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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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왕준 명지의료재단 이사장 “필수의료 해법은 수련·양성체계 대수술… 국가로드맵 짜야” [세계초대석]

입력 : 2025-12-31 06:00:00
수정 : 2025-12-30 16:5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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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수·중증의료 붕괴… 인력 양성 계획 시급
공공의대·지역의사, 수련 표준화·인증 ‘핵심’
빅 5병원처럼 역량 키울 지역 인프라 중요

사무장 병원 범죄, 의료계가 근절 나서야
건보 특사경 권한 남용 막을 장치 합의를
로봇 의료사고 등 AI 윤리·규제 논의 필요
IHF 차기회장 맡아… 협의 플랫폼 이끌 것
“숫자부터 던져선 답이 나오진 않습니다. 필수의료 붕괴의 근본 원인을 바로잡을 로드맵부터 세워야 합니다.”


지난달 국제병원연맹(IHF) 차기회장(임기 2027∼2029년)으로 선출된 이왕준 명지의료재단 이사장은 필수의료 공백을 해소하기 위한 정부 대책을 두고 “연간 필요한 인력 규모를 산정하고 어떤 방식으로 수련·양성할지부터 계획해야 한다”고 말했다. 의료계가 반대하고 있는 지역의사제(2027년)와 공공의대 설립(2029년)도 “인력 수급과 수련 체계를 먼저 설계해야 한다”며 같은 문제의식에서 바라봤다.

이왕준 명지의료재단 이사장은 의·정 갈등과 필수·지역의료 공백 사태에 대해 “숫자부터 던져선 답이 나오지 않는다. 인력 양성과 수련체계 로드맵부터 세워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제원 선임기자

이 이사장은 필수의료 문제를 ‘숫자’가 아니라 ‘양성’과 ‘체계’의 문제로 본다. 외과 전문의이자 의료 경영인으로 현장을 두루 경험해 온 배경에서다. 그는 2009년 신종플루(상황실장), 2015년 메르스(대책위원장), 2020년 코로나19(비상대응본부 실무단장) 등 감염병 위기 때마다 대한병원협회에서 핵심 역할을 맡아 왔다. 이 때문에 신종 바이러스 대응 전문가로도 평가받는다.

이 이사장은 의료계 내부를 향한 쓴소리도 아끼지 않는다. 그는 1992년 창간해 의료계의 기득권을 비판적으로 조명해 온 의료 전문매체 ‘청년의사’ 발행인이다. 의료계가 반대하는 국민건강보험공단 특별사법경찰 도입 등에 대해서도 “사무장 병원이나 불법 진료를 막기 위해 오히려 의료계가 도입을 요청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반문한다.

그는 의료 현장의 제도·인력 문제뿐 아니라 인공지능(AI) 확산에 따른 윤리·규제 논의도 서둘러야 한다고 강조한다. 예컨대 휴머노이드 로봇이 수술을 집도한 후 결과가 좋지 않았을 때 책임을 누가 져야 하느냐의 문제다. 그는 “AI 헬스케어의 실질적인 코디네이터인 의사와 병원이 1차적인 책임을 져야 한다”면서도 “새로운 시대에 공동의 기준과 규제를 협의해 만들어 나갈 수 있는 중재자가 필요하다. IHF가 바로 그 역할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지난 22일 서울 마포구 상수동 그림서재에서 진행된 이 이사장과의 일문일답.

이왕준 명지병원 이사장. /2025.12.16 이제원 선임기자

―전공의는 복귀했지만 응급의료는 여전히 정상화와 거리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수련 공백과 인력 부족, 응급환자 전원 지연(응급실 뺑뺑이) 같은 문제는 여전하다. 가장 먼저 해결해야 할 과제는.

