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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로마네의 숨겨진 보석 ‘라 크로와 라모’ 품은 쿠드레 비조 [최현태 기자의 와인홀릭]

입력 : 2025-12-29 08:00:00
수정 : 2025-12-28 22:2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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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르고뉴 본 로마네 프리미에 크뤼로 과거 그랑크뤼 ‘로마네 생 비방’에 포함/0.6h 불과한 작은 산지로 연간 3000병 안팎 생산/쿠드레 비조 등 3개 도멘만 소유한 특급밭

 

도멘 쿠드레 비조 오너 Jean Jacques Coudray(가운데), Stéphanie(왼쪽) 부부와 딸.  최현태 기자

유행은 쏜 화살처럼 빠르게 변합니다. 하지만 어떤 가치는 시간이 흐를수록 더 짙은 향기를 냅니다. 와인이 그렇습니다. 특히 전통을 중시하는 프랑스 부르고뉴 생산자들은 화려한 기술로 치장하기보다 자연에 감사하는 농부의 심정으로 흙과 포도나무의 목소리에 오롯이 귀를 기울입니다. 인간의 개입을 최소화하고 오랜 숙성을 통해 떼루아의 캐릭터를 고스란히 한 잔의 와인에 담으려 합니다. 도멘 쿠드레 비조(Domaine Coudray Bizot)는 이처럼 ‘느림의 미학’을 존중하는 대표 부르고뉴 생산자입니다.

 

오스피스 드 본 전경. 홈페이지
오스피스 드 본 전경. 홈페이지

◆가난한 자 치유하는 ‘오스피스 드 본’ 와인

 

도멘 쿠드레 비조 오너 장 자크 쿠드레(Jean Jacques Coudray)와 스테파니(Stéphanie) 부부가 한국을 찾았습니다. 쿠드레 비조 와인은 에노테카 코리아가 수입합니다. 비조 가문은 1800년대부터 부르고뉴에서 포도를 재배한 유서 깊은 가문입니다. 장 자크의 외조부 비조 박사(Dr. Bizot) 때부터 본격적으로 와인을 양조합니다. 그는 1920~1930년대 와인 경매로 유명한 부르고뉴 오스피스 드 본(Hospice de Beaune)에서 외과 의사이자 와인메이커로 활약한 인물. 1443년 설립된 오스피스 드 본은 프랑스와 영국의 백년전쟁 직후 기근과 빈곤에 시달리던 민중을 무료로 치료하기 위해 설립된 역사적인 자선병원입니다. 1859년부터 자선 사업 확장을 위해 와인 경매를 시작한 역사가 지금도 이어져 매년 11월 셋째 주 일요일 경매가 열립니다. 2025년에는 11월16일 소더비 주관으로 165회째 자선 경매가 열렸습니다.

 

오스피스 드 본 2025년 165회째 경매 현장. 홈페이지
오스피스 드 본 와인 공식 레이블.

오스피스 드 본은 기부 받은 포도밭 약 60ha를 소유하고 있으며 이는 단일 와이너리로 따지면 부르고뉴 최대 규모입니다. 그랑크뤼 포도밭 코르통(Corton) 등 유명 포도밭이 50개가 넘고 보통 매년 120개 안팎의 뀌베를 경매에 출품합니다. 오스피스 드 본은 와인을 끝까지 완성하지 않고 수확과 1차 발효까지만 진행한 포도즙을 경매에 배럴 째 내놓습니다. 배럴을 낙찰 받은 와이너리들이 자신의 셀러에서 직접 숙성한 뒤 ‘Hospice de Beaune’이 크게 적힌 공식 레이블 하단에 생산자 이름을 넣어 판매합니다. 오스피스 드 본 경매 행사는 전 세계 부르고뉴 와인 가격의 흐름을 결정짓는 가장 중요한 지표중의 하나로 여겨집니다.

