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근로자 임금이 경쟁국인 일본과 대만보다 20%가량 많다는 조사결과가 나왔다. 한국경영자총협회가 어제 발표한 ‘한·일·대만 임금 현황 국제비교’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 임금(구매력평가 환율 기준) 수준은 일본보다 23.7%, 대만보다는 16.2% 높았다. 제조업의 경우 일본보다 27.8%, 대만보다는 25.9%나 많이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 임금은 2000년 초반 일본의 절반 수준에 불과했으나 15년 만에 역전해 그 격차를 갈수록 벌리고 있는 것이다.
기업이 돈을 잘 벌어 많이 주는 건 탓할 일이 아니다. 자본주의가 작동하는 큰 동력 중 하나이기도 하다. 문제는 생산성 향상이 따라주느냐다. 대한상의 보고서에 따르면 임금은 2018년부터 2023년까지 연평균 4% 올랐으나 생산성 증가율은 연 1.7%에 그쳤다. 2025년 기준 한국의 시간당 노동생산성은 51.1달러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7개국 중 24위에 머물렀다. 생산성이 뒷받침되지 않는 고임금은 국가 경쟁력을 갉아먹고 산업 전체의 지속 가능성을 위협한다.
기업 규모별 임금 격차를 들여다보면 상황은 더 심각하다. 우리 대기업 급여는 일본보다 60% 가까이 많았지만, 중소기업은 20% 초반에 그친다. 금융·보험업도 61.8%나 많았다. 대기업 대졸 초임은 한국이 일본의 1.5배 수준인데 연공형 임금체계에다 귀족 노조의 이기적 행태가 더해진 결과다. 생산성에 근거한 합당한 고임금이 아니라는 얘기다. 이러니 중소기업은 만성적인 구인난에 쩔쩔매고 청년은 전체 일자리의 10% 안팎인 대기업 입사에만 매달려 실업자가 쏟아진다. 그에 따른 결혼 기피와 저출산 문제 등 사회적 비용은 헤아리기조차 힘들다.
제조업과 첨단산업 패권을 둘러싼 글로벌 경쟁이 날로 격화하는 상황에서 이런 고비용·저효율로는 미래를 기약하기 어렵다. 우선 호봉제 중심의 경직된 임금체계를 직무와 성과 중심으로 과감히 전환해야 한다. 정부와 정치권은 기업들이 일자리를 늘릴 수 있도록 탄력·선택 근로제 등 노동시장 유연화에 힘과 지혜를 모아야 할 것이다. 임금 격차 완화 차원에서 대기업의 지나친 임금상승을 억제하는 대신 중소·하청기업의 처우를 개선하는 일도 빼놓을 수 없다. 노동계는 무조건적인 임금 인상을 자제하고 경쟁력 강화에 힘을 보태기 바란다. 1987년 이후 해마다 두 자릿수 임금 상승률이 1997년 경제위기로 이어졌음을 망각해서는 안 될 일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