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부터 짠맛에 익숙해지면 미각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담백한 음식보다는 라면 국물처럼 강한 짠맛이 입에 먼저 당기고, 식사뿐 아니라 간식 선택까지 염분 위주로 흐르기 쉽다.
찌개와 면류, 떡볶이, 과자처럼 일상적으로 즐기는 음식 상당수가 ‘나트륨 폭탄’이라는 점에서 문제는 더욱 구조적이다.
◆WHO 권고량의 ‘2.4배’…한국인의 현실
27일 의료계에 따르면 나트륨은 인체의 수분 균형과 삼투압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필수 영양소다.
하지만 과도하게 섭취할 경우 혈압을 끌어올리고, 이러한 상태가 장기간 지속되면 심근경색이나 뇌졸중 같은 심혈관질환 위험이 크게 높아진다.
한국인의 나트륨 섭취 수준은 이미 경고선에 도달해 있다. 세계보건기구(WHO)가 권장하는 하루 나트륨 섭취량은 2000㎎이지만, 국내 평균 섭취량은 이보다 2.4배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국민건강영양조사 결과를 보면 나트륨 과잉 섭취와 연관된 4대 만성질환 진료비는 전체의 15%를 넘고, 환자 수도 빠르게 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 원인으로 국·찌개·면류 중심의 식문화를 지목한다.
하루 세 끼 모두에서 나트륨이 반복적으로 누적되다 보니, 특별히 짜게 먹지 않는다고 생각해도 실제 섭취량은 쉽게 기준을 초과한다는 설명이다.
◆짠 줄 몰랐던 ‘의외의’ 음식들
문제는 눈에 띄는 짠 음식만이 아니다. 달거나 새콤한 맛에 가려진 ‘숨은 나트륨’이 식탁 곳곳에 숨어 있다.
샐러드 드레싱이나 바비큐 소스는 두 스푼만 사용해도 나트륨이 약 300㎎에 달한다. 건강 음료로 인식되는 토마토주스 역시 예외가 아니다. 일부 시판 제품은 330g 한 캔에 나트륨이 900㎎에 이른다.
해산물도 조리·가공 방식에 따라 염분 함량이 크게 달라진다. 신선한 생선이나 조개류는 비교적 부담이 적지만, 참치 통조림 하나(약 200g)에는 나트륨이 800㎎가량 들어 있다. 보존을 위해 염분이 추가되기 때문이다.
최근 유행하는 소금빵 역시 간식으로 가볍게 넘기기엔 부담스럽다. 소금빵 하나에 약 400㎎의 나트륨이 들어 있다. 핫케이크 가루 100g에는 많게는 700㎎의 나트륨이 포함돼 있다.
치즈 또한 건강식으로 알려졌지만, 슬라이스·크림치즈 같은 가공 치즈는 염분 함량이 높은 편이다.
외식 메뉴의 대표격인 파스타도 방심하기 어렵다. 토마토 파스타 소스 한 컵에는 나트륨이 1000㎎에 달하고, 미트소스는 여기에 추가 염분이 더해진다.
◆줄이는 방법? ‘선택과 습관’
전문가들은 나트륨 섭취를 줄이는 가장 현실적인 방법으로 ‘식습관 조정’을 꼽는다.
라면이나 찌개는 건더기 위주로 먹고, 국물은 남기는 것만으로도 섭취량을 크게 줄일 수 있다. 간식으로는 짭짤한 스낵 대신 과일이나 견과류를 선택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가공식품을 고를 때는 영양성분표를 확인하는 습관이 필요하다. 음료는 가능하면 직접 만들어 마시고, 파스타 소스나 드레싱 역시 간단한 재료로 직접 조리하면 나트륨을 크게 줄일 수 있다.
잘 익은 토마토에 마늘과 허브, 올리브오일만으로도 충분한 풍미를 낼 수 있다.
전문가들은 “짠맛을 줄이는 식습관은 단기간에 바꾸기 어렵지만, 서서히 싱겁게 먹다 보면 미각도 자연스럽게 적응한다”며 “하루 한 끼, 한 가지 선택부터 바꾸는 것이 혈관 건강을 지키는 출발점”이라고 강조한다.
짠맛은 입에는 익숙하지만, 몸에는 부담이다.
무심코 집어 드는 음식 하나가 하루 나트륨 권장량의 절반을 채울 수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 그것이 건강한 식탁으로 가는 첫걸음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