 

쿠드레 비조 와인. 인스타그램

◆기다림의 미학이 만드는 와인

 

가난한 이들을 위해 와인을 만들던 비조 박사의 양조 철학, 포도밭, 와이너리 건물 등 유산은 그가 타계한 뒤 후손들에게 나눠집니다. 일부는 명문 도멘 장 이브 비조(Domaine Jean-Yves Bizot)로 이어졌고, 다른 일부는 닥터 비조의 딸 드니즈 비조(Denise Bizot)를 거쳐 아들 장 자크에게 에게 전해집니다. 장 자크는 아버지의 성 쿠드레와 어머니의 성 비조를 합쳐 1980년대 도멘 쿠드레 비조 와이너리를 설립합니다.

 

와인 양조는 1990년대 중반부터 점차 체계를 갖추기 시작합니다. 초기에는 일부 레스토랑과 호텔에 소량으로 판매하는 수준에 머물렀지만, 2000년대 초반부터 배럴째 판매하던 와인을 병입하기 시작합니다. 쿠드레 비조의 와이너리 건물은 17세기 지은 유산 샤토 다비드 드 보포르(Château David de Beaufort) 입니다. 본 시내 중세 성벽 안쪽에 있는 이 저택 지하에는 15~17세기 조성된 깊고 서늘한 셀러가 있어 쿠드레 비조의 모든 와인은 이 지하 천연 셀러에서 장기 숙성됩니다.

 

장 자크 쿠드레. 홈페이지

“외조부는 늘 ‘서둘러야 하지만, 기다릴 줄도 알아야 한다’는 말을 양조 철학으로 강조했답니다. 와인메이커의 ‘개입’이 필요한 순간에는 1분 1초를 다툴 정도로 완벽하고 신속하게 움직여야 합니다. 하지만 사람의 손을 떠나면 와인이 숙성돼 스스로 테루아를 온전하게 표현할 수 있을 때까지 충분히 기다려야 한다는 얘기죠. 저는 이런 조부의 양조 철학과 방식을 그대로 따릅니다. 오랜 숙성을 통해 부르고뉴 테루아와 풍미를 그대로 담는 ‘지나간 시대의 위대한 와인’을 재현하려고 노력한답니다. 옛 수도사들이 정성껏 구분해 놓은 포도밭 구획 ‘끌리마(Climat)’와 올드바인의 복합성을 한 잔에 그대로 옮기려 노력할 뿐이죠.”

 

쿠드레 비도 에셰죠 포도밭. 홈페이지

◆‘늦깎이 포도’로 산도 보강

 

장 자크는 이처럼 테루아를 그대로 담는 전통 부르고뉴 와인을 만들기 위해 빈티지에 따라 줄기 제거(de-stemming) 여부와 숙성(élevage) 방식을 결정하지만, 숙성 때 새 오크통의 비율은 절대 30%를 넘기지 않습니다. 또 지하셀러에서 5~6년 동안 충분한 숙성 과정을 거칩니다.

 

전통방식을 고집하는 장 자크의 양조 철학은 ‘세컨 제너레이션’ 포도 활용에서도 잘 드러납니다. 보통 와이너리들은 산도가 떨어지는 포도가 생산될 때에는 ‘주석산(Tartaric Acid)’를 녹여 넣어 산도를 맞춥니다. 하지만 장 자크는 수확이 끝난 뒤 포도나무 가지 위에 나중에 자란 ‘늦깎이 포도송이’, 즉 세컨 제너레이션 포도를 섞어 넣어 자연스럽게 산도를 끌어올립니다. 이 포도들은 아직 완전히 익지 않아 당분은 낮고 유기산(특히 사과산)의 함량이 매우 높습니다. 이렇게 자연 산도로 보강하면 장기 숙성 때 와인의 밸런스도 훨씬 안정적으로 유지되고 구조감도 더 탄탄해집니다. 지구온난화로 포도의 당도가 너무 높아지고 산도는 떨어지는 요즘, 쿠드레 비조만의 자연적인 산도 보강은 큰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장 자크와 스테파니. 최현태 기자

