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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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왕설래] 건보공단 특별사법경찰

입력 : 2025-12-22 23:00:07
수정 : 2025-12-22 23:0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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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행 의료법과 약사법은 비(非)의료인의 의료기관·약국 개설을 금지하고 있다. 비의료인이 의료인을 내세워 운영하는 이른바 사무장 병원은 개설 단계부터 불법이다. 이런 불법 병원들은 환자 치료보다 수익 극대화를 우선하는 탓에 과잉 진료와 의약품 오남용을 부추겨 보험 사기의 온상으로 지목돼 왔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2009년부터 사무장 병원 등이 요양급여비 명목으로 부당 편취한 금액은 올해 10월 기준 약 2조9100억원에 달한다. 하지만 부당이득 환수율은 8.7%에 불과하다.

이재명 대통령이 최근 보건복지부 업무보고에서 사무장 병원으로 인한 건보 재정 누수를 언급하며 건보공단에 특별사법경찰(특사경) 권한을 주는 방안을 검토하라고 강훈식 비서실장에게 지시했다. 특사경은 전문 분야 범죄의 수사 효율을 높이기 위해 관련 행정기관 공무원에게 제한된 범위의 수사권을 부여하는 제도다. 현재 금융감독원·국립공원관리공단이 이 권한을 갖고 있다. 이 대통령은 “건보 재정 확보를 위해 이상한 돈 빼먹는 사람을 단속해야 한다. 논쟁이 있었지만, 금감원도 민간 기관인데 조사 권한을 줬다”며 특사경 40∼50명을 지정해 달라는 건보공단 요구에 힘을 실어줬다.

그동안 건보공단의 사무장 병원 단속은 한계가 뚜렷했다. 전국 의료기관의 진료비 청구 데이터를 가장 먼저 들여다보지만 강제 수사권이 없어 경찰에 의존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경찰 수사 착수까지 수개월이 걸리고, 수사 기간은 평균 11개월에 달한다. 그사이 사무장 병원들은 돈을 빼돌리고 폐업 또는 잠적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건보공단은 특사경이 도입되면 수사 기간을 3개월로 단축하고 연간 2000억원 규모의 재정 누수를 차단할 수 있다고 본다.

그러나 의료계는 “의사를 예비 범죄자로 본다”, “건보공단의 권한 남용이 우려된다”며 강하게 반대하고 있다. 건보공단 특사경 권한 부여 법안은 20대와 21대 국회에서 모두 폐기됐고, 22대 국회에서도 계류 중이다. 의료계 반발에 막혀서다. 이번에는 분위기가 다르다는 관측이 나온다. 특사경 배치가 의대 증원 문제로 극심하게 대립했던 의·정 충돌의 새로운 불씨가 될 수도 있다. 이 대통령은 의사들을 이길 수 있을지 자못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