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병오년 새해다. 눈앞에 무대 하나가 새로 열리는 것 같다. 삶이 연극 같다는 말 때문일까. 이 해에는 어떤 배역으로 살게 될지 어떤 변화를 겪게 될지 나의 연극에 대한 기대를 하게 된다. 이 연극에는 대본이 없다. 그래서 더 흥미롭다.
지난 연말 12월31일까지 최창근 연출의 연극 ‘12월 이야기’ 공연이 있었다. 이 해를 마무리하는 연극이었다고 할까. 20년 전 한강 작가가 이 연극을 보고 작사 작곡했다는 노래, ‘12월 이야기’가 한강 작가의 목소리로 흘렀다. 작가의 노벨상 수상 1주년 축하의 뜻이 담겼다.
이 연극은 한 해가 저물어가는 어느 저녁에 도시 변두리의 카페인 ‘12월 이야기’에 모인 여덟 명의 인물 이야기다. 기자, 교수, 여행가, 연극배우, 사진작가, 그 동거녀, 대학원생, 주민센터 직원이라는 다양한 인물들의 삶과 관계에 대한 질문을 보여준다. 진눈깨비에서 시작된 눈이 하염없이 내리는 날, 카페에선 춤과 노래 그리고 시 낭송이 펼쳐진다. 그리고 각자의 삶의 이면에서 느끼는 고독과 모순을 얘기한다.
이 연극은 관객 없이 모두가 배우다. 무대와 객석의 구분이 없어 보여, 마치 바로 다음 자신의 삶을 푸는 대사를 해야 할 것 같다. 이번 연극을 50여년 된 종로의 ‘아트 스페이스 반쥴 스테이지’라는 공간에서 공연한 것도 이런 정서를 의도한 듯하다. 이렇듯 ‘12월의 이야기’는 다른 사람들의 삶을 통해 자신을 돌아보게 하고, 현재의 삶을 객관적으로 정리할 수 있게도 했다. 한강 작가의 노래 가사처럼 어떤 따뜻한 손이 언 뺨을 위로하는 극이었다.
지난달 19일, 1세대 연극 스타로 알려진 윤석화 배우가 세상을 떠났다. 그녀를 무대 위에서 마지막으로 본 건 2022년 8월 햄릿 공연 때였다. 주연급 원로 배우들이 출연하지만 주연에서 물러나 조연으로 참여한 특별한 무대였다. 그녀는 갓 조연을 맡은 신인배우처럼 발랄하게 무대를 뛰어다녔다. 배역에 대한 욕심보다 무대를 즐기는 쪽을 택했다.
나는 그즈음 윤석화 배우의 마당 넓은 집을 빌려서 살고 있었다. 그러니까 일면식도 없었지만, 나는 시세보다 아주 후한 배려를 받은 세입자였다. 꽃을 좋아하던 그녀가 계절마다 다른 꽃이 피는 마당을 온전히 내게 빌려주었기에, 나는 봄이면 앵두꽃과 모란을, 여름이면 접시꽃과 하늘매발톱을, 가을이면 해국과 감국을 마음껏 누릴 수 있었다. 그녀가 이사하면서 남겨주고 간 기도 책상 서랍에는 기부금 영수증이 빼곡했다. 마당의 꽃보다 더 깊은 무언가가 만져졌다.
햄릿 공연이 끝나고 그녀는 환하게 웃으며 해국이 하얗게 흐드러진 이 집을 방문했다. 햄릿 공연 연습의 에피소드를 마치 한 편의 연극 공연을 하듯 재연했다. 그녀에게는 한낱 거실도 큰 무대였다. 그녀의 와병 소식을 듣고도 한참 후 그녀가 섬망을 겪고 있을 때, 꽃 한 다발만 들고 와달라는 애틋한 카톡을 받았다. 그러나 그때는 그녀의 건강 상태가 여의치 않아 꽃을 받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그녀가 이 세상을 떠나고 나서야 나는 배우 인생 전체를 기리는 작고 하얀 꽃다발을 전할 수 있었다.
윤석화 배우의 장례식장에는 “고별인사를 대신하며”라는 제목의 글이 실린 팸플릿이 있었다. 거기에는 배우가 출연한 연극 ‘마스터 클래스’에서 마리아 칼라스의 대사였던 글이 수록되어 있었다. “예술에는 지름길이 없어요. 쉬운 길도 없고요… 마술처럼 무대의 한가운데 오를 수는 없는 겁니다.” 새해를 맞이하는 인생의 자세 같다. 시인 세사르 바예호의 시에도 이런 구절이 있다. “1월을 두고/12월만 가져가면/안 됩니다. 나는 신이 아픈 날 태어났다니까요.” 바예호의 시 ‘같은 이야기’의 한 부분이다. 이것은 세계의 질서 자체가 어긋난 상태에서 태어난 존재로서, 12월의 결과만을 성급히 취하려는 태도를 경계하는 의미로 읽힌다. 1월이라는 미완의 시간을 통과한 후 12월이 주어진다는 것이겠다. 지금 이 순간에 맞는 1월이라는 무대에 대해 생각이 더 깊어진다.
천수호 시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