“저도 예전에는 주석산을 녹여 넣어 산도를 맞췄어요. 하지만 산도가 안정적으로 보강되지 않더군요. 인위적으로 주석산을 첨가할 경우 배럴에서부터 주석산이 쌓이는 경우가 있어요. 이는 산이 와인 녹아들지 않고 빠져나왔다는 뜻입니다. 또 병속에서 반짝이는 ‘주석산 결정’ 과도하게 생길 수 있습니다. 이에 30년전부터 사촌의 조언에 따라 늦깎이 포도를 사용하기 시작했답니다. 외부에서 구입한 분말 주석산은 와인의 풍미를 이질적으로 만들 수 있어요. 하지만 같은 밭에서 자란 늦깎이 포도는 그 밭의 유전적 특성을 그대로 유지합니다. 매년 이 방식을 쓰지 않고 산도가 떨어질 때만 사용합니다. 2024년은 산도가 좋아 보강이 필요 없었답니다. 양조학자들은 이런 방식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자연 산도 보강은 정확한 수치와 공식으로 설명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수학 공식처럼 “ 주석산 몇킬로를 넣어라”고 말하고 싶어 합니다. 하지만 저는 ‘정확히 틀리는 것보다, 대략적으로 맞는 것이 낫다’고 생각해요. 어차피 배럴에서 침전된다면 주석산의 정확한 양을 알려주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본 로마네 그랑크뤼 로마네 생 비방과 1er 라 쿠루아 라모 포도밭 위치(붉은 X).

◆본 로마네 ‘숨겨진 보석’ 라 크로아 라모

 

쿠드레 비조는 에셰죠 그랑크뤼, 쥬브레 샹베르탱 프리미에 크뤼, 퓔리니 몽라셰 프리미에 크뤼 등의 포도밭을 소유하고 있습니다. 그중 본 로마네 프리미에 크뤼 라 크로아 라모(Vosne-Romanée Premier Cru La Croix Rameau)는 ‘본 로마네의 숨겨진 보석 프리미에 크뤼’로 불리는 아주 특별한 포도밭입니다. 평균 수령 40년의 이 포도밭은 위치를 지도에서 보면 아주 특이합니다. 본 로마네 8개 그랑크뤼 중 아주 섬세하고 우아한 피노누아가 생산되는 전설적 그랑크뤼 포도밭 로마네 생 비방(Romanée-Saint-Vivant·9.4ha)의 동남쪽 모서리 구획을 ‘ㄴ’자로 파고 들어간 형태입니다. 사실상 로마네 생 비방의 담장(Clos) 내부에 있어 떼루아는 그랑 크뤼의 잠재력을 그대로 지닌 것으로 평가됩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로마네 생 비방 품속에 완벽하게 안겨 있는 형상이지만 라 크루아 라모는 홀로 그랑크뤼가 아닌 프리미에 크뤼(1er Cru) 등급에 머물러 있습니다.

 

로마네 생 비방과  라 크루아 라모 포도밭. 부르고뉴와인협회

로마네 생 비방 이름은 10세기경부터 이 포도밭을 전체를 소유하고 관리하던 생 비방 수도원(Prieuré de Saint-Vivant)에서 유래되었습니다. 1791년 프랑스 혁명 이전까지 수도사들이 가장 정성을 들여 가꿀 정도로 로마네 생 비방의 포도밭은 매우 뛰어났는데, 그 중에서도 품질이 가장 좋은 구획에 담장(Clos)을 쳐서 특별 관리합니다. 바로 ‘클로 데 뇌프 주르노(Clos des neufs journaux)’입니다. 라 크루아 라모는 바로 이 구획의 일부였던 것으로 전해집니다. 이 구획의 대부분은 도멘 드 라 로마네 꽁띠(DRC)가 1988년 인수합니다.

 

1855년 로마네 생 비방 지도(붉은 점이 라 크루아 라모). 홈페이지

라 크루아 라모가 원래 로마네 생 비방과 한 몸이었다는 사실은 옛 자료에서 확인됩니다. 1855년 장 라발(Jean Lavalle) 박사가 저술한 ‘꼬뜨 도르의 포도나무와 위대한 와인의 역사 및 통계(Histoire et Statistique de la Vigne et des Grands Vins de la Côte-d'Or)’에 수록된 로마네 생 비방 지도를 보면, 라 크루아 라모 구획은 원래 별도의 밭이 아니라, 로마네 생 비방 전체 면적 안에 온전히 포함돼 있습니다. 그는 부르고뉴 포도밭을 처음으로 분류할 때 현재의 그랑 크뤼 밭들을 ‘프리미에르 퀴베(Première Cuvée)’ 카테고리로 묶었는데, 라 크루아 라모는 로마네 생 비방과 함께 프리미에르 퀴리에 포함된 겁니다.

