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동북공정(東北工程)은 고구려(高句麗·서기전 1세기∼668년)나 발해(渤海·698~926년)처럼 영토가 한반도와 중국 만주에 걸쳐 있었던 한민족 국가들을 중국 역사에 편입하려는 학문적 노력을 지칭한다. 오늘날 한국을 뜻하는 영어 단어 ‘코리아’(Korea)는 고려(高麗)에서 유래했고, 고려라는 국호에는 고구려 계승의 의지가 담겨 있다. 발해 또한 668년 고구려 멸망 후 그 유민들이 세운 나라임이 분명하다. 993년 고려를 침공한 거란족의 요(遼)나라 장수 소손녕(蕭遜寧)과 만나 담판을 벌인 고려 외교관 서희(徐熙·948∼992)가 “고려는 고구려의 후예”라고 주장한 사실은 현재까지 전해지는 사료에 의해서도 충분히 입증된다.
서희는 왜 고려와 고구려의 연관성을 강조했을까. 이는 압록강 이남, 청천강 이북의 땅을 일컬었던 이른바 ‘강동(江東) 6주(州)’ 때문이다. 당시 지명으로 흥화진·용주·철주·통주·곽주·귀주 6곳인데, 오늘날의 평안북도와 대체로 일치한다. 요나라가 대군을 보내 고려를 침략한 여러 이유들 가운데 하나는 바로 강동 6주가 자국 영토임을 확실히 하려는 것이었다. 하지만 서희는 고려는 옛 고구려의 뒤를 이은 국가라는 점, 강동 6주는 오랫동안 고구려 영역에 속했다는 점 등을 들어 반박했다. 결국 요나라 군대는 강동 6주가 고려 땅이라고 인정한 뒤 한반도에서 철수했다. 전쟁이 아닌 외교로 나라를 지키고 국토도 넓힌 쾌거가 아닐 수 없다.
오늘날 서희는 단연 한국 최고의 외교관으로 꼽힌다. 외교부 산하 국립외교원은 외교관 후보자들을 뽑아 엄격한 교육을 실시하는 기관이다. 후보자들 가운데 일정한 수준 이상의 자질을 갖춘 이들이 정식 외교관으로 임용돼 세계 각국을 상대로 우리 국익을 수호하는 임무에 투입된다. 서울 서초구에 위치한 국립외교원 경내에는 서희 흉상이 건립돼 있다. 그가 우리나라 외교관의 ‘롤모델’이란 판단에 따른 조치다. 어디 그뿐인가. 서희의 고향인 경기 이천에는 ‘서희테마파크’라는 이름의 공원도 조성됐다. 공원 측은 “서희의 애국 정신과 외교적 리더십을 깊이 새기며, 청소년들에게 역사 체험과 미래상을 제시할 목적”이라고 소개한다.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 내 어린이박물관 앞에 서희를 기리는 조형물이 등장했다. 서희를 비롯해 김유신, 김종서 그리고 세종대왕까지 총 4인을 ‘한반도의 영웅’으로 선정하고 어린이들에게 널리 알리려는 사업의 일환이다. 기념관 운영 주체인 전쟁기념사업회(회장 백승주)는 서희를 “외교 담판으로 전쟁 없이 국경을 확장한 영웅”으로 규정했다. 흔히 외교를 ‘총성 없는 전쟁’이라고 부른다. 꽃다운 젊은이들이 총에 맞아 목숨을 잃거나 다치는 불상사로 이어지지 않고 분쟁을 끝낼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전쟁은 말 그대로 최후의 수단이 되어야 한다. 전쟁 영웅들을 기리는 장소에 서희 조형물이 들어선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