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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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연대도 “이혜훈 예산장관 부적절” [김태훈의 의미 또는 재미]

입력 : 2026-01-08 07:00:00
수정 : 2026-01-08 09:0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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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에 한국사를 연구한 일본 학자들이 견지한 관점을 흔히 ‘식민사관’(植民史觀)이라고 부른다. 1925년 당시 조선총독부가 총독 직속으로 설치한 ‘조선사편수회’라는 기관이 식민사관의 정립 및 대중화에 앞장선 단체로 꼽힌다. 식민사관으로 분류될 만한 편향적 이론이 어디 한둘이겠느냐만 그중에서도 ‘당파성론’을 지목하지 않을 수 없다. 한마디로 “조선인은 항상 분열하여 당파를 만들고 서로 싸운다”라며 이른바 ‘당파 싸움’을 조롱하고 비난하는 내용이다. 오늘날 국사학계는 식민사관 극복 차원에서 당파 싸움 대신 ‘붕당 정치’(朋黨政治)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이혜훈 기획예산처 장관 후보자. 이재명 대통령은 국민의힘 국회의원 출신인 그를 지명하며 “다름을 서로 인정하고 나와 다른 사람의 존재를 긍정하는 것은 불편함이 아니라 시너지의 원천”이라고 말했다. 뉴스1

조선 시대에 ‘동인’(東人)과 ‘서인’(西人), ‘남인’(南人)과 ‘북인’(北人), 또 ‘노론’(老論)과 ‘소론’(少論) 등 온갖 명칭의 붕당이 존재했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조선 21대 임금 영조(1724∼1776년 재위)는 탕평(蕩平)의 정치를 편 것으로 유명하다. 이는 붕당들 간의 갈등이 극단으로 치달아 나라가 완전히 무너지는 것을 막기 위한 불편부당(不偏不黨)의 정책이다. 그 시절에도 임금의 신임을 독점하며 정권을 잡은 붕당이 독주하면서 권력에서 배제된 붕당, 그러니까 오늘날의 야당을 짓밟는 부작용이 참으로 심각했던 모양이다. 영조의 뒤를 이은 22대 임금 정조는 아예 ‘탕평채’라는 궁중 음식까지 고안해냈다. 노란 메밀묵에 붉은 돼지고기, 파란 미나리, 검은 김 등 저마다 색깔이 다른 음식들을 초장에 버무려 먹었다고 한다.

 

일본 학자들은 마치 붕당들 간의 치열한 권력 암투 탓에 조선 왕조가 멸망한 것처럼 묘사한다. 하지만 현대 자유민주주의 정치 시스템의 핵심이 정당이란 점에서 이는 수긍하기 어려운 논리다. 1987년 개정된 대한민국 현행 헌법은 “정당의 설립은 자유이며 복수정당제는 보장된다”(8조 1항), “정당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국가의 보호를 받는다”(8조 3항) 등 조항을 통해 정당 활동을 아주 두텁게 보장하고 있다.

친여 성향의 시민단체인 참여연대 회원들이 지난 5일 광화문에서 ‘내란을 딛고 전환의 시대를 열자’라는 주제로 2026년도 신년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뉴스1

이재명 대통령이 기획예산처 장관 후보자로 지명한 이혜훈 전 국민의힘 의원이 야당인 국힘에서 ‘뭇매’를 맞고 있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지도부가 ‘함구령’을 내렸다고는 하나 민주당 소속 정치인들도 속이 끓어오르는 모양새다. 청와대는 여야 인재들을 고르게 등용하는 ‘탕평 인사’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지만, 정작 야당은 ‘갑질’ 정황 등을 들어 “이 후보자는 고위 공직자로서 부적격”이라고 하니 이 대통령도 당혹스러울 법하다. 마침 친(親)민주당 성향 시민단체인 참여연대가 7일 성명에서 “(이 후보자 지명의 명분인) ‘통합’이란 애초 취지가 퇴색했다”며 “이 후보자를 예산처 장관 적임자로 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청와대는 그만 고집을 꺾고 야당 및 시민사회의 요구를 과감히 받아들임이 마땅할 것이다.