 

라 크루아 라모 포도밭. 홈페이지

그렇다면 왜 라 크로아 라모는 그랑크뤼가 아니라 프리미에 크뤼로 남았을 까요. 다양한 해석이 분분합니다. 라 크로아 라모는 경사면에 놓인 로마네 생 비방의 동쪽 끝자락에 붙어 있습니다. 이 지점은 경사가 거의 끝나고 평지와 만나는 지점입니다. 특히 라 크루아 라모 아래쪽(동쪽)에는 담장 하나를 사이에 두고 본 로마네 마을의 주택가와 본 로마네 일반 빌라주급 포도밭들이 시작됩니다. 1930년대 AOC 등급 제정 당시 등급 위원회와 기존 그랑 크뤼 소유주들은 “그랑 크뤼는 마을 주택가와 명확히 구분되는 독보적인 테루아여야 한다”는 보수적인 관점을 지녔습니다. 그들은 마을 건물들과 너무 바짝 붙어 있는 이 구획이 그랑 크뤼의 ‘순수성’을 해칠 수 있다고 판단합니다.

 

로마네 생 비방 포도밭. 부르고뉴와인협회

더구나 로마네 생 비방의 주요 소유주인 도멘 드 라 로마네 꽁띠(Domaine de la Romanée-Conti)나 루이 라뚜르(Louis Latour) 등은 자신들의 밭이 가진 희소성과 위상을 높게 유지하고 싶어 했습니다. 이들은 라 크로아 라모가 지질학적으로는 로마네 생 비방과 유사할지 몰라도, ‘마을과 너무 가깝고 경사가 낮아지는 지점’이라는 이유를 들어 이 구역이 그랑 크뤼에 포함되는 것을 강하게 반대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지질학적으로 아주 미세한 차이가 있어 그랑크뤼가 되지 못한 배경이라는 주장도 있습니다. 비록 로마네 생 비방과 토양은 거의 비슷하지만, 마을 쪽으로 내려올수록 점토(Clay) 비중이 미세하게 더 높아지고 배수가 아주 약간 덜 원활하다는 지질학적 견해가 등급 강등의 명분이 된 것으로 전해집니다. 결국 AOC 제정 당시의 엄격한 지리적 기준과 기존 소유주들의 정치적 이해관계가 맞물린 결과로 보입니다. 이 때문에 많은 전문가들은 라 크로아 라모를 ‘등급 분류의 정치적 희생양’ 혹은 ‘그랑 크뤼의 영혼을 가진 프리미에 크뤼’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쿠드레 비조 포도밭. 홈페이지
쿠드레 비조 와인. 최현태 기자

덕분에 오늘날 소비자들은 로마네 생 비방 보다 비교적 저렴한(?) 가격으로 로마네 생 비방과 큰 차이가 없는 와인을 즐길 수 있게 됐습니다. 본 로마네의 다른 그랑 크뤼들이 ‘힘’과 ‘구조감’을 자랑한다면, 로마네 생 비방은 ‘벨벳 같은 부드러움’과 ‘실크 같은 탄닌’이 압권입니다. 제비꽃, 장미의 우아한 꽃향기와 야생 딸기, 체리의 과일향, 정향(Clove)의 향신료가 특징입니다. 숙성될수록 가죽, 트러플, 사냥 고기, 흙향 등 복합적인 향이 발달합니다. 또 입안에서 가볍게 춤추는 듯한 경쾌함과 매우 긴 여운을 남깁니다. 라 크로아 라모는 로마네 생 비방과 떼루아를 공유하기 때문에 본 로마네의 다른 프리미에 크뤼가 보여주는 강한 구조감보다는 이처럼 지극히 섬세하고 화려한 향기가 특징입니다. 숙성 잠재력은 보통 10~15년 이상이며 시간이 흐를수록 복합미가 극대화됩니다. 0.6ha에 불과한 라 크루아 라모 포도밭은 도멘 쿠드레 비조, 도멘 자크 캐슈(Domaine Jacques Cacheux), 도멘 라마르슈(Domaine Lamarche) 등 단 세 와이너리만 소유하고 있으며 연간 생산량은 3000병 안팎에 불과한 희귀한 와인입니다.

