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한 변화와 놀라운 사건 너머, 존재와 사람들의 마음을 읽고 공감하며 상상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무엇일까. 이에 대한 인류의 가장 유력한 대답 가운데 하나는 바로 문학을 읽고 문학 속 인물의 마음으로 들어가 공감하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 이래 올 한 해를 거침없이 달려온 문학은, 2026년 새해에도 세상의 불편한 진실과 존재들의 마음을 읽고자 하는 독자들 앞에 다시 선다.
은희경과 천명관, 최수철, 배수아 등 한국 문단의 중견 작가들은 새 작품을 들고 독자들에게 돌아오고, 김기태와 천선란 등 젊은 작가들은 새로운 감수성 혁명을 꿈꾼다. 한국 현대시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한 김혜순 시인은 시론집을 펴내고, 이문재와 이수명 등 중견 시인들 역시 새 시집을 발표한다.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올가 토카르추크와 욘 포세를 비롯한 해외 유명 작가들의 작품들도 번역 출간돼 독자들에게 다가간다.
문학동네와 창비, 민음사 등 주요 문학출판사의 2026년 출간 예정작 목록을 중심으로 2026년 한국 문학을 비롯한 문학 기상도를 조망한다.
◆은희경 등 신작 들고 돌아오는 중견 작가
성장소설의 클래식이라 부를 만한 장편 ‘새의 선물’을 비롯해 1990년대를 대표하는 소설가 은희경은 새해 상반기에 신작 장편소설(문학동네)을 들고 우리에게 돌아온다. ‘빛의 과거’ 이후 7년 만의 장편으로, 성격도 외양도 판이한 60대 자매 안나·경선 자매를 통해 노년의 삶을 깊이 있고 날카롭게 파고드는 작품이라고, 문학동네 측은 전했다.
압도적인 서사가 돋보인 첫 장편 ‘고래’로 2023년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최종후보에 올랐던 천명관도 10년 만에 신작 장편소설(창비)을 선보인다. 엄혹한 현실을 마주한 소년의 성장을 그린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본격적인 사유를 바탕으로 실험적이고 독자적인 세계를 구축한 최수철 작가도 장편(문학과지성사)을 발표할 예정이다. 늘 전통에서 탈주해온 배수아는 사랑의 상실을 다룬 장편소설 ‘메레 들판을 본다’(문학동네)로 독자들을 만날 예정이고, 지리산 자락에서 한국 문학의 새 활로를 개척 중인 정지아는 레즈비언 대안 가족을 다룬 장편소설(창비)을 선보인다.
연약하지만 빛나는 인간의 진심과 연대 가능성을 탐구해온 조해진은 중단편 ‘우리 세희’(현대문학)를 발표하고, 일상의 불안한 겹을 묘파해온 편혜영은 장편(문학과지성사) 한 권과 소설집(문학동네)을 동시에 선보일 예정이다.
2024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한강 작가가 차기작을 언제 발표할지 관심사이지만, 출판계에서는 언제 발표할지 알 수 없다는 반응이다.
◆천선란 등 젊은 작가 및 정보라 등도 예고
젊은 작가들도 잇따라 작품을 발표한다. 지난해 소설집 ‘두 사람의 인터내셔널’로 인상적인 데뷔를 한 김기태는 장편(문학과지성사)을 발표하고, 따뜻한 감성의 SF소설로 탄탄한 팬덤을 형성하고 있는 천선란도 새 장편(문학과지성사)을 출간할 예정이다.
장르물을 주로 써온 작가들의 바람도 거세다. 2022년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최종 후보에 올랐던 정보라는 SF 연작소설(현대문학)로 독자를 만나고, 한국 작가 최초로 영국 추리작가협회가 주관하는 ‘대거상’을 거머쥔 윤고은 역시 새 장편소설(문학동네)을 발표한다.
시인들도 뒤지지 않는다. 중견 시인인 이문재, 이수명, 김언희 등은 신작 시집(문학과지성사)을 발표하고, 열렬한 독자층을 가진 최승자 시인의 시선집(문학과지성사)은 2분기에 출간된다. 세계적인 시인 김혜순은 2월 시론집 ‘공중 복화술-문학은 어디서 시작할까?’(문학과지성사)를 출간할 예정이고, 생태와 환경으로 시 세계를 맹렬히 확장 중인 나희덕 역시 산문집(문학과지성사)을 출간한다.
