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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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특사’ 띄우고 민간교류 재개… 2026년 트럼프 訪中 분수령 [한반도 인사이트]

입력 : 2025-12-23 06:00:00
수정 : 2025-12-22 18:2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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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평화공존 제도화’ 이뤄낼까

정책 주도권 17년 만에 통일부 이관
대북 정책 초점 양자 중심으로 전환
‘통일 이전 안정적 공존’ 목표 전면화

유관국과 협의 담당 ‘평화특사’ 추진
교류 협력재단 출범·기금 확대 모색
“DMZ 평화적 이용 관련법 제정할 것”

韓, 北 단절에 선제적 대응 불가피
韓·美 포괄적 동맹 재편도 긍정적
핵잠 등 北 억지력 강화 기대감 커

이재명정부가 2026년을 ‘한반도 평화공존 프로세스’의 원년으로 삼겠다는 목표를 밝혔다. 새해에는 남북관계 개선 및 긴장 완화의 분기점을 만들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린다. 장기간 고착화된 남북 간 단절 상태에 변화가 있으려면 외부 환경도 따라줘야 하는데, 가장 큰 변수로 평가되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 종전협상이 속도를 내고 있다. 내년 4월로 예상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방중 역시 한반도 정세에 분수령이 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정부는 이러한 대북 정책의 성공적인 추진을 위해 통일부를 중심으로 관계 부처, 주변국과 긴밀한 공조에 나설 방침이다. 이명박정부 이후 줄곧 대북 정책 주도권을 쥐었던 외교부는 약 17년 만에 키를 통일부에 넘기고, “통일부의 이상이 현실이 되도록 외교적 노력을 다하는”(조현 외교부 장관) 데 집중할 예정이다. 이는 대북 정책의 초점을 미국 등 국제사회와 보조를 맞추는 데 둬 온 기존 방식을 남북 양자 중심으로 풀어가는 형태로 다시 전환하는 것으로 분석된다.

◆일단 평화로운 공존부터… 내년 4월 시한

지난 19일 통일부와 외교부가 밝힌 업무보고는 이러한 방향성을 담았다. 양 부처는 공통적으로 ‘통일 이전 단계의 안정적 공존’을 공식 정책 목표로 전면화한 모습이다. 특히 통일부의 분석에서 2026년은 한반도 평화 관리 실패 비용이 급격히 커지기 전 마지막으로 구조적 전환을 꾀할 시점으로 해석된다.

통일부는 “현재의 한반도 상황을 방치할 시 적대적 두 국가 관계가 고착화할 우려”를 들어 “새로운 남북관계 국면 전환을 위해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기회를 활용할 필요”를 제시했다. 강대강 악순환이 반복되는 가운데 선제적 평화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평온한 일상 회복은 점점 더 힘들어진다는 문제의식에 바탕을 둔 것으로 보인다.

이에 보조를 맞춰 외교부도 “북핵 문제 해결과 한반도 평화체제를 향한 실질적 진전”을 중점 추진과제로 내걸고, 이를 통해 “한반도 긴장 완화 및 지속가능한 평화체제 기반 조성”을 기대한다고 밝혔다. 두 차례 한·미 정상회담을 통해 확인한 정상 차원의 공감대를 바탕으로 긴밀한 대북 정책 공조를 지속하고, 중·러 등 주변국과 한반도 문제에 대한 소통을 이어간다는 계획이다.

통일부는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을 찾을 것으로 예상되는 내년 4월까지를 “대북 정책 성패를 좌우할 관건적 시기”로 규정했다. 외교가에서는 일제히 이때 북·미 정상외교의 재개 여부가 한반도 정세의 핵심 분기점이 될 것이라 전망하고 있다.

이성윤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내년 북한 대외관계 전망의 관전 포인트로 ‘김정은·트럼프 간 대타협이 가능한가’를 꼽으며 “트럼프 대통령이 내년 4월 베이징 방문 후 평양에 간다면 그 파급효과는 엄청날 것”이라고 짚었다. 이 연구위원은 “트럼프는 ‘평화 중재자’로서 정치적 정당성을 확보하려 하고,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실질적인 이익을 얻으려는 목표가 매우 명확하다”며 “북한이 미국으로부터 핵보유국 지위를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으로 인정받기 위해 계산된 이런 움직임은 김 위원장에게 잃을 것이 거의 없는 게임”이라고 분석했다.

 

◆평화공존의 제도화, 창의적 교류의 꿈

통일부는 우리 정부의 평화공존 정책과 전략을 미·중·일·러 등 유관국에 설명하고 협의를 추진하기 위한 ‘한반도평화특사’ 임명 계획도 밝혔다. 이와 함께 평화공존을 제도화하는 방향을 본격적으로 준비할 예정이다. 남북이 ‘통일 지향의 평화적 두 국가 관계’로 전환해 평화공존의 토대를 마련하는 ‘남북기본협정’ 체결 추진안이 대표적이다. 남북 대화가 재개되면 이 논의에 착수한다는 구상이다. 대내적으로는 ‘평화통일기반조성법’ 제정을 추진해 한반도 평화공존에 대한 국민 참여를 뒷받침할 수 있도록 한다.