 

장 자크와 스테파니. 최현태 기자
쿠드레 비조 본 로마네 프리미에 크뤼 라 크로와 라모. 최현태 기자

◆도멘 쿠드레 비조 와인

 

부르고뉴 2019년은 시련의 해입니다. 서리, 질병, 무더위로 수확량이 평년의 50% 수준으로 급감했습니다. 하지만 장 자크는 자연 산도를 보강하는 방식 등으로 좋은 와인을 만들어냈습니다.

 

▶쿠드레 비조 본 로마네 프리미에 크뤼 라 크로와 라모(Vosne-Romanée 1er Cru La Croix Rameau)

 

체리, 라즈베리, 크랜베리, 딸기 등 정제된 붉은 과일의 농익은 향, 은은한 스파이스와 허브 뉘앙스가 피어납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흙, 가죽향, 이끼 등 숙성향이 두드러집니다. 섬세한 타닌과 길고 우아한 마무리가 그랑크뤼 포도밭 로마네 생 비방을 닮은 특유의 섬세한 스타일을 보여줍니다. 연어, 송어 등 부드러운 생선, 허브나 크랜베리 소스를 곁들인 로스트 꿩·요리와 잘 어울립니다. 온도가 급격히 오르는 것을 막아주는 단열 우든 탱크에서 양조하며 본 로마네 특유의 우아한 밸런스를 유감없이 보여줍니다.

 

에셰조 그랑 크뤼 앙 오르보 위치.  홈페이지
쿠드레 비조 에셰조 그랑 크뤼 앙 오르보. 최현태 기자

▶쿠드레 비조 에셰조 그랑 크뤼 앙 오르보(Échezeaux Grand Cru en Orveaux)

 

앙 오르보 포도밭은 그랑크뤼 클로 드 부조(Clos Vougeot) 바로 위쪽에 자리 잡은 에셰죠 최북단 포도밭입니다. 에셰조에서도 서늘한 계곡 쪽에 있어 가장 우아하고 섬세한 스타일을 보여줍니다. 특히 샹볼 뮈지니(Chambolle-Musigny)의 그랑 크뤼 밭들과 인접한 덕분에 샹볼 뮈지니를 닮은 섬세한 풍미가 특징입니다. 체리, 라즈베리 등 붉은 과일의 선명한 노트, 로스팅 커피, 숲속의 흙과 이끼, 은은한 민트 등 허브 힌트가 복합적으로 나타납니다. 그릴 스테이크(소갈비나 등심), 사슴·멧돼지 같은 야생육, 오리 가슴살, 콩테 치즈, 버섯 리조또, 크림 파스타와 잘 어울립니다.

 

쿠드레 비조 쥬브레 샹페르테 레 카즈티와 샴포 위치. 홈페이지
쿠드레 비조 쥬브레 샹베르탱 프리미에 크뤼 레 카즈티 샴포. 최현태 기자

▶쿠드레 비조 쥬브레 샹베르탱 프리미에 크뤼 레 카즈티 샴포(Gevrey-Chambertin Premier Cru Les Cazetiers Champeaux)

 

붉은 체리, 블랙체리 등 베리류의 과실미 위로 장미 꽃잎, 세이지의 달콤한 허브향이 춤을 춥니다. 이끼, 야생 허브, 가벼운 정향 힌트, 약간의 스파이스, 은은한 꽃향, 흙내음, 미네랄도 느껴집니다. 프리미에 크뤼 두 곳을 섞어 만드는데 레 카즈티의 구조감과 샴포의 접근성을 블렌딩해 최고의 밸런스를 구현했습니다. 강인함 대신 섬세함을 택한 이 와인은 코와 입에서 일관성 있게 뻗어 나가는 피니시가 압권입니다. 등심 스테이크, 양고기 로스트, 베리 소스를 곁들인 사슴·멧돼지 같은 야생육, 오리 가슴살, 오리 콩피, 뵈프 부르기뇽, 코코뱅, 버섯 요리, 에푸아스·브리 등 부드러운 치즈와 잘 어울립니다.