“전공의 복귀는 ‘의정갈등’으로 빚어진 파행을 봉합하는 수준에 그칠 뿐 근본 해법은 아니다. 인력이 일부 돌아온다고 해서 응급의료 등 필수의료 문제가 자동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전공의들이 앞으로 필수의료를 선택한다는 보장도 없다. 필수의료는 이미 인력·시스템 전반이 위기에 처해 있다. 지역의사제·공공의대도 필요성은 있지만, 그것만으로 공백이 해소되긴 어렵다. 특히 ‘응급실 뺑뺑이’는 해당 분야를 책임질 전문인력이 부족한 현실과 맞닿아 있다. 지난 10월 부산에서 전원 지연 끝에 숨진 고등학생 사례에서도 소아 신경과 등 전문인력 부재가 원인 중 하나로 거론됐다. 일부 세부 전공은 전국적으로도 인력이 희소하다. 여기에 의료소송 부담까지 더해지면서 고위험군 전공을 기피하는 악순환이 생긴다. 필수·중증·응급 분야에서 ‘연간 몇 명을, 어떤 방식’으로 양성할지 로드맵도 없다. 정부와 학회 및 병원계가 인력 수급 계획을 함께 세우고, 응급현장에서의 책임 기준과 법적 보호 장치를 정비하는 일이 우선돼야 한다.”

―현 정부가 추진하는 지역의사제와 공공의대도 한계가 있다고 했는데, 이들 방안의 실효성을 높이려면.

“두 정책의 성패는 ‘인력 배출’ 아니라 ‘수련의 질’에 달려 있다. 표준화된 수련 기준과 이를 점검하는 인증체계가 필요하다. 미국의 ACGME(Accreditation Council for Graduate Medical Education)는 인턴·레지던트 수련 기준을 정하고, 병원·프로그램이 이를 준수하는지 평가·인증한다. 이런 장치가 수련의 질과 환자 안전을 담보하는 최소 기준으로 작동한다. 국내에도 수련환경평가위원회가 있지만, 병원별 커리큘럼 편차가 크다. 그러다 보니 ‘빅5(서울아산·삼성서울·서울대·세브란스·서울성모)’로 인력이 쏠리고, 지역은 인력난이 반복되는 구조가 고착화될 수 있다. 한국형 수련관리기구(K-ACGME) 같은 인프라를 마련해 지역에서도 일정 수준의 수련을 보장해야 한다. 나아가 ‘필수의료 인력 양성 국가책임제’, ‘전공의 수련 공영제’ 같은 논의도 필요하다. 전공의 수련 공영제는 전공의가 특정 병원에 고정으로 소속되는 방식이 아니라 K-ACGME에서 표준화한 커리큘럼에 따라 여러 기관을 순환하며 수련하는 모델이다. 이렇게 하면 빅5를 비롯한 다양한 병원에서 경험을 쌓으며 역량을 더 키울 수 있다. 핵심은 수련 기회의 편중을 줄이고, 커리큘럼을 평준화해 지역에서도 일정 수준의 수련을 보장하자는 취지다.”

이왕준 명지병원 이사장. /2025.12.16 이제원 선임기자

―의료계는 지역의사제하고 공공의대를 두고 “특정 지역 근무 강제는 기본권 침해”라고 반발한다. 전공의 수련 공영제가 현실적으로 가능하겠는가.

“당장의 반발은 불가피할 것이다. 다만 정부가 리더십을 갖고 의료계와 계속 대화하면서 제도를 투명하게 설계해야 한다. 또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필수의료를 선택할 수 있도록 유인책을 써야 한다. 결국 필수의료에 사회적 가치와 보상을 어떻게 부여하느냐의 문제다. 수가, 사회적 예우, 리스크 부담이 개선되지 않은 상태에서 사명감만으로 필수의료를 선택하라는 건 현실적이지 않다. 정부와 의료계가 보상과 안전망을 함께 개선해야 한다.”

―최근 정부가 ‘사무장병원’과 허위 진료비 청구 등을 직접 수사하기 위해 건보공단 특사경 도입 방침을 밝혔다. 불법 의료 근절 취지와 별개로 권한 남용·과잉수사·의료기관 위축 우려가 나온다.

