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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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일으키고 인구 감소 걱정하는 푸틴 [김태훈의 의미 또는 재미]

입력 : 2025-12-25 06:00:00
수정 : 2025-12-25 13: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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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는 제1차 세계대전(1914∼1918) 승전국이다. 막강한 독일 제국과 싸워 이겼다고는 하나 인명피해가 엄청났다. 프랑스 전사자는 약 140만명으로 동맹인 영국(75만명)보다 두 배 가까이 많았다. 1차대전 기간 20∼32세의 프랑스 남성 중 거의 절반이 죽거나 다쳤다는 끔찍한 통계도 있다.

 

흔히 전쟁 같은 참화를 겪고 난 뒤에는 출산이 늘어 ‘베이비붐’ 현상이 일어난다고 하는데, 그것도 결혼 적령기의 남녀 숫자가 비슷해야 가능한 일이다. 1차대전 후 젊은 남자의 씨가 마른 프랑스는 인구 감소를 피할 수 없었고, 이는 제2차 세계대전(1939∼1945) 초반 프랑스가 나치 독일에 무릎을 꿇는 핵심 원인으로 작용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지난 19일(현지시간) 연례 기자회견 도중 그에게 질문을 할 기자를 지명하고 있다. 이날 푸틴은 러시아의 인구 감소를 걱정하며 “자녀를 갖는 게 유행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타스연합

2차대전에선 소련(현 러시아)이 1차대전 당시의 프랑스와 비슷한 비극을 겪었다. 아니, 인명피해 규모만 놓고 보면 솔직히 프랑스와 비교가 안 된다. 나치 독일이 소련을 침공한 1941년 6월부터 전쟁이 끝날 때까지 목숨을 잃은 소련인은 군인과 민간인을 더해 2700만명이 훨씬 넘는 것으로 추정된다.

 

1970년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소련 작가 알렉산드르 솔제니친(1918∼2008)의 소설 ‘암병동’(1968)의 주인공은 30대 여성 의사 베라 간가르트다. 2차대전 당시 의대생이었고 종전 후 10년 가까이 독신으로 산 간가르트는 소설 속에서 “또래 남성 대부분은 전쟁터에서 죽었고, 어쩌다 살아서 돌아온 이들은 훨씬 어린 20대 여성들 중에서 짝을 찾았다”며 탄식한다.

 

전쟁의 본질은 사람을 죽이는 것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늘 그랬다. 2022년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으로 시작된 전쟁도 마찬가지다. 두 나라 모두 자국 국민의 사기를 의식해 사상자 수를 꼭꼭 숨기는 가운데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마르크 뤼터 사무총장은 “4년 가까운 전쟁 기간 러시아군 사상자가 110만명에 이를 것”이란 견해를 밝혔다. 물론 우크라이나군 사상자 숫자는 그보다 적을 것이다. 요즘 극심한 병력 부족을 겪는 우크라이나가 징병에 애를 먹는 모습을 보면 우크라이나 또한 전쟁으로 인한 인구 감소가 더는 감당하기 힘든 지경에 이른 듯하다.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후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 부근 벌판에 러시아군 병사가 쓰러져 있다. AP연합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2026년 새해를 앞두고 지난 19일 연례 기자회견을 열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후 결혼 적령기의 젊은 남성 다수가 전쟁터에서 숨지거나 다치며 러시아도 인구 감소에 대한 위기감이 심각해졌다. 푸틴은 한국, 일본 등 대표적 저출생 국가들의 사례를 언급한 뒤 “자녀를 갖는 게 유행이 돼야 한다”고 역설했다. 아울러 정책 당국을 향해 “사람들이 부모가 되는 것의 기쁨을 알게 만들라”고 당부했다. 2024년 기준 러시아 합계 출산율은 가임 여성 1명당 1.4명으로 한국(0.748명)보다는 사정이 훨씬 나은 편이다. 다만 2015년 1.78명을 기록한 이래 매년 출산율이 줄어드는 점에 러시아의 고민이 있다. 푸틴에게 “당장 전쟁을 멈추면 인구 감소는 없을 것”이란 충고를 들려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