 증가율 관리 목표를 제시한다. 일반적으로 물가 상승 폭까지 반영된 명목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예상치 수준에서 제시해왔는데, 내년엔 정부의 대출 규제 기조 등에 발맞춰 이보다 훨씬 낮은 수준에서 당국과 협의가 이뤄질 전망이다.
한 은행 관계자는 “올해 6·27 대책에 따라 이미 가계대출 총량 증가 목표액을 절반으로 축소했는데, 내년에 이를 초과하는 금액을 목표치로 제출하기는 어려운 분위기”라고 말했다.
이 위원장은 은행들이 정부의 총량 목표치를 맞추기 위해 연말 대출을 사실상 중단하는 문제와 관련해서는 보완책을 시사했다. 그는 “실수요자가 자금을 구하지 못하거나 특정 시기에 대출이 쏠리는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 나갈 수 있는지 살펴보겠다”고 말했다.
실제로 은행권이 최근 연말 가계대출 총량관리를 위해 잇달아 대출 창구를 닫으면서 올해 주요 시중은행의 가계대출 증가분은 목표치보다 낮은 수준이다. 금융권에 따르면 5대 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에서 올해 들어 이달 18일까지 늘어난 가계대출(정책대출 제외)은 총 7조4685억원으로 집계됐다. 당초 은행들이 당국에 제출한 올해 증가액 한도 목표(8조690억원)보다 7.4% 적다. 지난달 KB국민은행과 하나은행 등이 올해 실행 예정인 주택구입용 주택담보대출을 중단했다. 대출모집인(상담사)을 통한 가계대출, 대출과 연계된 모기지보험(MCI·MCG) 가입 등도 상당 부분 막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