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은 병오년(丙午年)이다. 이 이름은 단순한 띠 표기가 아니라 고대 사람들이 시간을 이해하던 하나의 언어다. ‘병(丙)’은 천간 가운데 불을 뜻하고 ‘오(午)’ 역시 지지에서 불에 해당한다. 다시 말해 병오년은 불의 성질이 겹쳐 나타나는 해다. 그래서 예로부터 병오년은 ‘불의 해’로 불려 왔다. 시간의 성격을 자연의 에너지로 풀어내려 했던 옛사람들의 사고방식이 담긴 표현이다.
불은 가장 역동적인 원소다. 어둠을 밝히고 차가운 것을 데우며 굳은 것을 녹인다. 동시에 잘못 다루면 모든 것을 태운다. 그래서 불에는 창조와 파괴, 가능성과 위기라는 두 얼굴이 있다. 인류 문명은 불과 함께 시작되었고, 불을 다루는 능력만큼 발전해 왔다. 조리와 난방에서 시작된 불은 금속을 만들고 증기를 움직였으며 산업혁명을 거쳐 현대문명을 떠받치는 에너지로 진화했다.
오늘날의 불은 더 이상 모닥불이나 화로에 머물지 않고 석탄과 석유, 가스라는 이름으로 산업과 풍요를 가져오는 동시에 지구를 데우고 있다. 기후위기는 이제 추상적인 경고가 아니라 폭염과 산불, 가뭄과 홍수로 체감되는 현실이 되었다. 우리가 직면한 문제는 불을 쓸 것인가 말 것인가의 선택이 아니라, 어떤 불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의 문제다. 재생에너지와 효율, 저장기술이 중요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불을 없애자는 것이 아니라 불을 다루는 방식을 다시 배우자는 것이다. 그것이 지금 시대가 요구하는 에너지 전환의 핵심이다.
병오년의 두 번째 글자인 ‘오(午)’는 말이다. 말은 오랫동안 인류 역사에서 전환기의 상징이었다. 인간이 처음으로 속도를 손에 넣었을 때 그 중심에는 말이 있었다. 말은 거리의 감각을 바꾸었고 하루의 범위를 넓혔으며 서로 다른 세계를 연결했다. 소식과 물자, 문화와 사상이 말의 등에 실려 이동했다. 문명의 확장은 말과 함께 진행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말은 단순한 교통수단이 아니었다. 밭을 갈고 짐을 나르며 사람의 삶 깊숙이 들어왔고 전쟁과 평화의 현장, 노동과 여행을 함께했다. 그래서 세계 곳곳의 신화와 이야기에서 말은 자유와 생명력, 희망의 상징으로 등장한다. 하늘을 나는 페가수스, 이상을 향해 달리는 천리마는 인간이 도달하고 싶었던 미래의 모습이 투영된 존재다.
과학적으로 보아도 말의 진화는 인상적이다. 말의 조상은 숲속을 달리던 작은 동물이었다. 그러나 기후변화로 숲이 줄고 초원이 넓어지자 말은 살아남기 위해 몸을 바꾸었다. 여러 개였던 발가락은 하나로 줄었고 다리는 길어졌으며 심장과 폐는 장거리 이동에 적합하게 발달했다. 말은 환경의 변화를 피하지 않고 그 변화에 몸을 맞추며 진화했다.
여기에 인간과의 만남이 더해졌다. 말은 일방적으로 길들여졌다기보다 인간과 협력하는 방향을 택했다. 인간은 보호와 먹이를 제공했고 말은 이동과 노동, 신뢰를 내주었다. 이 관계는 지배보다는 공진화에 가까웠다. 말의 사회성과 감정 인식 능력은 인간과의 오랜 공존 속에서 더욱 정교해졌고, 인간 역시 말과 함께 살아가며 사회의 규모와 연결 방식을 확장해 왔다.
이제 불과 말을 함께 놓고 보면 병오년의 상징은 조금 다르게 읽힌다. 불이 방향 없는 힘이라면, 말은 방향과 리듬을 부여하는 존재다. 불은 움직이게 하는 힘이고, 말은 그 힘에 방향을 주는 존재다. 어느 하나만으로는 길이 되지 않는다. 둘은 함께일 때 의미가 있다.
오늘의 사회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강력한 에너지와 기술이 있지만, 그것을 어디로 어떻게 쓸 것인지는 여전히 선택의 문제로 남아 있다. 에너지 전환은 기술만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합의와 신뢰, 참여의 문제다. 말이 혼자 달리지 않듯 전환 역시 혼자 할 수 없다. 속도보다 중요한 것은 방향이고, 경쟁보다 중요한 것은 호흡이다.
병오년의 불은 태우라는 신호가 아니라 비추라는 요청에 가깝다.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바꿀 것인지, 어떤 에너지를 선택하고 어떤 삶의 방식을 지향할 것인지 돌아보라는 뜻이다. 불과 말의 해, 병오년을 맞아 기대해 본다. 불이 파괴가 아니라 전환의 빛이 되고, 말이 질주가 아니라 협력의 리듬이 되는 한 해가 되기를.
이정모 전 국립과천과학관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