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사람은 평등하게 창조되었고, 창조주는 몇 개의 양도할 수 없는 권리를 부여했으며, 그 권리 중에는 생명과 자유와 행복의 추구가 있다.”
미국은 1776년 7월4일 영국령 북아메리카의 13개의 식민지 대표들이 독립선언서를 통해 이같이 외치며 역사를 시작했다. 이후 꾸준히 힘을 키워 20세기 초 세계 최대 강대국으로 급부상했다. 이 건국이념을 기반으로 국가 성장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생겨난 사회적 합의가 ‘아메리칸 드림’이다. 출신과 인종, 성별 등 배경과 관계없이 노력한다면 성공할 수 있다는 믿음 아래 미국은 더 많은 인재를 세계 각국에서 빨아들이며 100년 가까이 최강국 지위를 유지할 수 있었다.
그러나 건국 250주년을 맞은 지금 미국인들은 이제 더 이상 아메리칸 드림의 존재가 당연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100여년 가까운 시간 동안 조금씩 쌓여온 의심이 이제 임계점에 도달한 것이다. 이런 ‘꿈의 훼손’은 민주주의 의식의 저하로 직결되고 있다.
◆“아메리칸 드림은 원래 없다” 10년 만에 4배
미국인들의 아메리칸 드림에 대한 부정은 21세기 들어 본격화하는 중이다. 지난 7월 발표된 월스트리트저널(WSJ)·시카고대 여론연구센터(NORC) 조사에서 ‘아메리칸 드림이 존재한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존재한다”고 대답한 응답은 31%에 불과했다. 2016년 48%에 비해 10년 만에 17%포인트나 감소했다. 현재 미국 사회에 아메리칸 드림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대답한 응답은 70%에 육박했다.
흥미로운 부분은 아메리칸 드림이 ‘과거 존재했지만 지금은 아니다’라는 응답자 수치가 10여년간 대동소이한 반면 ‘한 번도 존재했던 적이 없다’는 응답은 급격히 늘어났다는 점이다. 미국 사회에서 단 한 번도 아메리칸 드림이 실재하지 않았다고 답한 응답자는 2011년과 2016년 모두 6%에 그쳤지만 2023년 18%로 급증했고, 지난해 조사(23%)에서 마침내 20%선을 넘었다.
학계에서는 미국인들이 느끼는 아메리칸 드림에 대한 불신이 현재의 어려움에 기반을 둔 단순한 비관론이 아니라 장기 경험과 데이터에 기반한 현실적 냉소라고 분석한다. 특히 ‘내 자녀가 노력하면 나보다 더 잘살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무너진 것이 결정적이었다.
미국 사회 불평등 확산을 추적해 온 하버드대 연구팀 ‘오퍼튜니티 인사이트’의 연구에 따르면 1940년대에는 출생 아동의 90% 이상이 부모보다 높은 소득을 올리는 성인으로 성장했지만, 1980년대 이후로는 아동의 절반만이 부모보다 높은 소득을 올리는 성인으로 성장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과정을 부모 세대가 긴 시간 체감하고, 자녀 세대가 받아들이며 좌절이 확산했고, 결국 아메리칸 드림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기 시작한 것이다. 오퍼튜니티 인사이트를 이끄는 라지 체티 하버드대 경제학과 교수는 아메리칸 드림을 부정하는 세대의 급증과 관련해 “미국 경제의 근본적 변화를 반영한다”면서 “많은 사람이 미국을 ‘노력해도 더 나아지기 어려운 나라’라고 믿게 됐고, 좌절감을 표출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양극화가 만든 좌절과 증오, 민주주의 파괴로
21세기 이후 부의 양극화가 극단적으로 진행된 영향이 좌절의 확산을 가속화했다. 1980년 34.7에 불과했던 미국 사회의 지니계수는 미 정부가 코로나19 팬데믹 지원금을 대폭 풀었던 2021년을 제외하면 2000년 이후 지속해서 40 이상을 유지 중이다. 지니계수란 소득 분배의 불평등 정도를 1에서 100 사이 수치로 나타내는 지표로, 40 이상은 ‘소득격차가 상당히 큰 국가’로 분류한다. 이미 미국은 20년 이상 불평등한 국가 위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던 것이다. 특히 2000년대 이후 인종 간, 성별 간 부의 불균형이 지속해서 확대되는 중이다.
아메리칸 드림의 첫 번째 달성기준으로 평가받는 ‘내집마련’ 비율도 지속해서 정체 중이다. 1940년대 40%대에 불과했던 미국인의 주택소유 비율은 2004년 69%를 정점으로 상승을 멈췄다. 급격한 주택가격 상승으로 젊은 세대가 내집마련을 포기한 것이 결정적 원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미 시사주간지 포브스는 “인종 간 부의 격차와 성별 임금 격차 같은 구조적 문제와 끊임없이 상승하는 생활비가 맞물리면서 상당수 미국인에게 아메리칸 드림의 다양한 구성 요소들이 점점 더 손에 닿지 않는 것이 되어가고 있다”고 평가했다.
꿈을 잃은 대중의 좌절은 기존 체제와 민주주의 과정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진다. 국제 민주주의 및 선거 지원 연구소(International IDEA)는 지난 10월 발표한 보고서에서 “민주주의는 사회 발전과 공동의 번영을 가능케 하는 제도이지만, 기존 과정이 성과를 내지 못했다고 구성원들이 판단할 경우 제도 전체에 대한 신뢰가 훼손돼 사회적 계약을 약화시키고 권위주의적 대안에 대한 지지를 부추길 수 있다”고 분석했다. 불신이 극단화될 경우 ‘현재의 사회 구조는 나를 위한 것이 아니라 일부 기득권을 위해 만들어졌다’는 인식까지 광범위하게 확산하고, 기득권층은 물론 ‘나와 다른’ 계층에 대한 폭넓은 증오로 이어지기도 한다.
대중의 증오와 위기감을 정치적으로 조직하는 세력도 속속 나타나고 있다. 미국의 경우 이 같은 사회의 병리현상이 2025년 이후 전 세계에 영향을 미친 ‘트럼피즘’으로 구체화하는 중이다. 카네기 국제평화재단은 2023년 보고서를 통해 “정치 지도자들이 분노를 부추기고 결과에 대한 책임감을 약화하며, 양극화에 지친 공격적이고 권위주의적인 성향의 사람들에게 공동체 의식과 소속감을 조성함에 따라 모든 유형의 표적 폭력이 증가하고 있다”고 경고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