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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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쿠팡 사태 한·미 외교 문제 되지 않게 정교히 대응하길

입력 : 2025-12-25 22:58:09
수정 : 2025-12-25 22:5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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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김근수 기자 = 쿠팡이 개인정보 유출 사고와 관련해 경찰이 압수수색을 진행한 9일 오후 서울 송파구 쿠팡 본사 모습이 보이고 있다. 2025.12.09. ks@newsis.com

쿠팡의 개인정보 유출 사태가 한국과 미국 간 외교·통상 분쟁으로 비화할 조짐이다. 미국 도널드 트럼프 1기 행정부 때 국가안보보좌관을 지낸 로버트 오브라이언은 23일(현지시간) “쿠팡을 겨냥한 한국 국회의 공격이 공정거래위원회의 추가적인 차별적 조치와 미국 기업들에 대한 더 넓은 규제 장벽을 위한 무대를 만들 것”이라고 주장했다. 앞서 미 무역대표부(USTR)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공동위원회를 취소했는데 한국 정부의 쿠팡 제재에 대한 불만이 깔려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급기야 미 의회 청문회에서는 한국 국회가 미국의 빅 테크 기업을 괴롭히고 있다며 보복 가능성까지 거론하는 판이다.

미 정·관가 인사들의 노골적인 편들기에는 쿠팡이 한국뿐 아니라 미국에서도 벌여온 광범한 로비가 크게 작용했을 게 틀림없다. 쿠팡은 미 상장 후 최근 5년간 미 정가와 관계에 1075만달러의 로비자금을 뿌렸다고 한다. 로비스트도 처음 4명에서 올해 32명으로 늘었다. 쿠팡은 이도 모자라 23일 미 현지에서 대관인력 추가 채용에 나섰다. 국내에서도 쿠팡이 최근 5년간 영입한 행정부·국회 공무원이 50명에 달했다. 쿠팡이 전방위 로비로 한국 정부에 압박을 가해 법적 제재와 규제를 무력화하려는 의도가 아닌지 의심스럽다.

이번 사태는 3370만명의 민감한 정보가 기업의 부실관리로 5개월간 유출된 게 핵심이다. 국적을 불문하고 어느 나라에서든 엄중한 처벌을 피할 수 없다. 이제라도 쿠팡의 실질적 소유주인 김범석 쿠팡 Inc 이사회 의장은 직접 사과하고 진정성 있는 피해보상과 재발방지 대책을 밝혀야 한다. 김 의장이 미 국적을 내세우거나 로비와 같은 꼼수로 책임을 피할수록 국민적 분노와 불신이 커질 것임을 명심해야 한다.

정부도 비상이 걸렸다. 대통령실은 어제 ‘쿠팡 대책 장관회의’를 긴급 소집했는데 외교·안보 라인까지 불렀을 정도다. 이런 때일수록 원칙에 입각한 정교한 대응이 필요하다. 감정적 대응은 자제하되 쿠팡의 위법 사실을 객관적 증거와 법리로 입증하는 게 급선무다. 미 정가에서 ‘기업 괴롭히기’라고 주장하지만 정작 미 주주들조차 쿠팡의 보안 부실과 늑장 공시를 문제 삼아 집단소송을 제기하지 않았나. 미국은 또 개인정보보호 위반과 관련해 빅 테크 기업에 가혹한 과징금을 물려왔다. 정부는 쿠팡 제재가 글로벌 스탠더드에 부합한다는 점을 미 정부와 의회에 설득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