정부는 또 새로운 교류 협력을 위한 창의적 방안을 모색한다는 방향성도 밝혔다. 한반도 정세 변화에 대비해 개성공단의 발전적 재개를 준비하는 한편, 민간 중심으로 먼저 남북 교류협력의 생태계를 회복하는 안을 구상했다. 민간이 주도하며 정부가 지원하는 형태의 남북교류를 위한 법·제도 정비에 나서는 것이다. 이를 위해 북한 주민 접촉을 ‘수리를 요하지 않는 신고’로 개정해 자율화하고, 방북 승인 절차를 간소화하며, 남북교류협력재단 출범 및 남북협력기금 용도 확대 등을 추진할 예정이다.

또한 서울∼베이징 고속철도 구상, 국제 원산갈마평화관광 추진, 신 평화교역시스템 구축 등의 다양한 협력구상을 통해 남북교류 협력을 모색한다. 금강산 관광은 남북, 북·미 대화 재개 시 신속하게 추진한다는 목표다. 접경지역 평화 구축과 민생경제 활성화를 위해 비무장지대(DMZ)를 평화적으로 이용하는 방안도 적극적으로 찾는다.

통일부는 “노태우?김영삼?박근혜?문재인 대통령에 걸쳐 유엔 연설을 통해 DMZ 평화공원을 공언했으나 실제로 이행된 내용은 없다”며 “DMZ의 비군사적?평화적 이용에 관한 법 제정 추진을 지원할 것”이라고 밝혔다. 2024년 4월 중단됐던 파주·철원·고성 지역 평화의 길 DMZ 구간 3곳의 재개방도 추진한다. 정부는 이밖에도 경제·산업·에너지·인프라 등 전문기관과 협업해 평화경제 미래 비전을 구체화하고 단계별 실천과제를 선정할 계획이다.

이러한 구상안들이 정부의 강한 의지를 반영하지만 현실화하려면 넘을 산이 많다. 예를 들어 대북제재에 관광은 포함돼 있지 않으나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안이 대규모 현금의 북한 이전은 금지하고 있어 제재 위반 소지가 있다. 대규모 현금은 통상 1만 달러 이상을 일컫는데, 과거 금강산 관광 주사업자인 현대아산이 매달 관광 인원별 비용을 북측에 전달한 것과 같은 방식은 북한 개별관광 카드가 나올 때마다 매번 걸림돌이었다.

◆강화된 한·미 동맹 역할은

정부의 한반도 평화공존 프로세스는 과거와 달리 대북 협상 레버리지 자체가 크게 약화된 상황을 현실적으로 반영했다고 분석된다. 핵능력 고도화로 억지력을 완성한 북한 입장에서는 관계 단절이 유리한 만큼, 남북관계를 관리하고 한반도 긴장을 완화할 필요성이 증가한 한국이 먼저 움직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미국 역시 국제사회 관여도를 떨어뜨리고 자국 우선주의에 몰두하기 시작하며 북한 문제에 소극적이게 된 측면이 있다.

이에 따라 평화공존을 최우선 목표로 명확히 하고, 대화·교류를 재개하며 통일이라는 다음 단계를 장기적으로 지향하는 구조를 설정한 것으로 보인다.

이 과정에서 이 대통령이 지난 9월 말 발표했던 북핵 ‘E.N.D 종전선언’ 구상은 전략적으로 일시 후퇴한 모습이다. 이번 통일부와 외교부 업무보고에 E.N.D는 포함되지 않았다. E.N.D가 평화공존을 장기적 관점에서 제도화하려는 현재의 정책 방향성과 구조적으로 다르고, 미국의 우선순위 또한 종전선언보다는 안정적인 위험관리 및 북핵 동결에 있기 때문으로 파악된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석좌교수는 “정부가 평화공존 정책으로 방향을 정리하면서 그간 말썽이 났던 E.N.D에 대해서는 더 언급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을 것”이라며 “전직 통일부 장관 등이 비판을 많이 했고, 그 점이 반영된 것으로 본다”고 분석했다.

한편, 정부가 한반도 평화공존 프로세스를 본격화하기에 앞서 한·미 핵추진 잠수함 협력을 이끌어낸 것은 ‘억지를 전제로 한 관리 전략’으로 볼 수 있는 부분이다. 평화공존 구상을 한·미 동맹 약화가 아닌 강화된 구조에서 작동시킨다는 의미로 분석할 수 있다.

국가안보전략연구원은 ‘2025년 정세 평가 및 2026년 전망’ 보고서에서 “올해 최대 외교 성과라 할 수 있는 핵잠 건조 협력을 2026년 구체화하는 등 한·미 동맹이 포괄적 전략 동맹으로 재편되는 흐름을 주목할 만하다”며 “이는 한국의 자주국방 능력과 전략적 자율성 제고와 함께 북핵 억지력 강화에 크게 기여할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