“사무장병원과 허위 진료비 청구 근절은 의료계가 먼저 근절해야 할 범죄이자 불법이다. 이를 차단해 확보되는 재원이 필수의료 수가 등을 개선하는 데 투입돼야 한다. 다만 불법을 단속하는 과정에서 대다수 의료기관이 과도한 감시와 의심을 받는 방식은 바람직하지 않다. 권한 남용을 막을 통제 장치와 운영 원칙을 분명히 하고, 정부와 의료계가 수사 범위·절차·보호장치에 대해 정확히 합의하는 것이 중요하다.”

―정부가 도수치료, 경피적 경막외강 신경성형술, 방사선 온열치료 등 3개 항목을 관리급여로 지정한 것을 두고 대한의사협회가 철회를 요구하고 나섰다. 의협은 위헌적 조치라며 법적 대응도 예고했는데, 어떻게 보는가.

“실손보험 남용과 허위청구 문제는 점점 심각해지고 있다. 비정상적인 지점을 바로잡기 위한 관리 자체를 철회할 이유는 크지 않다. 오히려 의료계가 규제의 범위를 어디까지 할지에 대해 논의를 제안해야 하는 것 아닌가.”

이왕준 명지병원 이사장. /2025.12.16 이제원 선임기자

―지난번과 같은 의·정 갈등이 재발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출구 전략’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와 의료계가 신뢰 회복을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하는 일은 무엇이라고 보는가.

“정부에서는 의료 정책의 비전과 근거, 로드맵을 더 명확히 제시해야 한다. 의료계도 반대에 머무르지 않고 의제를 계속 제시하면서 협상 테이블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코로나19 때 경기북 거점병원으로서 큰 역할을 했다. 기후위기로 5년 주기 팬데믹이 발생할 것이라는 우려가 있는데 제2의 코로나 발생 이전 우리가 미리 갖춰야 할 대응체계가 있다면.

“코로나를 겪으며 직접 대응을 위한 하드웨어나 시스템은 상당 부분 개선됐다. 다음 팬데믹(감염병의 세계적 유행)에서는 경험을 바탕으로 더 효율적으로 대응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국제적 연대와 국내 이해관계자 간 협력을 끌어내는 리더십·커뮤니케이션 체계는 더 정교하게 다듬어야 한다.”

이왕준 명지병원 이사장. /2025.12.16 이제원 선임기자

―IHF에서 맡게 될 역할과 임기내 추진 과제를 소개해 달라.

“AI 의료가 확산될 가능성이 큰 만큼 국제적인 ‘공통 기준’이 필요하다. IHF가 구글, 오픈AI와 같은 빅테크는 물론 병원장들, 주요국 보건장관들이 한자리에 모여 의료 AI 윤리에 대해 논의할 때 협의 플랫폼 역할을 하겠다. 내년 10월 서울에서 제49차 세계병원총회에서 글로벌 AI헬스케어 이니셔티브도 출범시키겠다.”

―의사로서, 병원 CEO로서 가진 소신과 원칙이 있다면.

“소신보다는 비전이, 원칙보다는 ‘실용적인 근거’가 더 중요하다고 본다. 지금은 소신과 원칙만 외치면 꼰대 소리를 듣는 시대다. 의료개혁 논의도 과거처럼 위원회·태스크포스(TF)를 만드는 데서 끝나선 안 되고, 결론과 실행으로 이어질 토대를 갖춰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면피용 절차에 그칠 수밖에 없다.”

 

이왕준 명지의료재단 이사장은
●1964년 전북 전주 출생 ●서울대 의과대학 졸업 ●서울대 대학원 의사학 박사 ●질병관리본부 감염병 위기관리대책 전문위원 ●코로나19 치료제-백신개발 범정부 지원단 방역물품 기기 분과장 ●명지의료재단 이사장 ●청년의사 발행인·회장 ●한국의료수출협회 회장 ●대한병원협회 부회장 겸 KHC(Korea Healthcare Congress) 조직위원장 ●제15대 한국의료질향상학회 회장 ●국제병원연맹 차기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