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부가 북한을 탈출해 남한에 정착한 사람을 지칭하는 법률상 용어 ‘북한이탈주민’(통상 ‘탈북민’)을 ‘북향민’으로 바꾸겠다고 밝혔다. 북한 출신의 남한 국민이란 정체성을 표현한 용어라고 변경 이유를 밝혔지만 당사자인 탈북민의 거부감이 강해 논란이 불가피하다. 변경 검토과정에서 2000만원 정도를 들여 실시한 여론조사는 스스로 신뢰성을 문제삼아 무용지물로 만들어 예산낭비라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게 됐다.
김남중 통일부 차관은 30일 서울 광화문 정부서울청사에서 가진 브리핑에서 “기존에 사용했던 ‘탈북민’은 부정적 어감과 낙인효과 등으로 변경 논의가 계속해서 제기돼 왔다”면서 “이번에 대체용어로 정한 ‘북향민’은 연구용역, 전문가 자문 등을 종합해 결정했다”고 밝혔다. 통일부 관계자는 “북한 출신이면서 한국 국민으로 살아가는 복합적인 정체성을 표현하는 가치중립적이고 포용적 용어”라고 변경 의미를 설명했다.
하지만 변경 검토 과정에서 실시한 여론조사를 보면 당사자인 탈북민이 ‘북향민’으로 바꾸는 걸 부정적으로 보고 있다. 탈북민은 절반이 넘는 53.4%가 용어 변경이 필요없다고 답했다. 대체 용어를 묻는 질문에도 일반국민은 ‘북이주민(31.8%)’, ‘북향민(28.0%)’, 탈북민은 ‘자유민(28.1%)’, ‘탈북민 유지(21.0%)’ 순으로 선호한다고 답했다. 탈북민 한정선(50)씨는 “북한을 어렵게 탈출한 사람을 두고 북한이라는 프레임을 씌우는 것이 기분이 좋진 않다”고 말했다.
통일부가 국회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정부는 이번 명칭 변경 추진에 예산 총 4500만원(여론조사 1980만원, 연구용역 2200만원, 전문가 자문 300만원)을 투입했다. 통일부는 여론조사에서 응답자 인증 없이 응답할 수 있는 오픈링크 방식이 추가되는 등 대표성, 신뢰성 문제가 발생했다며 내부 참고용으로만 쓰겠다는 입장이다. 여론조사에 예산 약 2000만원을 쓰고도 방식에 문제가 생겨 국민에게 결과를 공개하지 않았단 점은 비판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여론의 반대에도 통일부가 용어변경에 나서는 건 정동영 장관의 강한 의지에 따른 것이란 목소리가 나온다. 정 장관은 지난 9월 탈북민 표현을 대체하겠다고 밝히면서 “북향민 지지가 많다”는 견해를 보였다. 당시 통일부 내부에서 결정되지 않은 사안을 장관이 일방적으로 발표한다는 불만이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노무현정부 시절이던 2005년 정 장관이 탈북민 대신 ‘새터민’ 용어를 추진했지만 자리잡지 못하고 폐기된 사례가 반복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또 통일부가 정부와 공공기관에서 먼저 북향민 용어를 사용하는 방안에 대해서도 이미 용역 과정에서 문제를 제기했다. 통일부는 이후 국민들 사이에서 용어가 확산되면 법제화에 나서겠다는 입장이다. 통일부가 맡긴 연구용역 결과보고서를 보면, 한 법률 전문가는 대체 용어를 법에 반영하지 않은 채 사회적 용어로만 사용을 제한할 경우 혼란을 낳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한편 통일부는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을 특수자료에서 일반자료로 바꿔 일반 간행물처럼 열람할 수 있도록 추진한다. 도서관, 대학교 등 기존에 노동신문을 받아보던 기관에서 노동신문을 찾아 읽을 수 있게 됐다. 또 북한 웹사이트 60여개도 제한 없이 접근할 수 있게 차단을 해제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