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8년 취임한 노태우 대통령은 전쟁기념사업회 설립을 강력히 추진했다. 마침내 그해 12월 국회가 전쟁기념사업회법을 제정함에 따라 이듬해인 1989년 초 6·25 전쟁 참전용사이자 예비역 육군 중장인 이병형(2003년 별세) 장군을 회장으로 하는 사업회가 공식 출범했다. 사업회에 부여된 가장 중요한 임무는 다름아닌 전쟁기념관 건립 및 운영이었다. 마침 서울 용산에 있던 육군본부가 육·해·공 3군 본부 합동청사로 새롭게 세워진 충남 계룡대(鷄龍臺)로 이전하게 되었다. 옛 육군본부 자리에 전쟁기념관을 짓기로 한 것은 잘한 결정이었다. 해당 부지를 노린 기관이 많았을 텐데 전쟁기념관 건설에 각별한 관심을 갖고 있던 노 대통령이 사업회를 우선 배려한 결과로 풀이된다.
노태우정부 시절 공사가 시작된 전쟁기념관은 김영삼(YS)정부 출범 이후인 1994년 개관했다. YS도 전쟁기념관 탄생에 크게 기여했다. 기념관이 한창 지어지고 있던 1993년 정부·여당 일각에서 해당 건물 용도를 국립중앙박물관으로 바꾸자는 주장이 제기됐다. 애초 용산 주한미군 기지가 옮겨가면 그 공간에 박물관을 세울 예정이었는데, 기지 이전이 무기한 연기되며 박물관 부지를 새로 물색해야 할 처지가 됐기 때문이다. ‘전쟁기념관보다 박물관이 우선’이라고 여기는 여당 의원들이 청와대를 설득하고 나섰다. 하지만 YS는 1993년 6월 여당에서 보고한 이른바 ‘박물관 전용 계획’을 백지화했다. 그리고 원래 목적대로 전쟁기념관으로 사용할 것을 지시했으니, 오늘날 전쟁기념사업회 관계자들이 YS에게 감사해야 할 일이다.
개관 후 30여년이 흐르는 동안 수많은 내외국인이 전쟁기념관을 다녀갔다. 특히 6·25 전쟁 당시 유엔군 일원으로 참전한 미국, 영국, 캐나다 등 22개국 국민 사이에 ‘한국에 가면 꼭 방문해야 할 관광지’로 자리매김했다. 기념관을 찾는 사람은 코로나19 팬데믹(감염병 대유행) 기간 동안 크게 감소했으나, 팬데믹 종료와 함께 다시 급격히 늘기 시작했다. 2023년 연간 방문객 수가 286만명으로 역대 최다 기록을 세웠다. 그런데 이듬해인 2024년 한 해 동안 무려 307만명이 기념관을 다녀가며 불과 1년 만에 기록이 깨졌다. 기념관 방문자가 폭증하자 인근의 지하철 4호선 삼각지역 이름이 ‘삼각지(전쟁기념관)역’으로 변경되기도 했다.
2일 전쟁기념사업회에 따르면 2025년 전쟁기념관을 방문한 인원은 총 364만명으로 집계됐다. 2024년의 최다 방문객 기록 역시 겨우 1년 만에 갱신된 셈이다. 1994년 개관 이래 31년간 누적 방문자 수는 약 4500만명으로 대한민국 인구 규모와 맞먹는 수준이다. 사업회 백승주 회장은 “2025년 한 해 전쟁기념관을 찾아주신 국민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며 “앞으로도 국내외 관람객에게 안보의 중요성과 평화의 가치를 전하는 문화 공간으로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그 약속이 꼭 이행돼 향후 2∼3년 안에 기념관 누적 방문자 수가 5000만명을 돌파하길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