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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수 줄고 무기력한 부모님?… 노년 우울증 ‘위험신호’ [건강+]

입력 : 2026-01-04 22:00:00
수정 : 2026-01-04 22:5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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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질환자 12% 늘어 ‘주의보’

관계상실·경제 문제… 삶의 변화 주원인
두통·어지러움·피로 등 신체 증상 호소
치료 시기 놓치면 치매 악화 가능성도
‘나이 탓’ 치부 말고 세심한 관찰 필요

새해가 되면 부모님 건강을 챙기는 사람이 많다. 혈압·혈당이나 콜레스테롤 수치를 확인하고 각종 영양제를 챙기지만, 정작 표정이나 말투에서 드러나는 경고 신호에는 쉽게 눈길을 돌리기 어렵다. 노년기 우울증은 나이 들어 누구나 겪는 기분 저하쯤으로 넘기기 쉽지만, 치료 시기를 놓치면 치매와 만성질환 악화, 자해 등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는 심각한 질환이다. 한국이 초고령사회에 진입하며 노인 우울과 고독, 극단 선택 문제가 커지는 만큼 노년기 우울증을 ‘나이 탓’이 아닌 적극적인 치료가 필요한 질환으로 인식하고 가족들이 세심하게 살피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4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우울증으로 진료를 받은 65세 이상 노인은 2020년 25만여명에서 지난해 28만여명으로 약 12% 증가했다. 정신 질환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크게 개선됐으나 여전히 노년기 정신 질환이 대중 관심 밖에 있는 점을 감안하면 실제 환자 수는 이보다 훨씬 많을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나이 들어 그렇다?… 착각 쉬운 노년기 우울증

평생 근무한 직장에서의 은퇴, 자녀 독립, 배우자·친구의 상실, 빈곤 등 사회·경제적 변화로 무력감이 깊어지는 것은 노년기 우울증의 대표적인 배경이다. 인생 주기에 따른 변화 자체는 자연스러운 과정이지만, 우울감이 장기간 지속돼 삶의 질을 심각하게 떨어뜨린다면 의학적 치료가 필요하다.

노년기 우울증의 진단 기준은 다른 연령대와 크게 다르지 않다. 2주 이상 우울한 기분이 지속되거나 거의 모든 일에서 흥미와 즐거움을 잃은 상태가 이어지면서, 식욕·체중 변화, 불면 또는 과수면, 피로감, 무가치감이나 과도한 죄책감, 사고력·집중력 저하, 죽음이나 자살에 대한 반복적인 생각 등이 5가지 이상 동반되면 ‘주요우울장애’로 진단한다. 다만 노년기에는 이러한 변화가 단순한 노화나 성격 변화로 오해되기 쉽고, 당사자 역시 “나이 들면 누구나 그렇다”며 스스로 증상을 축소하는 경향이 강하다. 이 때문에 진단 시기를 놓치지 않도록 가족과 주변인의 관찰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변기환 가톨릭대학교 서울성모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대부분의 정신 질환은 청·장년기에 발병해 호전과 악화를 반복하는데 노년기에 처음 증상이 나타나면 그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흔하다”며 “자녀의 독립과 사회적 관계의 축소로 인해 주변에서 환자의 변화를 제때 발견하지 못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또 젊은 층이 주관적 우울감·무기력·죄책감을 비교적 분명하게 표현하는 것과 달리, 노년층은 두통·어지러움·가슴 두근거림·소화불량·허리통증 등 불특정한 신체 증상으로 호소하는 경우가 많다. 이처럼 노년기 우울증은 다양한 신체 질환과 인지 저하가 동반돼 내과 질환으로 오인되거나 정신과적 증상이 가려지는 일이 잦아 치료가 지연되는 사례가 많다.

우울증과 치매가 함께 오거나, 두 질환이 혼동되기도 한다. 연령이 높아질수록 치매와 경도인지장애가 흔해지면서 활동 감소와 감정 표현 저하가 나타나, 겉으로 보기에는 우울증과 비슷해 보일 수 있다. 실제 치매 환자의 30∼80%에서 우울 증상이 동반된다. 반대로 우울증이 심해지면 주의력과 판단력이 떨어져 치매처럼 보이는 ‘가성 치매’(가짜 치매) 양상을 보이기도 한다. 변 교수는 “알츠하이머 같은 퇴행성 질환인 치매와 달리 우울증에 따른 인지 저하는 치료로 호전될 수 있어 세심한 감별 진단이 필수”라며 “가족과 주변인이 변화를 민감하게 살피고, 조기에 진료를 연결하는 것이 예후를 좌우한다”고 강조했다.

 

◆10명 중 8명 호전… 생활 관리가 ‘예방주사’

노년기 우울증은 다른 질환에 비해 치료 효과가 크다. 급성기 치료만 제대로 받아도 70∼80%에서 증상이 눈에 띄게 호전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치료 방법은 항우울제를 포함한 약물치료와 인지행동치료(CBT) 등 심리치료가 핵심이다. 최근에는 약제 선택이 다양해지고 부작용 부담도 예전보다 줄어들면서, 비교적 가벼운 우울 증상이라도 초기에 약물치료를 병행해 악화를 막는 방향으로 치료 원칙이 바뀌는 추세다.

다른 질환과 마찬가지로 노년기 우울증에서도 예방이 가장 중요하며, 이를 위해 생활습관과 마음가짐을 함께 돌봐야 한다. 규칙적인 수면·식사 리듬을 유지하고, 균형 잡힌 식단과 가벼운 걷기·체조 같은 꾸준한 운동으로 스트레스를 풀어주는 것이 도움이 된다. 사회활동, 운동, 종교 활동 등 즐거움을 느끼는 활동을 통해 사회적으로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 역시 중요하다. 혼자 집에 머무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부정적인 생각과 고립감이 커지기 쉬운 만큼, 정기적으로 나가 만나는 모임이나 취미활동을 만드는 것이 우울 악화를 막는 일종의 ‘안전장치’가 될 수 있다. 변 교수는 “노령 인구가 증가하고 ‘액티브 시니어’가 등장하는 등 새로운 변화의 기조 속에서, 노년기 우울증을 적극적으로 관리하는 것은 개인의 삶의 질을 유지하는 것에서 더 나아가 사회의 소중한 인적 자원을 지키는 방향”이라며 “우울감을 느끼는 본인, 그리고 주변의 친지들이 적극적으로 치료에 나설 수 있도록 범사회적 도움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