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흘이 멀다고 환율 안정대책이 쏟아지고 있다. 정부는 고삐 풀린 환율을 잡기 위해 국민연금 투입과 규제 완화에 이어 세금 카드까지 꺼냈다.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은 “이제 말이 아닌 행동으로 대응하겠다”며 전방위적 정책 가동을 선언했다. 외환 당국의 고강도 개입에 원·달러 환율은 달러당 1480원대에서 1450원대로 급락했다. 일단 급한 불은 껐지만, 아직 시장의 공포를 잠재우기는 역부족이다.
정부가 어제 발표한 외환 안정 세제지원 대책은 해외 증시 투자자가 내년 1분기까지 해외주식을 팔고 국내 주식에 장기투자하면 양도소득세(20%)를 면제해주는 게 핵심이다. 3분기 말 1611억달러에 달하는 서학 개미의 해외주식 보유는 원화 약세의 주범 중 하나로 꼽혀 왔다. 정부 기대대로 이 자산이 국내로 유입된다면 환율 방어에 도움이 될 듯하다. 하지만 세금을 깎아주더라도 ‘국장’(국내증시)의 수익이 저조하면 큰 효과를 기대하기 힘들다. 기업들도 해외 자회사로부터 받은 배당금에 대해 전액 비과세(익금불산입률 95%→100%)하겠다고 했지만 5%의 혜택만으로 해외 자산 환류의 유인이 될지는 의문이다.
고환율발 경제위기 징후는 곳곳에서 감지된다. 물가가 가파르게 올라 중산층과 서민의 삶이 팍팍해진 지 오래다. 내수도 급속히 얼어붙고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12월 소비자심리지수(CCSI)가 109.9로 전월보다 2.5포인트 떨어졌다. 1년 전 ‘12·3 계엄사태’ 이후 가장 큰 폭이다. 중소기업은 5곳 중 2곳 이상이 환율급등 피해를 봤다고 한다. 소비심리 위축이 기업 매출 부진, 고용감소 등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에 빠질 수 있다. 여기에 환차손을 우려한 해외자본 이탈까지 가세하면 실물 경제와 금융시장의 동반 불황이 현실화하지 말란 법이 없다.
환율 위기는 결국 한국경제의 펀더멘털(기초체력) 약화가 불러온 문제다. 한·미 간 성장률과 금리 격차, 재정·통화 팽창, 국내 기업 경쟁력 저하, 3500억달러의 대미투자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정부는 우선 가용한 수단을 동원해 일시적인 달러 가뭄을 해소해야 한다. 단기처방만으로는 원화 약세를 반전시키기 어렵다. 근본 해법은 산업혁신과 구조개혁으로 경제체질을 바꾸는 것이다. 정부와 한은은 돈 풀기를 자제하고 재정·통화정책의 정교한 조합으로 거시 경제 관리에 만전을 기해야 할 것이다. 통화스와프 확대 등 외환 방파제를 쌓는 일도 소홀히 해선 안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