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 당시 노태우 대통령이 이른바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이에 따라 조직폭력배, 마약 사범 등을 집중 수사하기 위해 검찰에 강력부가 신설된 것으로 알고 있는 이가 많다. 그런데 서울지검(현 서울중앙지검) 등 전국 6대 거점 지방검찰청에 강력부가 설치된 것은 1990년 5월의 일이다. 흔히 ‘10·13 대통령 특별 선언’으로 알려진 범죄와의 전쟁은 그로부터 5개월이 지난 1990년 10월 선포됐다. 일선 검찰청에 강력부가 생겨나 조폭 및 마약 사건 수사에 한창 열을 내고 있던 시점에 비로소 범죄와의 전쟁이란 구호가 등장한 셈이다. 일각에선 1990년 10월 초 국군보안사령부(현 국군방첩사령부)의 민간인 사찰 의혹이 불거지자 이를 덮으려고 청와대·정부가 황급히 마련한 카드가 바로 범죄와의 전쟁이었다고 지적한다.
심재륜(82) 전 부산고검장은 한국 검찰의 대표적 ‘특수통’ 검사였다. 대검 중수부장이던 1997년 당시 김영삼 대통령의 아들 김현철씨 비리 의혹을 수사해 결국 그를 구속한 것이 대표적 성과다. 대검 중수부와 더불어 ‘특별수사의 메카’로 불린 곳이 바로 서울지검 특수부다. 심 검사가 서울지검 특수1부장으로 재직하던 1990년 서울지검에 신설 부서 강력부가 생겼다. 그러면서 심 검사가 특수1부장에서 초대 강력부장으로 옮겼다. 신생 강력부에 대한 법무부·검찰 지휘부의 기대가 얼마나 컸는지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라고 하겠다. 그때부터 서울지검 강력부장 자리는 당대의 내로라하는 ‘강력통’ 검사들이 반드시 거쳐야 하는 보직으로 자리매김했다.
서울지검 강력부 출신의 레전드 검사들 가운데 조승식 전 대검 강력부장(검사장급)을 빼놓을 수 없다. 강력부 창설 멤버들 중 한 명인 조 검사가 1990년 실탄이 장전된 권총을 직접 휴대하고 조폭 두목을 검거한 것은 유명한 일화다. 군대에 비유하면 범죄와의 전쟁에서 혁혁한 공을 세운 참전용사인 셈이다. 그런데 검사 생활 거의 대부분을 조폭 잡는 강력부에서 보낸 그가 정작 서울지검 강력부장 자리에는 가지 못했으니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이와 관련해 조 검사는 검찰 퇴직 후 모 매체와 가진 인터뷰에서 “1997년 친한 선배인 검찰 고위 인사로부터 ‘서울지검 강력부장 꿈 접어라. 그쪽(여권)의 블랙리스트에 네 이름이 있다더라’라는 말을 들었다”고 털어놨다. 조폭과 가까운 일부 정치인도 그를 고깝게 여긴 모양이다.
전국 어느 검찰청에 부임하든 그 동네 깡패들부터 일망타진한 조 검사는 조폭들 사이에서 “해방 후 최고의 악질 검사”로 불렸다. 2008년 3월 대검 형사부장(검사장급)을 끝으로 검찰 조직을 떠난 그는 2016년 당시 박근혜 대통령을 둘러싸고 이른바 ‘비선 실세 국정 농단’ 의혹이 불거지자 유력한 특별검사 후보로 거론되며 모처럼 언론에 이름이 오르내렸다. 2025년의 마지막 날을 하루 앞둔 12월 30일 조 검사가 73세를 일기로 별세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옛말에 ‘욕을 많이 먹으면 오래 산다’고 했는데 조폭들한테 ‘악질 검사’로 찍혀 살해 협박까지 받은 그는 명이 너무 짧은 것 아닌가 싶다. 하긴, 스스로 “‘악질 검사’란 닉네임을 (욕이 아닌) 훈장처럼 생각하고 살아가겠다”고 밝힌 조 검사가 아니던가.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