◆욘 포세 등 해외 유명 작가 작품도 풍성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올가 토카르추크와 욘 포세를 비롯해 많은 해외 작가들의 작품도 번역 출간돼 독자들을 설레게 한다.
2018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올가 토카르추크의 첫 미스터리 공포물 ‘엠푸사: 자연주의 테라피 공포물’(민음사)이 번역 출간된다. ‘야쿱의 서’ 이후 8년 만에 내놓은 토카르추크의 장편소설로, 토마스 만의 ‘마의 산’에 대한 오마주이자 그리스의 희극 및 독일 민담을 결합시킨 독특하고 신비한 소설로 알려져 있다.
역시 2023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욘 포세의 일명 ‘바임’ 3부작 중 두 번째인 ‘바임 호텔’(문학동네)도 하반기에 번역 출간된다. 욘 포세는 이 3부작을 통해 특유의 절제된 문체로 고독과 사랑, 운명 등 인간의 보편적인 주제를 탐구한다.
2011년 맨부커상을 받은 줄리언 반스의 마지막 소설 ‘떠난 것은 돌아오지 않는다’(다산책방)도 국내 독자를 만난다. ‘중국의 카프카’로 불리며 매해 노벨문학상 유력 후보로 거론되는 찬쉐의 최신 작품집 ‘미로’(문학동네)도 하반기 출간 예정이다.
한국에서 압도적인 팬덤을 구축한 프랑스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신작 소설 ‘영혼의 왈츠’(가제·열린책들)도 독자들을 찾을 예정이다. ‘종이 동물원’의 작가 켄 리우의 최신 SF스릴러 장편소설 ‘우리 눈에 비친 모든 것’(민음사)도 번역 출간된다.
베스트셀러 ‘귀신들의 땅’으로 대만을 대표하는 작가가 된 천쓰훙의 최신작 ‘셔터우의 세 자매’(민음사) 역시 번역 출간되고, ‘삼체’의 작가 류츠신의 초기 대표작 ‘초신성 기원’(현대문학)도 번역 출간된다.
◆한국 문학, 새해에도 빛날까
한국 문학은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을 계기로 올 한 해 독자들로부터 뜨거운 사랑을 받았다. 올해 서점가에서 가장 많이 팔린 책은 한강의 소설 ‘소년이 온다’로 집계됐고, 소설 작품이 베스트셀러 상위 10위 안에 무려 다섯 작품이나 포진했다.
지난 1일 발표한 교보문고의 올해 베스트셀러 집계에 따르면, 한강의 소설 ‘소년이 온다’가 2년 연속 종합 1위를 차지했다. 한강의 작품 가운데 ‘채식주의자’와 ‘작별하지 않는다’ 역시 각각 9위와 11위를 기록했다.
양귀자 작가의 장편소설 ‘모순’이 베스트셀러 2위에 오른 것을 비롯해 젊은 작가 성해나의 소설집 ‘혼모노’(4위), 정대건의 ‘급류’(5위) 등도 10위 안에 포함돼 어느 해보다 문학이 독자들로부터 사랑을 받았다는 평가다.
한국 문학의 강세는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출판유통통합전산망 통계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올해 소설의 월평균 판매량은 71만권 수준으로 집계됐는데, 이는 지난해 10월 한강의 노벨상 수상 이전인 지난해 1∼9월 월평균 58만권보다 월 평균 13만권 정도 증가한 수치다.
올해 한국 작가들은 여러 세계 문학상 수상자 명단과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정보라는 지난 1월 세계 3대 SF상의 하나로 꼽히는 미국 필립 K 딕상 최종후보에 올랐다. 김혜순 시인은 시집 ‘죽음의 자서전’으로 독일 세계 문화의 집(HKW)이 수여하는 국제문학상을 받았고, 이수명 시인도 시집 ‘마치’로 미국 문학번역가협회(ALTA)가 주관하는 루시엔 스트릭 아시아 번역상을 받기도 했다.
한국 문학의 잇단 성과는 내적 역량이 축적된 가운데 독자들의 사랑, 정부와 민간의 번역 지원이 더해졌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다만, 한국 문학이 새해에도 독자들로부터 계속 사랑을 받고 세계무대에서 더 인정받기 위해선 좀 더 다양하고 풍부한 서사와 상상력, 세련된 문장으로 다져져야 한다는 분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