 

두 포도밭은 쥬브레 샹베르탱 가장 북쪽 끝, 담장으로 둘러싸인 테라스 형태의 밭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레 카즈티(0.29ha)의 3분의 2는 수령이 60년 이상 된 올드바인으로 , 그랑 크뤼급 품질로 인정받는 곳입니다. 과거 프리미에 퀴베로 분류됐던 클로 생 자크(Clos Saint-Jacques)와 붙어있습니다. 샴포(0.19ha)는 1981년에 다시 심었습니다. 두 포도밭은 언덕 중간에 있어 일조량이 풍부합니다.

 

쿠드레 비조 퓔리니 몽라셰 레 꼼브뜨 위치. 홈페이지
쿠드레 비조 퓔리니 몽라셰 프리미에 크뤼 레 콤브뜨. 최현태 기자

◆퓔리니 몽라셰 프리미에 크뤼 레 콤브뜨(Puligny-Montrachet 1er Cru Les Combettes)

 

레몬, 라임, 청사과, 배, 복숭아, 화려한 꽃향기, 헤이즐넛, 아몬드 석회질의 미네랄이 어우러집니다. 섬세한 우아함과 뛰어난 응축미를 모두 보여줍니다. 푸아그라, 굽거나 찐 랍스터, 갑각류, 가리비, 삼치·연어 등 기름기 있는 생선 스테이크, 송아지 고기, 크림 파스타와 잘 어울립니다.

 

그랑크뤼 바타드 몽라셰와  ‘프리미에 뀌베’로 표시(분홍색)된 레 콤브뜨 옛 지도. 홈페이지
쿠드레 비조 퓔리니 몽라셰 프리미에 크뤼 레 콤브뜨 포도밭.  인스타그램

레 콤브뜨는 뫼르소(Meursault)와 경계를 이루는 퓔리니 몽라셰 최북단에 있습니다. ‘작은 골짜기’라는 뜻 레 콤브뜨는 퓔리니 몽라셰 특유의 직선적인 산도와 미네랄을 유지하면서도, 뫼르소의 볼륨감을 동시에 품고 있습니다. 레 콤브뜨는 19세기 바타르 몽라셰(Bâtard-Montrachet), 슈발리에 몽라셰(Chevalier-Montrachet) 등 지금의 그랑크뤼 포도밭과 ‘프리미에 뀌베’로 묶여 동급으로 인정받았을 정도로 뛰어난 포도밭입니다. 포도나무 3분2 수령은 80년 이상, 나머지는 1990년대 재식재했습니다.

 

최현태 기자는 국제공인와인전문가 과정 WSET(Wine & Spirit Education Trust) 레벨3 Advanced, 프랑스와인전문가 과정 FWS(French Wine Scholar), 부르고뉴와인 마스터 프로그램, 뉴질랜드와인전문가 과정, 캘리포니아와인전문가 과정 캡스톤(Capstone) 레벨1&2를 취득한 와인전문가입니다. 2018년부터 매년 유럽에서 열리는 세계최대와인경진대회 CMB(Concours Mondial De Bruxelles) 심사위원, 2017년부터 국제와인기구(OIV) 공인 아시아 유일 와인경진대회 아시아와인트로피 심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소펙사 코리아 한국소믈리에대회 심사위원도 역임했습니다. 독일 ProWein, 이탈리아 Vinitaly 등 다양한 와인 엑스포를 취재하며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 포르투갈, 미국, 호주, 독일, 체코, 스위스, 조지아, 중국 등 다양한 국가의 와이너리 투어 경험을 토대로 독자에게 알찬 와인 정보를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