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정치권과 사회 일각에서 ‘한일해저터널’ 구상이 특정 종교와 정치의 결합, 이른바 정교유착의 사례처럼 단순화되어 거론된다. 그러나 이러한 접근은 한일터널이 어떤 문제의식에서 출발했고, 어떤 공공적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는지를 충분히 살피기 전에 논의를 경직시키는 측면이 있다. 국가 간 초대형 인프라 구상이 제안 주체의 배경만으로 재단되고, 그 공공적 가치와 장기적 비전은 논의조차 원천봉쇄된다면, 이는 우리 사회가 미래를 설계하는 능력 자체를 스스로 축소시키는 결과를 낳는다.
한일해저터널은 최근에 갑자기 등장한 발상이 아니다. 냉전 종식 이후 동북아 질서 재편, 유라시아 대륙과 해양 네트워크의 연결이라는 거대한 흐름 속에서 수십 년간 학계와 정책 현장에서 논의돼 온 구상이다. 세계는 이미 ‘연결’이 곧 경쟁력이며, 동시에 평화의 토대가 되는 시대로 접어들었다. 영불 해저터널, 북유럽 국가들의 해저·해상 간 교량, 중국의 대륙 연결망은 모두 단지 경제적 타당성만이 아니라 지역 통합과 안정이라는 전략적 판단 속에서 추진된 사례들이다.
토목·환경 분야 최고 전문가인 곽결호 전 환경부 장관은 한일터널을 ‘문명 인프라’, 즉 문명을 일으키는 공학으로 바라본다. 경부고속도로가 야당의 거센 반대와 초기 비용편익의 한계를 극복하고 국가 경제 발전의 대동맥 역할을 해냈듯, 역사적 인프라는 늘 문명과 국가의 방향성을 바꾸는 계기가 되어왔다. 한일터널은 해상수송보다 빠르고, 항공수송보다 대량 이동을 가능하게 하며, 기후 변화에도 영향을 받지 않아 한국과 일본을 넘어 중국·러시아까지 연결하는 동북아 경제권 형성의 핵심축이 될 잠재력을 지닌다. 경제적 편익은 물론이고 물류와 관광, 고급 일자리 창출, 토목기술 발전에 기여하며, 물리적 연결을 통해 상호 의존을 강화하고 대화와 협력의 비용을 낮춘다. 이는 초국경 인프라 유러터널로 이어진 유럽 통합 사례처럼 동북아에서 신뢰 구축의 상징적 장치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이 지점에서 현재의 논란을 이해하려면, 가정연합이 왜 정치의 문을 두드렸는지부터 차분히 짚어볼 필요가 있다. 문선명 총재는 대한민국이 공산주의와 자본주의의 모순을 극복하고, 하나님을 중심한 공생·공영·공의주의를 바탕으로 남남 갈등을 해소하며 평화로운 남북통일을 이룩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더불어 한국이 세계 평화의 중심 국가로 자리매김하기를 간절히 바랐다. 문 총재는 종교를 ‘마음의 자리’, 정치·경제를 ‘몸의 자리’로 규정했다. 마음과 몸이 조화를 이룰 때 온전한 인간이 되듯, 세계 평화를 위해서도 종교와 정치가 대립이 아니라 협력의 관계에 있어야 한다는 인식이었다. 그는 유엔 역시 이러한 원리에 따라 거듭나야 한다고 보았다. 세계 종교 지도자들이 상원의 역할을, 정치 지도자들이 하원의 역할을 맡아 상호 보완적으로 협력할 때, 마음과 몸이 하나 된 유엔이 가능하다는 구상이었다.
종교와 정치의 협력이 내적 평화의 조건이라면, 외적 평화의 조건은 국경과 이념의 장벽을 물리적으로 낮추는 것이었다. 그 구체적 실천이 바로 ‘국제평화고속도로’ 구상이다. 문 총재는 1981년 서울에서 전 세계 과학자 700여 명이 참석한 국제통일과학회의에서 중국·한국·일본을 잇는 ‘아시아권 대평화고속도로’를 제안했다. 몰튼 카플란 시카고대 교수 등 세계적 석학과 노벨상 수상자들이 공감을 표했고, 이후 일본의 국제하이웨이재단과 일한터널연구회가 설립돼 한일 양국의 저명한 토목·도시 전문가들이 실현 가능성 검토에 참여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한일터널은 학계와 전문가 사회, 정치권에서 꾸준히 논의돼 왔다. 한국에서는 노태우·김대중·노무현·이명박 대통령이 한일 화합의 한 방안으로 검토 필요성을 언급했고, 일본에서도 모리 요시로 총리가 ‘아셈터널’이라는 명칭을 제안하는 등 정치적 공감대가 형성된 바 있다. 이는 이 구상이 특정 종교의 확장 수단이 아니라, 시대적 과제에 대한 하나의 정책적 선택지로 인식돼 왔음을 보여준다.
그럼에도 오늘날 한일터널은 여전히 ‘누가 제안했는가’ ‘일본만 이익을 얻는 것 아니냐’는 프레임에 갇혀 논의되고 있다. 그러나 공공 인프라는 그 특성상 제안자의 배경이 평가의 기준이 될 수 없으며, 설계 구조 또한 어느 한쪽의 이익에 편중되기보다는 양국 모두에 실질적 혜택을 가져다주도록 전제되어 있다. 세계 인류는 단절과 갈등 속에서 고통받고 있으며, 국내 역시 인구 절벽과 공동체 해체, 국제 질서의 불안정이라는 복합적 위기에 직면해 있다. 이러한 시대에 국가에 더 큰 안정과 국민에게 더 깊은 위안을 가져다주기 위해서는, 종교와 정치가 일정한 거리를 유지한 채 상호 협력 관계를 성숙하게 형성해 나가는 것이 오히려 바람직한 방향일 것이다. 한일터널은 결코 정교 유착의 상징이 아니라, 단절과 갈등을 연결과 공존으로 전환하려는 상상력이자 실현 가능한 평화 인프라다. 한일터널이 불신과 혐오의 대상에서 벗어나 미래 세대를 위한 정교 협력의 상징으로 거듭나기를 기대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