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땅에 인간을 위한 자리가 없다면 하느님을 위한 자리도 없습니다.”
레오 14세 교황이 24일(현지시간) 바티칸 성베드로대성당에서 즉위 후 첫 크리스마스 미사를 집전하며 “성탄 이야기는 오늘날 가난한 사람들과 낯선 이들을 돕지 않는 것이 곧 하느님을 거부하는 것과 같다는 점을 일깨워 준다”고 말했다.
이날 미사엔 고위 성직자·외교 사절과 약 6000명의 신자가 참석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이민 단속 정책을 비판해 왔던 교황은 고 베네딕토 16세 교황의 말을 인용해 “세상은 아이들, 가난한 사람들, 외국인에게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이어 “왜곡된 경제 체제는 인간을 단지 상품처럼 대하게 만들지만, 하느님은 우리와 같은 모습이 되어 모든 인간의 무한한 존엄을 드러내신다”면서 “인간을 위한 자리가 있는 곳에 하느님을 위한 자리도 있다”고 강론했다.
이날 성당 밖 성베드로 광장에서는 약 5000명의 가톨릭 신도들이 거센 빗속에서 우산과 우비를 쓴 채 대형 화면으로 미사를 지켜봤다. 레오 교황은 미사 시작 전에 밖으로 나와 이들에게 “존경과 감사를 전한다”고 말했다.
이날 미사는 현지시간으로 오후 10시에 시작됐다. 고령이었던 전임 프란치스코 교황이 크리스마스이브 미사를 집전하던 오후 7시30분에서 늦어진 것이다. 가톨릭뉴스에이전시는 “요한 바오로 2세 교황 재위(1978~2005년) 이후 바티칸에서 자정 미사가 자정에 거행된 것은 처음”이라고 전했다.
교황은 25일 크리스마스 오전에도 다시 한번 미사를 집전했다. 이 역시 요한 바오로 2세 재위 시절의 전통을 부활시킨 것이다. 교황은 이날 열린 미사에서 “가자지구는 몇 주 동안 비바람과 추위에 노출돼 있다”고 말했다. 이어 “무기를 들도록 강요받는 젊은이들은 그들을 죽음으로 몰아넣는 자들의 허황된 연설에 담긴 거짓을 느끼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후 교황은 연례 ‘우르비 에트 오르비(도시와 세계에)’ 축복과 메시지를 전하며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진솔하고 직접적인 대화”를 위한 “용기”를 갖도록 촉구하기도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